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 대체 : 20일 오후 5시 20분 ]
중국의 차기 국가지도자로 내정된 시진핑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지난해 5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나눈 대화 내용을 놓고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청와대가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면담 배석자들은 20일 "박지원 원내대표의 얘기가 맞다"고 말했다.
논란의 발단은 박지원 원내대표의 19일 원내대책회의 발언.
박 원내대표는 "시 부주석이 지난해 5월 중국을 방문한 김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왜 한국 정부는 과거 정부와 달리 남북관계의 교류협력을 하지 않으면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명박 정부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도 있는데 왜 일본과 함께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 노릇을 하느냐'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 대통령이 장거리로켓을 발사한 북한에 대해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를 주장하고, 미국의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 계획에 참여할 의사를 밝히는 등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강경 일변도로 치닫고 있었다.
박 원내대표는 시 부주석의 당시 발언을 근거로 "시진핑 시대를 앞두고 다시 한 번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한다"며 "중국과의 외교관계도 매끄럽지 못한 것을 정부는 잘 알기 바란다"고 말했다.
발끈한 청와대 "박지원 발언은 이적행위"그러자 청와대는 "시 부주석이 그러한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박지원 원내대표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홍상표 홍보수석이 20일 오후 2시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와 이같은 입장 표명을 직접 했다.
홍 수석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과 시 부주석의 면담은 작년 5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이뤄졌다. 중국 측에서는 시 부주석과 양원창 인민외교학회장,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 우장하오 아주국 부국장 등이, 우리 측에서는 김 전 대통령 내외와 박지원 원내대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신정승 주중 대사, 한국대사관 참사관이 각각 참석했다.
홍 수석은 "당시 면담 내용이 담긴 면담요록을 상세히 검토해봤는데, (박지원 원내대표가 말하는 것과 같은) 그런 내용이 없었다. 당시 참석자들로부터도 개별 확인을 해봤지만 그와 같이 추론할 만한 발언은 없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최경환 비서관이 정리한 면담록에서도 그와 같은 표현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게 홍 수석의 얘기다.
홍 수석은 "박 원내대표의 발언은 국내정치 목적으로 외교를 악용하고 국익을 훼손하는 이적행위와 다를 바 없다"며 "박 원내대표는 이같이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배석했던 정세현 "박지원 말이 맞다"그러나 양측의 공방을 보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설명은 다르다.
정 전 장관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시 부주석이 박 원내대표가 전한 말과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당시 참석자들에게 확인해봐도 그런 발언은 없었다"는 청와대의 설명과 배치된다.
중국어에 능한 정 전 장관에 따르면, 시 부주석은 "한국 정부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일본 정부가 지금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가 긴장 일변도로 가는 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나? 한국 정부가 동북아에서 하는 일은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동북아 평화에도 훼방 내지 장애를 조성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즉흥발언은 아니었다. 남북 문제에 관심이 많은 시 부주석이 (이 얘기를 하려고) 상당히 준비를 많이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진핑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중국 외교당국의 입장을 요약해서 얘기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정 전 장관은 "중국이 외교문제를 제기한 것도 아닌데 청와대가 왜 이러냐? 나도 청와대 근무를 해봤지만, 김영삼 정부 시절의 청와대는 야당이 뭐라 해도 대꾸도 안 했다"며 청와대의 '과잉대응'을 꼬집기도 했다.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도 "박지원 원내대표 말이 맞다"며 "전직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서 그런 얘길 나누고 온 것이 알려지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 측으로서는 이명박 정부를 배려해서 그에 대해 기록을 남기지 않았는데, 청와대가 오히려 그 부분을 이용해서 시진핑 발언을 부인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최 실장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청와대로부터 전화가 온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당시 배석한 사람들의 파편적인 기억보다는 공식적인 면담록에 그와 같은 기록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홍상표 홍보수석은 "박지원 원내대표가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겠다.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대응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전현희 민주당 대변인은 이에 대해 "박 원내대표가 직접 들은 사실을 한반도 평화를 위하는 충정에서 언론에 밝힌 것을 두고 이적행위라고 한 것은 이명박 정부 비판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선전포고가 아닐 수 없다"고 유감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