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①] "동네에 사는 어떤 할아버지가 여름 내내 길거리에서 팔다 남은 개들을 막걸리 안주로 삼겠대요. 많이 먹으면 커져서 팔기 어렵다고 먹을 것도 거의 주지 않아 저와 이웃들이 계속 먹을 것을 가져다 줬어요." 제보자의 전화를 받은 것은 9월 말경. 팔다 남은 잉여동물을 보신탕집에 넘긴다는 이야기야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일단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직업 없이 정부로부터 받는 각종 보조비로 생활하고 있는데 간혹 청계천에서 아기 강아지를 사다 길거리에서 팔아왔다는 것. 강아지들을 한참 팔던 지난 여름. 개들은 할아버지 집 처마아래 박스 안에서 지냈고 매일 그곳을 지나가던 제보자는 썩은 감자와 토마토 만으로 연명하는 개들이 불쌍해 사료를 주러 그곳에 들렀다고 한다.
9월 30일 개들이 어떤 상태에서 방치되고 있는지 확인하러 현장에 가던 중 제보자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그 할아버지가 개 한 마리를 박스에 넣어 집을 나섰다는 것이다. 팔러가는 것이 분명했다. 전화를 받고 있는 사이 제보자가 설명한 인상착의의 한 노인이 박스 하나를 들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애초 개들이 처한 상황을 확인만 하려고 했으나, 돌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그 노인이 팔지 못해 골치덩어리가 된 개들을 보신탕집에 넘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개들을 선뜻 사오기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개를 산다 한들 모든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당장에 보호공간도 없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오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뒤를 쫓아 전철을 탄 시간은 오전 10시. 6호선 이태원역에서 출발한 할아버지는 두 번을 환승한 후 모란시장에서 내렸다. 개들이 애완용 펫으로도 보신탕용으로도 팔리는 모란시장에서 그 개는 어떻게 될까?
모란시장에서 몇 시간을 배회하던 노인은 오후 2시경 다시 전철을 탔다. 중앙선으로 환승해 중랑역에 도착한 후 어디론가 사라진 시각은 오후 3시. 10시에서 오후 3시까지 5시간 동안 그 개는 한번도 박스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사례②] 폐지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할머니가 개들을 좁은 곳에 넣어 키운다는 제보를 들었다. 서열의식이 있는 개들은 너무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면 서로 싸우게 된다. 결국 6마리 중 한 마리는 동족간의 싸움으로 죽었다.
할머니는 개들 이야기만 나오면 울고불고 하는 탓에 이야기조차 꺼내기 힘들었다. 설득이 안 되면 개들을 몰래 데려오거나 강제적으로 그곳을 철거하고, 결국 개들을 빼앗아 오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개들을 데려온다 해도 할머니는 다시 개들의 숫자를 불릴 것이 뻔했다. 할머니는 개들에게 새끼를 낳게 하고 수를 불리며 무언가 마음의 평안을 얻는 듯했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 그 아래에 있는 동물들
박스에 담아 5시간을 방치하고 썩은 감자만으로 연명하게 한 일, 좁은 공간에 넣어 사육해 서로 싸워 죽이게 한 행위는 모두 동물을 고통스럽게 만든 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두 노인을 고발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언뜻 보기에도 열악한 환경에 몰린 사람들. 이런 경우 어떤 것이 최선인지 합리적인 선택이 절실하다. 최근 들어 사회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주변에서 학대받은 동물들이 발견되는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SBS긴급출동 SOS 2009년 11월 9일, 2010년 3월 29일, 2010년 8월 30일자 방송분 참조. 이 방송에 나온 개들은 모두 동물자유연대에 의해 구조 치료 후 보호 중이다).
그들은 힘든 환경에서 개들을 돌보며 위로를 받았다고 말하거나 개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사례①' 할아버지의 경우 개들을 길거리에 내다 판 돈이 짭짤한 용돈벌이가 되었을 수도 있다. 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개들이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큰 의미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복지 상태다. 사람의 복지가 파산한 그곳에 동물들에 대한 배려는 존재할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라고 동물학대자가 없겠냐만, 사회적·경제적 약자라고 해서 그들에 의한 또 다른 약자에 대한 폭력, 방치행위가 가볍게 처리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행위의 잔혹성이며 따라서 그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권고, 법적 고발... 상황에 따른 다양한 대처방법 필요
개를 팔았던 그 할아버지에게 동물보호법 위반을 적용한다면 '동물판매업으로 등록하지 않고 개를 판 행위'를 문제삼을 수 있다. 즉 노점으로 고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판매업의 경우에도 많은 경우 노점을 고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열악한 노인을 고발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행위인가를 놓고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동물을 열악한 환경에서 키운 것 그리고 사료를 제때 주지 않은 것 등이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법적 처벌만이 만연한 사회가 반드시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즉 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닌 것이다. 법이 가능한 모든 행위에 대해 적용 가능하도록 세분화되고 그 처벌 규정 역시 합리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으나 먼저 학대행위가 멈춰지도록 권고하고 교육시키는 방법 역시 개발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학대행위가 자신이 한 행동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진행되는 무지에 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법적 처벌근거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을 시키든 권고를 하든 법적 고발을 하든 무엇이 학대인가에 대한 기준점은 명확해야 한다. 기준이 모호해지면 행위에 대한 윤리적 판단까지 모호해진다.
