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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별을 헤아리며
- 글 : 로이스 로리
- 옮긴이 : 서남희
- 펴낸곳 : 양철북 (2003.3.14.)
- 책값 : 9000원

(1) 좋은 벗

좋은 벗을 만날 때하고 달갑잖은 사람을 만날 때 똑같기란 힘듭니다. 누구한테나 서글서글하거나 살가이 마주할 수 있으며, 좋은 벗님한테 한결 따사로우며 넉넉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좋은 벗이란 서로 마음을 활짝 열면서 어깨동무하는 사람입니다. 달갑잖은 사람이란 서로 마음을 꽁꽁 닫아걸며 쳐다보기 싫은 사람입니다. 내가 너한테서, 네가 나한테서 뭔가를 얻어내거나 등을 후리거나 할 뜻이 없을 때에 좋은 벗으로 사귑니다. 무언가 내 배를 채을 꿍꿍이로 사귀려 할 때에 달갑잖은 사람이 됩니다.

겉그림.
 겉그림.
ⓒ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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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억양이 어색한 덴마크말이었다. '3년이나 되었으면서……. 우리 나라를 점령한 지 3년이나 되었는데도 우리 말을 저렇게 못하다니.' 안네마리는 속으로 그를 한심하게 생각했다 ..  (12쪽)

오래도록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 해서 좋은 벗이 되지 않습니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좋은 벗이 될 수 없지도 않습니다. 열 해를 알고 지낸 이가 다섯 해를 알고 지낸 이보다 살가운 사이가 되지 않습니다. 스무 해에 걸쳐 얼굴을 늘 마주보았다 해서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챈다거나 마음 깊은 자리가 어떠한지를 깨닫지는 못합니다.

스치는 손길에서 살필 수 있어야 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손바닥과 손가락에 아로새겨진 굳은살을 보면서, 발바닥에 박힌 꾸덕살을 보면서, 얼굴에 온통 파인 주름살을 보면서 한 사람 삶을 헤아립니다. 손톱에 밴 흙때를 들여다 보면서, 두툼하거나 하이얀 손가락을 보면서, 몸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으면서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돌아봅니다.

나 스스로 당신한테 좋은 벗이 되고자 할 때에는 나 스스로 좋은 삶을 일굴 노릇입니다. 좋은 삶이란 돈을 많이 버는 삶이 아니요, 좋은 삶이란 이름을 떨치는 삶이 아니며, 좋은 삶이란 큰힘을 거머쥐는 삶이 아닙니다. 좋은 삶이란 내 깜냥과 그릇과 몸에 걸맞게 즐거이 일구는 나날이 쌓이며 이루어집니다. 좋은 삶이란 내 손으로 차근차근 갈고닦으며 돌보는 마음밭입니다. 가슴으로 끌어안는 삶이요, 두 다리로 씩씩하게 선 삶이며, 두 팔로 얼싸안는 삶일 때에 바야흐로 좋은 삶으로 이어갑니다.

.. "단추 가게가 뭐 어때써? 단추 가게가 무슨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잖아? 히르슈 아줌마는 좋은 분이고, 사무엘도 좀 멍청해 보이긴 하지만 아무한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을 애야. 나쁜 짓을 할래야 할 수도 없지, 뭐. 안경을 벗으면 뭐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텐데!" 그때 문득 안네마리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만약에 히르슈 아줌마네가 단추를 팔지 못하면 어떻게 살아?" ..  (37쪽)

좋은 벗하고 마주한 자리에서는 절로 좋은 말이 샘솟습니다. 좋은 벗님하고 손을 맞잡으며 일을 할 때에는 좋은 꿈이 시나브로 피어납니다. 좋은 벗들과 어울리며 지내는 동안 좋은 일을 좋은 넋으로 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자꾸자꾸 좋지 못한 쪽으로 기우는 까닭이란, 나 스스로 나부터 좋은 마음이지 못할 뿐 아니라, 서로서로 궂은 꿍꿍이를 키우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참말, 국가보안법부터 4대강이라고 하는 토목건설까지 우리 삶을 어느 만큼 좋은 쪽으로 이끈다 할 만할까 궁금합니다. 법은 누구한테 도움이 되는 틀이고, 의사라는 자리는 얼마나 돈을 벌어들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교사는 얼마나 거룩한 일꾼이며, 어버이 되는 사람은 어떤 마음씨여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내 마음속에서 고요히 솟아오르는 좋은 말을 나누면서 내 사랑스러운 벗님과 좋은 삶을 꾸릴 수는 없는 노릇인지 궁금합니다.

