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입기 시작한 아담과 하와의 나뭇잎 옷이 이제 "나"를 상징하는 첫 번째 표식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더딘 발전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의류 업계는 끝없는 공장체계 속에서 같은 옷을 만들 수 없게 되었다.
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한복 문화도 더 이상 선과 색, 그리고 절제만을 외치며 옛것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쉽게 한복이 가진 미(美)를 버린다면 그것 또한 대중이 돌아서게 만드는 길.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개량한복이 제대로 인기를 끌지 못하고 몇몇의 사람의 손에서만 지내는 것도 한복이 가지고 있는 선의 미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여 이번 '2010 대한민국한복페스티벌'(10월15~16일)의 주제처럼 "21c"에서 한복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가지는 게 우리의 옛 전통을 제대로 이어가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의 거리, 혜화역 "대학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우리의 고궁 "창경궁"에서의 이번 패션쇼가 더 뜻깊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침부터 쌀쌀한 날씨가 패션쇼장으로 향하는 그 순간에도 잦아들지 않았고 패션쇼가 시작되었을 땐 가만히 서서 패션쇼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기 힘이 들었다. 현재 시각은 5시. 쇼는 6시 10분 예정. 약 한 시간 정도의 시간 여유가 있어 쇼장 앞으로 준비되어 있는 전시회를 관람했다.
보도자료만 받아 봤을 때는 거대한 전시가 준비되었을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전시회였다. 우리나라 차를 나누어 주고, 우리나라 전통 다과를 전시해 놓은 뒤쪽에는 쇼를 관람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기도 했었다.
다과의 경우 우리가 아는 일반 정과나 약식들이 아름다운 빛깔을 자랑하며 놓여 있었기에 우리의 눈을 홀리기에 충분하였지만, 그 외에 전통가마 체험이나 한복사진촬영, 안재복 생활조각전은 그리 눈길을 끌지 못하였다.
안재복 생활조각전의 경우 너무 구석에 배치되어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았고, 사진촬영 이벤트는 한복을 입은 많은 관계자들이 있었음에도 포토라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일반인들의 참여가 뜸한 것 같았다.
그에 비하면 서예로 이름을 써서 이름표를 배부해주는 것은 외국인이나 일반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은 것 같다. 그래봤자 부대행사를 돌아보는데 고작해야 10분 남짓. 더 이상 이런 저런 핑계로 자리를 지킬 수 없어, 일부러 명정전을 벗어나 창경궁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창경궁은 1418년 세종대왕이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것으로 수강궁이라 불리었었다. 이후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모시게 되면서 명정전, 문정전, 통명전을 짓게 됐고, 궁궐의 규모가 넓어지게 됐다. 이로 인하여 이름도 창경궁이라 다시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탔다가 다시 복원됐고, 일제시대엔 일본이 동물원과 식물원을 지어 일반인에게 관람하게 한 뒤, 창경원이라 이름 붙여 격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아무래도 한 나라의 왕과 왕비였던 분들의 제를 모시는 곳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조상을 잘 모셔야 집안이 잘 된다"는 속설이 제를 모시는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중국 모두에게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이런 사건 사고를 겪은 곳이라 할지라도,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라 할지라도 결코 창경궁은 침울함을 간직한 곳이 아니다. 오히려 생각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아늑한 곳이다.
만약 창경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이곳을 보게 된다면 마치, 왕과 왕비가 산책하던 곳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다못해 내 발소리에 놀란 청설모가 내 사진기를 피해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모습은 마치 숲속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었다. 안타깝게도 부족한 내 사진 실력이 한 컷의 청설모도 잡지 못했지만 말이다.
궁을 전부 돌아보기에는 짧고, 산책하기에는 조금 넉넉했던 1시간이 흘렀고, 하늘에 반달이 떠오르면서 쇼는 시작됐다.
붉은 빛으로 물든 창경궁 위로 여러 물감의 춤사위가 영상으로 나오면서 여성의 넋을 멋들어지게 표현한 창작무용이 불꽃을 내뿜으며 펼쳐지기 시작했다.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붉은 색의 조화가 음악과 함께 우리의 심장박동을 강하게 요동쳐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장옷(쓰개치마)를 뒤집어쓰고 요염하게 등장하던 한 여자가 서서히 계단을 내려오면서 장옷을 내리더니 그 속에 감춰졌던 도발적인 한복의 맵시를 뽐내었다. 일상에서 입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활동성이 많이 첨부된, 하지만 한복의 미를 그대로 간직한 한복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단아함 속에 드러나는 절제된 섹시미가 여자건 남자건 가리지 않고 한복의 매력에 빠지게 만들었다. 외국 전통 드레스보다 더 풍성하고 화려함을 자랑하는 한복식 드레스의 등장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앙드레김의 화려한 패션쇼의 향연이나 이상봉의 단백한 패션쇼도 전부 한국전통의 미를 제대로 살린 쇼였으니, 이번 패션쇼가 한복의 세계화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창경궁에서 유명 한복 디자이너들의 패션쇼가 펼쳐진 것은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다못해 함께 취재를 도와준 배화여대 전통의상과 학생들도 재밌다며 다음날 또 찾아간 것을 보면 주최자들이 추구한 "한복에 대한 문화전통성과 가치를 홍보하여 한복 소비문화를 개선"하겠다는 취지가 조금은 맞아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국민이 좋아하면서도 즐겨 입지 못하는 것이 바로 한복이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할 것 없이 한복을 입기 좋아하지만, 비싸다는 이유로 사지 못하고, 혹은 생활할 때 불편하다는 이유로 항상 구석에 처박혀 있다 결혼식에나 겨우 나와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간편해진 현대복을 입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한복을 일상복으로 하자!"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다. 하지만, 우리가 한복을 세계에 알리고 우리의 일상으로 정착시키는 방법도 있지 않겠는가. 그것을 그저 한복디자이너들에게만 떠넘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모색해 보고 함께 개척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을 받을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것이 우리의 문화다. 더 이상 정착되어 있는 문화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아껴주고 보살펴주어 그것들이 지금보다 더 큰 빛을 바랄 수 있도록 나설 차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PN문화재방송국 뉴스와 동시제공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