우리에게 까마득하게 잊혀진 사건, 소말리아 해적에 의한 상선 <삼호드림호> 피랍이 꼬박 6달을 넘기고 있다. 피랍된 날짜는 2010년 4월 4일. 오늘로서 정확히 193일째다. 처음에 삼호드림호를 피랍한 해적에 대응하고자 파견된 이순신함은 아무성과도 못 내고 5월 돌아와 '임무완수'라는 거북한 표현을 썼다. 처음에 파견될때는 삼호드림호 피랍해적 소탕을 위한 '위풍당당!' 출정임을 만천하에 과시하던 이순신함. 이 배는 돌아올때 삼호드림호는 언급도 하지 않고 다른 해적들을 소탕했다며 '임무완수'라고 했다. 삼호드림호가 사라지기 시작한 그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까마득 6달. 월드컵도 자질구래한 사건도 많이 터진 대한민국에서 삼호드림호는 이제 치솟는 배춧값보다도 뉴스거리가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상파에서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고 있는 삼호드림호는 간간히 해적들의 모선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일부 인터넷 보도만 포털뉴스 말미에 뜰 뿐, 대한민국에서는 잊혀진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한편 이 와중에 시작한 SBS드라마 <대물>은 여러가지로 우리에게 충격을 주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극 중 발생한 피랍사건과 정부의 대응은 우리로 하여금 천안함, 아프간피랍사건과 함께 잊혀졌던 삼호드림호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게 한다. 극 중 서혜린의 울분은 삼호드림호와 천안함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에게 너무나 절실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부도 회사도 기다리라고만 했지 제대로된 대응은 하지 않았던. 비로소 주검으로 돌아온 후에야 '최선을 다했다. 유감이다' 따위의 말만 할 뿐인 무력한 극 중 정부의 모습에서, 우리는 현실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13일(한국시각) 비로소 칠레의 매몰광부 33명이 60여일의 고통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돌아올 수 있었다. 이 희망은 그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협동심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었지만 그것을 확실하게 뒷받침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주었던 칠레정부의 역할을 빼놓고 설명할 순 없다. 이웃 볼리비아 대통령이 와서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전세계가 함께 감동을 나눌 수 있었던 이 드라마가 가능했던 것은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줄 의무가 있는 '국가'의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행동이었다.
극 중 서혜린의 남편을 '과실치사한 정부', 그리고 삼호드림호 24명 선원을 제대로 된 논평조차 내지 않으며 7달 가까이 방치하고 있는 우리정부는 칠레정부를 보고 부끄럽지 않은가. 혹은 극 중 서혜린의 울부짖음을 보고 부끄럽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은 칠레의 광부 생환 소식에 축하한다는 축전을 보낼 생각은 있어도 이번사태를 반면교시로 삼호드림호를 외면하지 않고 대국민사과와 적극적인 대응을 약속할 생각은 없는 것인가. 정말 아쉽게도 그런 생각은 없는 듯 하다. 대신 가파르게 시청률이 상승하고 있는 드라마 <대물> 작가의 석연찮은 '교체'소식만 들려올 뿐이다.
삼호드림호 24명 피랍자 가족들이 칠레광부 구조소식과 드라마 <대물>을 볼 때 가슴에 어떤 응어리가 져 가고 있을지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진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할 동병상련이고, '사람으로 구성된' 정부도 당연히 느껴야 할 감정이다. 현 우리정부에는 그런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삼호드림호 24명 피랍자 가족들은 오늘도 극중 서혜린의 울부짓음대로 정부를 향해 가슴을 치고 외치고 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축하축전 뒤로, 남의 나라 배만 보호해주고 무사귀환 임무완수라며 무책임하게 돌아온 해군 이순신함 뒤로, G20열풍에 빠져 자신들을 잊고 있는 정부 뒤로, 드라마와 연예오락 TV를 보며 자신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웃고 즐기고 댄스가요에 맞추 춤추는 사람들 뒤로. "왜 기다리라고만 말합니까!" "내 아이에게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