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행장 (13)1909년 10월 22일 오후 9시 15분,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는 긴 여로 끝에 마침내 하얼빈에 도착했다. 세 사람은 유동하의 사돈인 김성백의 집을 찾아갔다. 유동하 여동생이 김성백의 제수(넷째아우 부인)였다.
김성백은 하얼빈 한인회장으로 동흥학교(東興學校)에서 동포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쳤다. 김성백은 외출 중이었지만 부인은 손님을 따뜻이 맞으며 저녁을 지어 대접했다. 안중근과 우덕순은 같은 방에 자고 유동하는 다른 방에서 잠을 잤다.
이토 히로부미 기사를 보다 1909년 10월 23일 오전, 안중근과 우덕순은 10월 23일자 조선어신문 <원동보<遠東報)>를 통하여 10월 26일 아침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기사를 보았다.
전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동청철도총국의 특별열차편으로 10월 25일 오후 11시에 관성자 역을 출발하여 러시아 재무대신이 코코후초프가 기다리는 하얼빈으로 향한다.두 사람은 눈을 부릅뜨고 다시 읽고는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관성자(창춘)에서 밤 11시 출발한다면 하얼빈에는 몇 시쯤 도착할까?""글쎄, 특별열차는 도중의 역에 그다지 서지를 않으니까 통상의 시간보다 빨리 도착할 테지."이런 계산은 상인인 우덕순이 치밀했다. 그는 담배 행상으로 이곳저곳을 두루 다녀 정보에 빨랐다.
"이토가 하얼빈에 도착할 때는 코코후초프 러시아 재정대신이 영접할 테니 정거장 경비가 삼엄하겠지.""아마 그럴 거야."안중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러시아 측 정보를 들을 수 없으니 답답하구먼. 유동하의 러시아어는 생각보다 부족하고 너무 나이가 어려서 여차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아.""러시아어를 잘할 수 있는 또 한 사람을 구하는 게 어때?""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계획이 실패할 거야. 하얼빈 정거장에서 결행이 어려우면 좀 더 남쪽으로 갈 수밖에 없어.""나도 같은 생각이야. 도중의 역이라면 아무래도 경계도 약할 거야."동청철도는 단선이기 때문에 비록 특별열차라 하더라도 우편열차나 화물열차와 엇갈릴 때에는 큰 역에서 정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차 역을 알 수 있다면 미리 가서 숨어 기다리는 편이 훨씬 성공률이 높다는 판단이 들었다. 동청철도 종업원은 러시아인과 청국인이지만 철도 관리나 경비원은 모두 러시아인이었다. 중도 역에서 잠복하더라도 러시아어를 알지 못하면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조도선안중근이 문득 정대호를 통해 알게 된 조도선(曺道先)이 떠올랐다. 그는 함경남도 홍원사람으로 '동학혁명'에 가담하여 관헌에게 쫓기자 블라디보스토크로 도망쳤다.
그런 뒤 떠돌이광부로 전전하다가 이르쿠츠크에 정착하여 러시아여성과 결혼한 뒤 세탁소를 하였다. 그런 가운데 조도선은 신흥도시 하얼빈이 경기가 좋을 것 같아 혼자 이곳으로 온 뒤 고향 출신 김성옥 집에 머물고 있었다. 안중근과 우덕순은 하얼빈 한인회의 총무와 <대동공보> 통신원을 맡고 있는 김형재를 앞세우고 김성옥 집으로 조도선을 찾아갔다. 안중근이 조도선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나는 가족을 맞으러 가지만 러시아어를 못해요. 통역으로 동행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언제 가십니까?""내일이라도 하얼빈을 출발하여 관성자까지 갈 생각입니다.""곤란합니다. 제 처가 이르쿠츠크에서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언제 도착합니까?""어제 전보를 쳤으니 4, 5일 후가 되겠지요.""그렇다면 우리들은 2, 3일 만에 하얼빈으로 돌아오니까 지장이 없을 겁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이때 조도선은 '안중근이라는 사람 사귀어서 손해 볼 사람이 아니다'라는 정대호의 말이 퍼뜩 떠올랐다.
"좋습니다. 도와드리지요.""오늘 저녁 김성백씨 집으로 와 주십시오."기념촬영안중근과 우덕순은 새로운 동지를 구한 뒤 유동하를 앞세우고 하얼빈 구경을 한다는 구실로 하얼빈 역 주변을 안내케 했다. 하얼빈 역으로 가 남행열차 시간을 확인하고는 중국인사진관에 가서 세 사람은 기념촬영도 했다.
저녁식사 후 안중근과 우덕순은 유동하를 불렀다.
"주인 김성백씨가 늦게 돌아온다니까 자네가 학교에 심부름 좀 가줄까?""무슨 일입니까?""내일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가야 하는데 여비가 부족해서 그래. 곧 돌려줄 테니까 50원 정도 빌렸으면 해서.""그런 일이라면 직접 부탁하시지요.""내일아침 일찍 출발해야 되고, 아무래도 친척인 자네가 부탁하는 게…."유동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초 하얼빈에는 약재를 사러 온 것이었다. 아버지가 볼일을 보고 빨리 돌아오라고 단단히 일렀는데, 두 사람은 남쪽으로 간다고 하지 않는가."곧 돌려준 데도 아무런 보증이 없으면 부탁할 수 없어요.""그건 염려할 필요 없네. 블라디보스토크의 <대동공보>에서 이쪽으로 확실하게 50원 송금이 오게 되어 있으니까.""틀림없습니까?""그럼, 마침 자네에게 러시아어로 겉봉을 써달라고 부탁하려던 참이야."안중근은 한문으로 쓴 편지를 보여주었지만 유동하는 한자를 읽지 못했다.
블라디보스토크 대동공보사 이강 전상서삼가 아룁니다. 10월 22일 오후9시를 넘어 하얼빈에 무사히 도착하여 김성백씨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요동보>를 보니, 이토 히로부미는 동청철도총국 특별열차로 25일 오후 11시에 관성자를 출발하여 하얼빈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조도선 씨와 함께 나의 가족을 맞이하기 위하여 관성자로 간다는 구실로 그 앞의 어느 역에 잠복하여 결행할 생각입니다. 이 점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큰일의 성패는 하늘에 맡기지만, 동포의 기도와 도움을 갈망하는 바입니다. 또한 여기서 김성백씨에게 일금 50위안(元)을 빌렸습니다. 빨리 갚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한독립만세! 1909년 10월 24일 오전 8시 출발, 남행함. 우덕순 印 안중근 印추신: 포브라니치나야에서 유동하 씨와 함께 하얼빈에 도착. 앞으로의 일은 귀사에 통지하겠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편지를 부칠 예정으로 안중근이 써서 우덕순이 나란히 서명하고 각각 도장을 찍었다.
"보다시피 도장이 찍혀져 있으니 틀림없이 돈이 올 것이네.""알겠습니다."유동하는 러시아 문자로 봉투에 주소를 쓰고는 일어섰다."학교에 가서 50원 정도 융통해 달라고 김성백씨에게 부탁해 줘.""네, 잘 알겠습니다."- 나명순 ․ 조규석 <대한국인 안중근> 46~47쪽 - 사키류조 <광야의 열사 안중근> 91쪽~99쪽 발췌 요약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