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기는 2010년 4월14일~6월26일까지 중국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스촨(四川: 동티벳), 북베트남, 북라오스를 배낭여행하며 연모하는 여인(女人)의 어머님에게 부친 편지에 기초합니다. 현대적인 건물이나 관광지가 아닌 소수 민족이 사는 동내와 깊은 산골 오지를 다니며, 일기를 대신하여 적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따스한 사람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편지를 차례로 연재 기록할 예정입니다.... 기자말어머님.
저는 지금 구이저우(貴州)의 끝자락 즈음인 류즈(六枝)라는 소도시에 있습니다. 저 만치만 가면 배낭 여행자들이 꿈꾸는 윈난(雲南)이 있습니다. 내 나라에서 구이저우를 꿈꾸며 두 어 군데에서 꼭 사진을 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하나는 그저께 본 먀오주의 큰 축제인 지에메이지에(苗族 姉妹節)이였으면 두 번 째는 긴 털실을 얹은 창쟈오먀오(長角苗)라는 이들입니다.
어머님.
간밤에는 큰 비가 내렸고 류즈라는 낯선 동네에서 더 낯선 산골로 간다는 것이, 또한 너무 늦게까지 있으면 나오는 버스가 없다는 수오까 마을을 나서기에 앞서 큰 걱정거리를 한 짐 풀어놓고 나아갑니다.
어제 들른 버스 정류장에서 '수오까'라고 하니, 밖에서 빵차(砲車)를 타라고 일러줍니다. 물론 전부 저의 의역(意譯)입니다. 중국 사람과 이야기를 나눔에 묻는 것은 되지만 답변을 이해하는 것은 아직 어렵습니다. 그네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저를 중국인으로 생각하기에 자세한 설명을 들려주곤 합니다. '명사형'으로 묻는 물음에 서너 문장의 답변이 되돌아오면 그 가운데 명사 몇 개 만 골라내어 눈치로 홀로 의역을 하곤 합니다.
저는 거리로 나와서는 '수오까'를 노트에 적어 기사 아저씨에게 여쭈어 보니, 아저씨께서 빵차를 불러 세워주십니다. '고맙습니다'라며 차에 오르니, 차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거리를 천천히 배회하며 '수오까' '수오까'하며 열두 번 넘게 소리치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차에 오르기 전에는 그의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분명 크게 들려옵니다. 빵차는 사람이 한 가득 찬 다음에야 류즈의 소도시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도시가 끝날 즈음, 기사분께서 사람을 몇 명 내리게 하고서는 오토바이에 오르게 합니다. 그 자리에는 이미 오토바이가 익숙한 듯 대기하였으며 차 보다 먼저 앞서 나아가 있습니다. 빵차는 2분을 채 안 달려 검문소에 들러 무엇을 메모하고 다시 2분여를 나간 다음, 오토바이에 오른 사람을 인도 받습니다. 빵차와 오토바이 사이에 얼마간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원 초과'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입니다.
류즈에서 30여km 떨어져 있지만 들고 나는 차가 없다는 이야기에, 오늘 안으로 되돌아 나올 수 있을까, 털실을 얹은 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을까라는 새로운 걱정이 내 벗인양 제 손을 잡고 신이 나서 길을 나서고 있습니다. 1시간 30여 분 달리는 동안, 창밖의 풍경은 울창한 숲과는 다르게 야산에 돌, 마을은 돌집입니다.
수오까에서 내려 다시 롱까(롱까, 보우관博物館으로 더 알려졌음)로 들어가야 하는데, 딱히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서 길을 따라 나서다, 목이 말라 음료수를 하나 샀습니다. 여기서 걸어가면 약 1시간 30분 거리인데, 가게 아저씨가 '보우관 가느냐'고 물으시고서는,'10위안(元)'을 주면 태워주신다고 합니다. 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5위안'으로 흥정합니다.
배낭 여행자는 어느 나라에서든, 어느 가게에서든 '흥정'과 '깎기'가 일상살이인데, 그 접점을 '딱 절반에 두어야 한다'고 어느 배낭 여행자가 들려주었습니다. 만약에 절반으로 흥정했는데, 물건을 팔지 않아 돌아서는 경우가 있을 때 –그 가격이 너무 싼 것이면 그는 놓아둘 것이며, 그래도 이윤이 남는다면 돌아서는 이를 붙잡는다고 들려주었습니다.
오토바이에 올라 롱까로 올라가니, 수오까에 장(場)이 섰는지 산에서 돼지를 몰고 내려오는 창쟈오먀오 여인이 있습니다. 어미 돼지 두서너 마리에 새끼 돼지가 종종 걸음으로 한 무리입니다. 대가족입니다.
마을에 이르자 아저씨는 제게 길을 들려주시고 돌아서 가십니다. 또한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머니 한 분께서 저를 데리고 마을 안으로 끌고 가다시피 합니다. 무엇인가 잘 짜 놓은 느낌입니다. 저는 마을의 지도를 보고 조금 느리게 걷고 싶은데, 제가 잠시 멈춰서면 아주머니는 저를 기다린 다음, 저와 함께 어딘가로 가십니다. 한 5분 정도 그를 따라가니, 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자기네 집입니다. 그리고서는 기다란 비녀와 털실을 보여 주시며 집안으로 불러들입니다.
