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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여성문화유산연구회 회원들과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위치해 있는 소령원과 수길원을 찾았다.
구파발역에서 소령원으로 가는 333버스는 30분 배차간격을 두고 움직였다. 버스는 구불구불 산길을 돌았다. 부석부석 나뭇잎이 마르며 붉게 물들고 있는 호젓한 길은 여행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맞춤했다. 어느 길을 넘으면 아파트촌이 나오고 어느 고개를 돌면 한적한 농가가 나오고 하기를 서너 번, 그렇게 40여 분 걸려 광탄면 영장3리(영장삼거리)에 도착했다.

소령원과 수길원까지 걸어들어 가는 10여 분 길 또한 한적하고 아담했다. 왕릉이 주는 권위나 위엄이 있는 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회원들은 둘레둘레 돌아보며 주변의 풍경을 먼저 즐겼다. 안온한 길은 편안한 마음이 들게 했다.

소령원과 수길원은 지척에 있다. 소령원은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묘소고 수길원은 영조의 첫 번째 후궁인 정빈 이씨의 묘소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거의 한 공간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의 거리다.

 소령원 들어가는 길. 오른 쪽 수길원, 왼쪽 숙빈 최씨 신도비, 맨 안쪽에 소령원.
소령원 들어가는 길. 오른 쪽 수길원, 왼쪽 숙빈 최씨 신도비, 맨 안쪽에 소령원. ⓒ 박금옥

"드라마 <동이>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파주 삼릉에서 이곳을 관리하기 위해 파견되어 있다는 소장님의 해설을 듣는 중에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소령원의 사초지를 오르고 있었다. 그곳이 고향이라는 소장님은 땅바닥에 그림을 그려가며 우리에게 소령원에 대한 야사 한 자락을 펼쳤다. 풍수지리상으로 소위 천하명당이라는 이곳에 숙빈 최씨의 묘가 조성되기까지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는다.

우리가 다음 일정이 있다고 하니, "아무튼 83세까지 52여 년 임금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세계사적으로 영조 밖에는 없어요. 그것은 이곳이 명당임을 말해 주는 겁니다. 묘에 올라 가만히 앉아 있을라치면 주변 지세가 좋아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집니다. 또 검소한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묘역을 화려하게 하지 않은 아들의 예의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직도 이야기가 남아 있는 아쉬움을 그렇게 마무리한다. 

 소령원. 묘에서 바라다 본 전경. 왼쪽 비각이 '원'으로 봉해지면서 세운 비각이고 정자각과 나란히 있는 비각이 맨 처음 묘를 조성할 때 세운 비각.
소령원. 묘에서 바라다 본 전경. 왼쪽 비각이 '원'으로 봉해지면서 세운 비각이고 정자각과 나란히 있는 비각이 맨 처음 묘를 조성할 때 세운 비각. ⓒ 박금옥

조선시대 왕족의 무덤을 부르는 명칭에는 능-원-묘가 있다. 왕과 왕비는 '능', 왕세자와 비, 혹은 왕세손과 비, 추존왕, 그리고 왕의 생모인 빈에 해당되는 사람은 '원', 그 외 왕자, 공주, 후궁들의 무덤은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묘'라고 한다. 그러나 왕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묘가 처음부터 '원'은 아니었다. 영조가 즉위를 한 뒤에도 한동안은 일반적인 묘에 머물러 있었다.

영조의 즉위 초 권력기반이 약했던 영조는 자신의 생모를 추봉하는 일을 참고 참았다가 즉위 20년이 되던 해에 생모의 사당과 무덤의 호를 높여 묘호(廟號)는 육상(毓祥), 묘호(墓號)는 소령(昭寧)이라 하고, 앞으로는 왕의 생모뿐만 아니라 그 조상까지도 추증할 수 있는 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왕권이 확고해진 왕위 29년 때 가서 마침내 숙빈 최씨에게 화경(和敬)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묘(廟)'는 '궁(宮)', '묘(墓)'는 '원(園)'이라 하여 사친의 지위를 높이는 새로운 궁원제도를 도입했다 한다.

 소령원. 명칭만 '원'일뿐 왕릉으로써의 격식은 모두 갖추어 놓았다.
소령원. 명칭만 '원'일뿐 왕릉으로써의 격식은 모두 갖추어 놓았다. ⓒ 박금옥

소령원 안에는 비각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묘(정자각과 나란히 있다)였을 당시 것이고, 능으로 오르는 중간쯤에 원으로 추봉되면서 세워진 것이 있다. 완만한 사초지를 올라 묘역을 돌아보았다. 바라보이는 고령산(안산)의 능선이 부드럽게 다가온다.

"영조가 즉위 29년에 생모의 묘를 원으로 추봉하면서 세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문무대신 석물 옆에 있는 석말입니다. 석호나 석양, 정자각등과 마찬가지로 말은 왕릉의 격식에 따른 것이죠."