좋은 벗하고 좋은 밥 한 그릇 조촐히 나누려는 매무새로, 좋은 벗하고 좋은 술 한 잔 기쁘게 나누려는 몸가짐으로, 좋은 벗하고 좋은 책 한 권 즐거이 나누려는 몸짓으로, 좋은 벗하고 좋은 길을 두 손 맞잡으며 걸으려는 모양새로 좋게좋게 살아가면 아름다웁지 않나 궁금합니다.

나한테 더 있는 힘을 쏟고, 나한테 더 있는 돈을 바치며, 나한테 더 있는 사랑을 들입니다. 나한테 덜 있는 힘을 얻고, 나한테 덜 있는 돈을 받으며, 나한테 덜 있는 사랑을 채웁니다. 하루하루 고맙게 살아갑니다.

.. "설마 군인들이 버터까지……, 그 말이 뭐더라……, 재배치하는 건 아니겠죠?" 엄마는 슬픈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단다." 하고 대답했다.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 "정말 그래. 모든 농부들의 버터를 걷어다가 자기네 군대의 뱃속에다 갖다 넣는 거지! 삼촌이 이렇게 조금이라도 숨긴 것을 알면 아마 당장에 총을 들고 달려올 거다!" ..  (91쪽)

세 살짜리 우리 딸아이를 번쩍 안아 어르는 일곱 살짜리 언니를 바라봅니다. 일곱 살짜리 이웃 언니는 세 살짜리 어린 동생하고 신나게 놀아 줍니다. 말을 받고 손을 잡으며 예쁘게 감싸안습니다. 세 살짜리 우리 딸아이는 언니한테서 받는 따스함을 자그마한 몸뚱이로 잘 삭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따스함을 고이 건사해서 저보다 세 살 어릴 동생한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랑을 받았기에 다시금 사랑을 물려준다기보다, 사랑을 받으며 사랑이 얼마나 따스한가를 새삼 깨닫습니다. 따로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더 너른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 줄 아는 가운데, 나 스스로 내 자리에서 새롭게 사랑을 길어올릴 수 있습니다. 어디에나 언제나 사랑이라는 씨앗은 고요히 잠들어 있으니까요. 내 마음속에서 잠자는 씨앗을 살짝 깨워 내 좋은 벗님하고 나눌 사랑으로 이을 때, 내 하루하루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우며 고운 빛깔로 물든다고 느낍니다.

 (2) 궂은 벗

어린 나날, 둘레에는 으레 좋은 벗과 궂은 벗이 있었습니다. 좋은 벗은 좋은 벗대로 마음이 여리고, 궂은 벗은 궂은 벗대로 마음이 여립니다. 모두 작은 사람 작은 아이이거든요.

동무들한테 짓궂게 구는 녀석이 마음 깊은 데까지 몹쓸 생각이나 버릇으로 젖어 있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짓궂은 동무녀석네 집에 놀러가 보면 이 짓궂은 동무녀석 또한 집에서는 둘도 없이 사랑스러운 아들이거나 딸입니다. 집에서건 동네에서건 참으로 작은 아이랍니다. 고만고만한 또래에서는 주먹으로 을러대거나 구지레한 못난 짓을 저지를지라도, 덩치 큰 형이나 언니 앞에서는, 또 어버이나 동네 어른 앞에서는 더없이 자그마한 아이입니다.

.. 안네마리는 빙긋 웃으며 어둠 속에서 동생을 꼭 껴안았다. 덴마크 아이들은 누구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란다. 이름난 이야기꾼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도 바로 덴마크사람이다 ..  (22쪽)

하루를 더 살고 새 하루를 다시 살면서 헤아립니다. 이제까지 만나거나 스친 숱한 궂은 벗들 가운데 딱하거나 안쓰럽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국민학교 때라든지 중·고등학교 때라든지 군대에서라든지 회사에서라든지 길에서라든지 …… 수없이 많은 짓궂은 사람을 스칩니다. 까닭없이 주먹다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돈에 눈이 멀어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며, 아예 생각을 안 하며 막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된 짓을 하는 어른 가운데 당신 집에 토끼 같은 아이를 애틋하게 돌보는 사람이 있기 일쑤입니다. 아니, 제아무리 막되게 산달지라도 제 아이 앞에서까지 막되게 살지는 못하기 마련입니다. 바깥에서 여린 사람을 들볶을지라도 겉으로 우쭐거리는 껍데기일 뿐입니다. 어설픈 허울을 쓰면서 어줍잖게 제 살을 갉아먹는 셈입니다.

