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3일째) 송악산 올레길 10코스 일부를 돌기로 했다. 송악산은 산이수동 포구에서 해안을 따라 정상까지 도로가 닦여 있고 분화구 정상부의 능선까지 여러 갈래의 소로가 나 있다.
산 남쪽은 해안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절벽 가장자리를 끼고 올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정상에서는 가파도와 마라도, 형제섬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고, 산 아래 바닷가에서는 감성돔, 벵에돔, 다금바리 등이 많이 잡혀 제주도의 관광 명소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바람이 몹시 불어 위험해 보이는데도 절벽 바위 사이에서 두 사람이 바다낚시를 하고 있다.
한참을 기다리니 낚시꾼이 낚싯대를 철수하고 밖으로 나온다. 그물망에는 물고기가 잡혀 묵직해 보인다. 뭐가 잡혔는지 물어보자, 쥐치, 갈전겡이, 벵어돔, 갯돔(돌돔)이 잡혔다고 한다. 낚시를 좋아해서 거의 매일같이 오는데 오늘은 다른 날보다 많이 잡지 못했단다. 김권호(50)씨는 모슬포에서 나고 자랐는데 제주도민으로서 걱정이 되는 게 있다고.
"관광차원에서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레길을 만들면서 경관이 좋은 곳에 길을 내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니 훼손이 되기도 합니다. 올레(좁은 골목길)길을 이용하는 사람과 지역 주민이 소소한 것들로 언쟁을 하기도 하거든요. 이곳도 그런 곳 중에 한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질조사결과, 해안절벽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하여 언젠가는 통제를 하게 될 거라고 하더군요. 실제로 10,1일부터 차량통행은 통제됐어요.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 오래 전부터 장사를 해왔던 상인들은 장사가 되지 않아 울상이죠. 문을 닫은 곳도 있고요."
송악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중국 침략의 발판으로 삼았던 곳이어서 당시 건설한 비행장, 고사포대와 포진지, 비행기 격납고 잔해 등이 흩어져 있고 해안가의 절벽 아래에는 해안참호 15개소가 남아 있다. 계속 걷는 일이 되풀이되다 보니 몸이 몹시 지쳐 발걸음이 무겁다. 피로도 풀 겸 산림욕을 할 수 있는 절물자연휴양림에 가자고 친구가 제안한다.
제주시 봉개동 화산 분화구 아래 1997년에 개장한 제주절물자연휴양림은 총 300ha의 면적 (천연림 100ha, 인공림 200ha)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40~45년생 '삼나무'가 수림의 90% 이상을 차지하여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절묘한 조화를 이뤄 한 여름에도 시원한 한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삼나무는 속성수로써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 감귤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방풍림 목적으로 심어졌으나 이곳은 지역주민들이 심고 가꾸어 자연 휴양림으로 개발되면서 안락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산책로는 비교적 완만하고 경사도가 낮아 노약자나 어린이, 장애인에게도 무난하며 해발 697m 고지까지 오르는 등산로는 1시간 정도면 충분히 왕복이 가능하다. 산책 나온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간히 의자에 쉬기도 하고 도란도란 얘기도 하며 고부가 다정스럽게 담소를 나누며 걸어간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한 삼나무 숲을 지나며 천천히 날숨 들숨으로 자연에 흠뻑 취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먼저 앞서간 친구가 갑자기 숲속이 쩌렁쩌렁 울리게 큰소리로 웃는다. 날아가던 새가 배설물이라도 튕기고 지나갔나?
무슨 일인가 싶어 부랴부랴 뛰어가 봤더니 흥미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면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고 긴장을 완화해주며 혈압을 낮추고 혈액순환이 좋아지며 우리 몸의 건강을 지켜주는 효과가 있으니 '큰소리로 웃기'라는 푯말이 나타난다.
'일소일소 일노일노'라는 말이 있다. '웃을수록 젊어지고 화낼수록 늙게 된다'는 말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침이 아닐까? 이곳을 지날 때면 웃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는 곳이다. 목석의 웃는 모습들이 참으로 다양하여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온다.
친구의 웃는 모습이 생동감에 넘쳐 웃다가 그만 뒤로 쓰러지고 만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그곳에 설치되어 있는 목석보다 친구의 모습이 더 웃겨 덩달아 웃다 보니 배도 아프고 얼굴근육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다. 웃다가 얼굴에 주름 좀 생기면 어떠랴. 즐거운 걸!
실컷 웃고 나니 아! 이제 10년은 젊어진 기분이다. 먼발치에서 따라오던 다른 일행도 이곳에 멈추자 큰소리로 웃는다. 웃는 코너를 지나자 박수를 치라는 코너가 나타난다. 산림욕을 하면서 박수를 치니 혈액순환이 잘 되는 것 같고 피곤도 풀린다. 옹기종기 벤치에 앉아 발 운동하는 일행도 보인다.
적당히 갈증이 날만큼 걷자 절물약수터가 나타난다. 신경통과 위장병에 효과가 있다는 약수로 절물약수는 용천수다. 시원한 약수를 한 컵 들이마시자 날아갈 것 같다. 아무리 날이 가물어도 결코 마르지 않는다는 절물약수는 신경통 및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하며 제주시에서 월 1회 수질 검사도 한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가뭄이 들어 동네우물이 모두 말랐을 때에도 주민 식수로 이용했을 정도로 풍부한 수량을 자랑했다고 한다.
산림욕을 하게 되면 식물 속에 들어있는 테르펜이라는 정유성분이 피톤치드와 같이 숲속의 공기에 포함되어 천천히 걷는 사람의 자율신경을 자극하고 성격을 안정시키며 체내 분비를 촉진할 뿐 아니라 감각계의 조정 및 정신 집중 등 뇌 건강에 좋은 작용을 한다. 또한 방향성, 살충성, 살균성은 물론 독특한 치료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삼나무, 잣나무, 소나무 등 침엽수에 많이 들어 있다.
그래서일까? 신기하게도 친구가 입었던 하얀 티셔츠에 귤물이 떨어져 노란색으로 물들었었는데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내려와 보니 귤물이 온데 간데 없이 깨끗해져 있었다. 그동안 쌓였던 여독이 말끔히 풀려 기분도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