그 후 '원'을 '능'으로 '빈'을 '왕후'로 봉하자는 상소들이 있었지만, 추진이 되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영조 사후에도 숙빈 최씨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한다. 묘역은 아담하면서 검소해 보였지만, 일직선상에 곧게 들어서 있는 홍살문, 정자각, 묘, 그리고 비각, 석물 등은 왕릉의 격을 알맞게 갖추고 있었다.

 수길원. 묘와 어긋나게 홍살문이 산 쪽으로 치우쳐 있고, 정자각과 비각도 산 쪽으로 치우쳐 세운 흔적이 터로만 남아 있다. (왼쪽 숲)
수길원. 묘와 어긋나게 홍살문이 산 쪽으로 치우쳐 있고, 정자각과 비각도 산 쪽으로 치우쳐 세운 흔적이 터로만 남아 있다. (왼쪽 숲) ⓒ 박금옥

소령원을 나와서 바로 옆에 숨은 듯이 들어 있는 수길원을 찾았다. 땅바닥에 '콕' 박혀 있는 안내판이나 '수길원' 표지석의 모양새가 무덤의 지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해서 쓸쓸했다. 정빈 이씨는 영조의 후궁이며, 효장세자의 생모다. 그러나 영조가 연잉군에 있을 때 세상을 떴고, 영조가 즉위한 후에야 왕세자를 낳은 생모라 해서 빈으로 봉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10세로 단명했다. 그 뒤 사도세자(추존 장헌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효장세자의 양자가 되어 즉위를 하게 되면서 효장세자는 추존왕 진종이 된다. 그리고 정조에 의해 왕의 생모에 대한 예를 따라 자연히 정빈 이씨의 사당은 '연호궁', 묘는 '수길원'으로 승격된다.

 수길원. 소령원과는 너무 다른 격식의 묘. 석호, 석양, 석말도 없었다.
수길원. 소령원과는 너무 다른 격식의 묘. 석호, 석양, 석말도 없었다. ⓒ 박금옥

묘소로 들어가는 길의 울퉁불퉁 잔돌들은 발을 헛돌게 했다. 바삭하게 떨어진 낙엽도 스산해 보였다. 홍살문은 한 쪽으로 치우쳐 비스듬히 서있고, 비각과 정자각은 비탈 한 쪽 귀퉁이에 주춧돌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사초지도 부드럽지가 않고 푹푹 빠지는 느낌이 들어 발을 내딛기가 껄끄러웠다. 기본적인 관리만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잘나가는 남편을 두면 당대가 편하고, 잘난 아들을 두면 후대까지 영화롭게 되는 거라고…."

같은 '원'인데, 너무 다른 상황의 민망함을 이런 우스개로 얼버무리며 우리 또한 서둘러 수길원을 나왔다.

 숙빈 최씨 신도비가 들어 있는 비각.
숙빈 최씨 신도비가 들어 있는 비각. ⓒ 박금옥

소령원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왼쪽에 숙빈 최씨의 신도비가 들어있는 비각이 있고 조금 더 들어가면 오른 쪽에 수길원, 그리고 맨 안쪽에 소령원이 있다. 나오는 길에 숙빈 최씨의 신도비를 보았다. 영조는 생모의 묘를 이곳에 쓰면서 신도비도 같이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아직 연잉군으로 있었기에 신도비를 세우는 것으로 추모의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그리고 즉위 다음 해 지금의 종로구 궁정동에 어머니의 사당(지금의 칠궁 자리)을 지었다. 사당은 영조의 왕권이 공고해진 즉위 29년에 육상 '궁'으로 추봉된다. 비각 안에 들어 있는 신도비의 엄청난 크기에 모두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수길원의 정빈 이씨와 너무 다른 격식에 우리들은 또 한 번 잘난 자식을 운운할 수밖에 없었다.

 보광사. 숙빈 최씨를 위해 영조가 지었다는 어실각과 향나무
보광사. 숙빈 최씨를 위해 영조가 지었다는 어실각과 향나무 ⓒ 박금옥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30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보광사에 들렀다. 이곳은 구파발에서 넘어갈 때 소령원보다 먼저 나온다. 소령원과는 10여 분 거리에 있다. 보광사에는 영조가 숙빈 최씨를 기리기 위해 지어논 어실각과 향나무가 있으며 묘소에 올 때면 늘 들러서 생모를 추모했다고 한다.  

영조는 정빈의 묘소를 시어머니인 숙빈 최씨 옆에 마련했다. 그리고 자신도 소령원이 가까운 서오릉에 묏자리를 마련했지만, 사후 일이라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동구릉에 묻히게 됐다. 종로구 궁정동의 칠궁에는 숙빈 최씨의 사당인 육상궁과 정빈 이씨의 연호궁이 한 공간에 들어 있다고 한다.

물론 영조 때 행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들과 남편은 빠지고 두 여인만이 한 공간에서 여전히 그 인연의 끈을 끌어가고 있는 형상에 후대 사람인 우리들은 묵념으로 평안하시기를 빌었다.


#여성문화유산연구회#소령원#수길원#영조#효장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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