즉 학대의 기준은 명확히 하되 행위의 의도 여부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 1차적으로 권고 교육 등의 조치를 취하고 이후 그 행위가 반복되었을 때 법적 고발을 하는 단계를 취하는 것도 의미 있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이것을 의미 있는 과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학대의 정의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물보호법상 학대의 정의 규정 확대·재정 필요
우리는 물리적인 폭행뿐 아니라 동물을 열악한 환경에 방치하거나 좁은 공간에서 사육하는 것 모두를 학대라고 판단하게 된다. 이는 논리가 아니라 직관에 의해서도 판단되며 상식적 수준에서 그러하다. 따라서 동물의 본래적 생태조건을 훼손시키는 모든 행위를 1차적으로 학대라고 규정해야 한다.
문제는 법과 현실이다. 현실적으로 명백히 학대로 보이는 행위 모두가 완벽하게 기소 처벌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을 학대로 정의하고 어떻게 법적 규정을 마련해야 할까.
영국의 동물단체 RSPCA는 구조와 돌봄(care)이 필요한 동물들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mistreated(학대당한) neglected(방치된) injured(상처 입은) distressed(고통스러운), 즉 이런 상태의 동물들은 치료·구조의 대상이 되며 이들을 학대한 사람들은 교육(educate), 권고(advice), 경고(warn), 고발(prosecute)의 대상이 된다. 즉 이러한 "불필요한 고통 (unnecessary suffering)을 주는 모든 행위"가 법적으로 학대에 해당하며 이 정의 안에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 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본성을 해치는 열악한 환경을 제공하는 행위 등도 해당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직접적으로 상해를 가하는 물리적인 폭행만 현행법상 학대에 해당된다. 이때문에 실질적으로 학대동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논란은 끊임없이 있어왔다. 우리 동물보호법상의 학대규정이 매우 협소하다는 것은 다음의 예를 통해 나타난다.
[사례③] 10월 11일 평소 동물구조봉사활동을 하는 제보자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동물 번식장에서 평생 아기만 낳아 몸이 망가진 개를 한 시민이 구조했다는 것이다. 한 눈에도 몸 상태가 끔찍했다. 뒷다리는 망가져 걸을 수 없었고 욕창 또한 심각했으며 생식기는 퉁퉁 불어있었다. 검진 결과 심각한 심장질환에 영양실조와 빈혈, 뒷다리는 완전히 괴사된 상태였다. "그나마 욕창이 가장 경미한 증상"이라는 수의사의 검진은 그 개의 몸 상태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었다.
결국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간 지 몇 시간 만에 결국 그 개는 사망했고 사체는 부검을 위해 즉각 국립수의과학검역원으로 보내졌다. 부검의는 부검 결과 종양의 진행상황 등으로 짐작하건대 개는 한 번도 치료받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 개는 질환에 걸려도 전혀 치료받지 못한 채 오랫동안 방치되어 새끼만 낳는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현행법으로 처벌되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 '장기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 행위는 학대'라는 정의가 없기 때문에 처벌 규정 역시 없다.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적 구성요건을 갖춘 법률의 개정은 그 근거가 명확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점은 옳다. 그러나 벌어진 현실을 처리하지 못하고 뒤떨어져 있는 우리 법의 상황에는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장기간 방치돼 병에 걸리는 것도 명백한 '학대'
영국은 2006년 법의 개정을 통해 열악한 조건에 동물들이 방치된 상황에 감시관(inspector)이 미리 개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전 법에서는 불필요한 고통이 일어나 충분한 증거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그 학대자를 기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정법 이후에는 권고(advice) 수준 이상의 조치(경고와 법적 고발)가 불필요한 고통(unnecessary suffering)의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시점에도 가능하게 되었다. 즉 아직 끔찍한 상태로 전락하지 않은 방치 수준에서도 감시관이 이 상황에 개입하고 이를 학대로 규정해 기소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장기간 그러한 환경에서 동물이 고통에 방치되면 극단의 경우 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Measuring Animal Welfare in the UK 2007, RSPCA의 보고서). 법이 눈에 보이는 행위를 처벌하는 수준을 넘어서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예방의 기능까지도 하고 있다는 의미다. 1911년 이후 95년만의 법개정. 과연 우리는 몇 년의 시간이 더 소요되어야 가능할까?
동물이 열악한 환경에서 장기간 방치되어 질병에 걸려도 치료받지 못 해 동물이 가진 본래적 생태조건이 파괴된다면 이는 명백히 학대다. 만신창이가 된 몰티즈의 몸이 이 주장에 대한 모든 반박을 잠재우고도 남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