집에는 몇 분이 다녀가신 듯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지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아주머니는 사춘기 딸의 머리를 손질하십니다. 50cm 정도의 나무뿔 비녀(예전에는 쇠뿔이였지만 지금은 나무 비녀입니다)에 2~3kg하는 털실을 곱게 올리는데, 아주머니의 밝으신 표정과는 다르게 딸아이는 자못 불만스런 표정입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하지만 아주머니 집에는 딸아이만 있는 게 아니라 옆집 아주머니도 계셨고, 그 아주머니의 딸내미도 있고, 지나가시든 아주머니도 자기 딸을 데리고 오시고, 왠지 사태를 수습할 수 없는 큰 일이 벌어진 듯 합니다. 전 아직도 이 마을을 알지 못하는데….
아주머니께서는 사진을 찍게 해주시겠다며 –그네들은 무슨 축제 때에만 이렇게 머리 위에 쇠뿔로 만든 큰 비녀 위에 털실을 얹곤 한답니다. 아주머니는 1인 당 '20원'인데, 특별히 '10원'으로 반값에 해주시겠다고 합니다. 몇 몇 아주머니께서 곱게 머리를 올리고서 저를 바라보자, 차마 '사진 안 찍고 그냥 가겠습니다'라 할 수 없어, '5원'으로 네 명의 초상값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진을 찍었을 때에는 아홉 명이 밝게 서 계십니다. 전 분명 아마추어인데, '초상권'을 지불하며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어머님, 어쩜 이 순간만큼은 프로가 되어야 할 듯 합니다. 아주머니는 '한 명 한 명 찍어'라며 다시 내게 자리를 만들어 주십니다. 처음부터 이어지는 '과잉 친절'이 돈 받고 찍는 사진이지만 곱게 자리를 만들어 주고 계십니다.
어머님,
돈 주고 찍는 사진도 그렇고, 어색한 분위기도 그렇고 하여 조금 다정하게 다가가 웃으면서, (주소까지 받아 적어) 사진을 보내준다고 약속까지 하였습니다. 사진을 담고 나서 노르웨이에서 지어주었다는 박물관에 가 보니, 초가지붕 세 채 놓여 있고, 무척이나 조용합니다. 박물관은 나무숲으로 쌓여져 있는데, 조금의 간식과 책 한 권을 들고 봄나들이 나와도 참 좋을 듯 합니다. 평온한 공간 속에 사방에서 들려오는 산새울음 소리가 세외도원(世外桃園)의 풍경을 그려줍니다.
마을을 천천히 둘러보고 –돼지를 많이 키우고 있으며, 가난하지만 소박하게 사는 듯, 산길을 내려옵니다. 그런데 옆집 동내에서 장을 보러 가시는 창쟈오먀오 여인이 저랑 같이 동행을 합니다. 그는 내게 당연히 '보우관에 갔다' 온 듯이 말했으며, 자기네의 사진도 찍어달라고 합니다.
여인은 궁금한 것이 많은 듯 많은 말을 건네는데, 저는 몇 몇 단어를 징검다리 마냥 이어 붙이며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이럴 때에는 꼭 필요한 언어가 아니더라도 공부했지만 '쓰여지지 않은 모든 언어'가 봇물처럼 흘러 나와야합니다. '나이가 몇 살이냐'에서 '아름답다'는 말,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 만큼은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수오까에 내려오니, 마을에서 저를 마중 나온 아주머니가, 장을 다 보시고 집으로 올라가시며 '아는 체'를 하십니다.
어머님,
저는 '롱까'를 보고 '수오까'에서 다시 장날의 풍경 속으로 첨벙 뛰어 들어갑니다. 챵자오먀오의 여인은 티베트 사람처럼 앞치마격인, 은은하게 줄무늬가 새겨진 옷을 입고 있는데, 어린 여자아이를 보면 '동화 속 주인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여행 보름째, 크게 담고 싶은 사진을 담았다는 마음과 '윈난으로 건너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졌습니다. 여행을 하며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보고 동경하면, 그 낯선 길이 더욱 값지게 다가옴을.
낯선 길 위에서 무작정 부딪히며 풍경을 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며 모험이지만 여행을 하기 앞서, 수많은 사진과 글을 보며 몇 날 몇 밤을 보낸 다음, 그 길에 만나면 감동은 몇 배를 벅차오르게 됨을. 어쩜 류즈의 '창쟈오먀오(長角苗)'와 스동의 '먀오주(苗族)'가 더욱 애틋함은 처음부터 마음먹었던 나선 길 위의 풍경 때문일는지 모릅니다.
저는 류즈라는 '낯선 동내'와 '날씨' '하루라는 시간' 등으로 잠시 고민을 했는데, 처음 마음이 중요한가 봅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이 길을 나선다 하여도 크게 낯설어 하지 않을 것임을 믿습니다.
2010. 05. 02 구이저우(貴州) 류즈(六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