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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구조공단은 2005년 7월부터 "임금체불로 고통을 겪고 있는 근로자들을 위하여 노동부와 협약을 체결하고 체불 피해 근로자들에게 민사 소송대리 등의 무료법률구조를 실시"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특히 임금 체불과 관련한 무료법률구조 서비스는 그간 내외국인, 체류 자격에 따른 차별 없이 시행해 왔으나, 최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법률구조를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어, 공단 설립 취지에 맞게 모든 사람이 법률구조를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월 중순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사를 방문하여 법률 구조를 신청한 네팔 출신 아속(30)씨 이야기다. 아속은 2006년 9월부터 09년 12월까지 경기도 화성시에 소재한 'A퍼니처'라는 회사에서 재직하다 퇴직하면서 임금 체불이 발생했다.

아속이 퇴직 당시 12명 직원 중 한국인들은 임금과 퇴직금을 수령하였으나, 네팔인들은 1인당 평균 400만 원이 넘게 체불이 발생하여, 수원지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하였고, 노동청 근로감독관의 조사 결과 체불 임금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에 대해 근로감독관이 지급을 명령하고, 검찰 고발까지 했으나 당해 업체는 임금 지급을 하지 아니하였다. 노동부 진정 당시 사업주는 분할 납부를 약속하는 약속 이행서를 작성하여 지장 날인까지 한 바 있으나,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아속은 부득불 민사소송절차를 통해서라도 임금 체불을 해소해 보고자, 법률구조공단 수원지사를 방문하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첫 번째는 공단에서 아속이 체류 기간을 도과한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상담을 거부하려 했던 점이고, 두 번째는 상담이 진행된 후, 담당자가 요구한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다행히 첫 번째 문제는 아속과 동행했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대표의 항의로 해결되었지만, 두 번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 문제는 재판 과정에 필요한 아속의 이해관계 당사자인 사업주의 '주민등록등본' 발급이 동사무소에서 거부된 것이다.

문제가 된 원천동사무소는 주민등록 열람 및 등·초본 교부에 있어서 "거주 불명 등록된 자는 주소가 존재하지 않아 주민등록표 열람 및 등·초본 교부 신청서에 신청인의 주소를 기재할 수 없으므로 교부 불가인데, 불법체류자는 거주 불명된 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라며 주민등록초본 발급을 거부했다. 해당 규정을 들어 미등록이주노동자가 주민등록등본 발급을 거부받기는 처음이라는 주장에 대해, 담당자는 MB 정부 들어 규정이 강화되어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법은 최소한의 간섭을 해야 하며, 불가불 간섭할 때 역시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원천동사무소가 발급을 거부한 것은 법령을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좁게 해석한 것이다.

주민등록법 제29조 (열람 또는 등ㆍ초본의 교부) 6에 의하면 "채권·채무관계 등 정당한 이해관계가 있는 자가 신청하는 경우" 주민등록등초본을 교부토록 하고 있다. 또한 동법 시행령 제47조(주민등록표의 열람 또는 등ㆍ초본의 교부) ⑥은 "신청인이 등·초본을 교부받으려는 대상자의 주민등록표상의 성명 및 주소를 수신처로 하거나, 공무상 필요에 따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를 수신처로 하여 우송하여 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 열람 또는 등·초본 교부기관의 장은 그 신청인의 신원 확인과 증명자료 제출을 생략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이 경우 아속은 주민등록법 제29조 6에 규정된 정당한 이해관계가 있는 자로 정당한 교부 신청 대상자가 된다. 또한 '불법체류로 거주 불명 등록된 자에 준한다' 할지라도 교부 신청한 주민등록등본의 사용처가 국가기관인 법원이고, 해당 등본을 법원에 제출하는 기관 역시 국가기관인 법률구조공단으로, 우송처를 법률구조공단으로 할 경우 신청인의 신원 확인과 증명자료 제출을 생략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조치는 주민등록 혹은 외국인등록이 말소된 자가 법원 등에 민원서류를 제출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이다.

더 나아가 아속의 경우 국가기관인 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수원지청에서 '법원제출' 용으로 발급한 '체불금품확인원'을 갖고 있었고, 해당 서류에는 신청인의 주소지가 명확하게 기재돼 있었다.

즉 원천동사무소 행정민원팀이 외국인등록증 유효기간이 도과했다는 이유로 발급을 거부하며, 법률 구조를 위해 찾아간 민원인의 권리를 무시한 것은 1. 법이 정한 채권·채무관계 등 정당한 이해관계가 있는 자의 권리를 묵살한 것이고, 2. 국가기관인 법원 혹은 법률구조공단을 수신처로 해서 발급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하였고, 3. 국가기관이 발급한 문서에 명확하게 주소지가 기재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청인의 주소를 기재할 수 없으므로 주민등록초본 교부가 불가'라고 한 것은 월권 행위로 정당한 사유 없이 발급을 거부한 것이다.

그런데 아속의 사건을 상담한 법률구조공단 담당자는 위와 같은 명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원천동사무소에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재판 진행 과정에 꼭 필요한 서류 중의 하나인 주민등록등본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담을 종결하였다. 아속이 서류가 미비한 상태에서 상담을 종결하는 것을 보며, 과연 이 사건이 제대로 처리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임금체불 등으로 이해관계자의 주민등록등본 발급을 신청할 경우,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법을 핑계로 발급을 거부하는 일이 반복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법률구조공단이 갖고 있다면 응당 주민등록법 제29조 ⑥에 의거, 주민등록등본 수령을 공단에서 해야 한다.

아니면, 공단에서 상담을 접수할 경우 사건 의뢰인의 대리인이 되기 때문에 공단에서 직접 사건 의뢰인 이해관계자의 주민등록등본 교부 신청을 하면 쉽게 문제가 해결된다. 이런 접근이야말로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법률 서비스에서 제도적으로 소외될 수 있는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를 향한 진정한 서비스의 시작이다.

그동안 수많은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법률구조공단의 법률 구조 서비스를 통해 혜택을 입어왔다. 그러나 최근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법률 구조에서 제도적으로 소외시키려 하는 경향들이 나타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모든 사람이 기본권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법률구조를 포기하거나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며, 좀 더 친절하고 적극적으로 서비스를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공단 법률구조는 월평균 수입 260만 원 이하의 국민 및 국내 거주 외국인 외에 가정폭력·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여성(국내 거주 외국인 여성 포함), 국내 거주 북한이탈주민, 기타 생활이 어렵고 법을 몰라 스스로 법적 수단을 강구하지 못하는 국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법률구조#이주노동자#미등록이주노동자#주민등록등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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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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