청소당번이면서 몰래 내빼는 괘씸한 동무들은 늘 있습니다. 몰래 내뺀 녀석을 담임한테 일러바칠 수 있습니다. 한 번쯤 일러바칩니다. 그러나, 일러바치고 나서 뉘우칩니다. 괘씸한 녀석이 우락부락한 선생들한테 얻어터지며 쫄아드는 가녀린 모습을 보니, 몰래 내빼며 혀를 쭉 내밀던 그 짓궂은 모습이란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예 불쌍하고 여린 동무입니다. 아마 무슨 일이 있겠지요. 그냥 귀찮거나 번거로와서 더 뛰어놀고 싶기도 하겠지요. 그러면 청소당번을 내빼지 않은 얌전한(?) 내가 동무녀석 몫을 더 해 주면 됩니다. 혼자서 교실을 쓸고 닦으며 치우더라도 삼십 분이면 다 해낼 수 있습니다. 청소당번을 맡은 동무들이 모조리 내뺐을지라도 그러거나 말거나 나 스스로 천천히 책걸상을 치우면서 비질을 하고 걸레질을 하면 됩니다. 청소당번 어느 누구도 칠판을 안 지우고 지우개를 안 털어 놓았다 한들, 내가 청소당번이 아니라 한들, 조용히 일어나서 나 스스로 치우고 지우고 털어 놓으며 깔끔히 마무리지어 놓으면 됩니다. 꼭 당번이 하란 법은 없으며, 당번이 안 하더라도 손가락질하거나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하고, 할 만한 사람이 하면 되니까요. 길에 떨어진 꽁초를 밟아서 끄거나 골목에서 뒹구는 비닐봉지를 주워서 쓰레기통으로 옮기는 일은 '꽁초를 버린 사람'이나 '쓰레기 버린 이' 스스로 할 때에 가장 낫겠지요. 그러나, 버려진 꽁초나 쓰레기를 본 사람이 그 자리에서 치워 줄 수 있습니다. 이곳까지 청소부를 불러서 치우라 하지 않아도 돼요.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열두 해를 다니는 동안, 국민학교 때에 몇 차례 '당번이 아니면서 칠판을 지우고 지우개를 터는 동무'를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어, 야, 너 당번 아니잖아?" "당번이 아니어도 지워야 하잖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동무 옆에서 함께 거듭니다. 동무는 씨익 웃습니다. 저도 따라서 웃습니다. 동무녀석은 요 깜찍한 짓을 어디에서 배웠을까요. 제 어머님한테서 배웠을까요, 제 아버님한테서 익혔을까요, 동네 어르신한테서 받아들였을까요. 당번 노릇을 하지 않은 동무는 참 짓궂지만, 이 짓궂은 동무가 있어 한결 고운 동무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얄궂은 동무가 있기에 더욱 착한 동무를 깨닫습니다.

.. "내 단짝 친구였던 헬레나가 저 집에 살았지. 그 집에 가서 가끔 같이 밤을 새우기도 했어. 그 친구가 주말이면 더 자주 우리 집에 왔지만. 시골이 도시보다 더 재미있는 것 같아." 엄마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  (77쪽)

궂은 벗 때문에 학교 가기 싫은 적이 잦았습니다. 조그마한 학교 울타리에서 무슨 힘다툼을 한다며 툭하면 여린 아이를 괴롭히거나 주먹질을 하거나 주머니를 터는 동무들이 참 못마땅하며 밉살스러웠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대학바라기 공부만 죽어라 하는 가운데 이런 공부라면 굳이 학교라는 데에 안 나오더라도 홀로 할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따분하며 재미없는 교과서와 시험지만 푸느라 햇살 밝은 날에도 어두컴컴한 시멘트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한다면, 어떠한 동무이건 착하거나 밝거나 고운 마음결을 지키기 만만하지 않겠다고 느꼈습니다. 우중충한 옷을 '학교옷'이랍시고 입혀 놓으니까 저마다 다르며 고운 동무들은 빛을 잃습니다. 까까머리가 되도록 머리카락을 밀어 버리니, 볼썽사납게 죄수 차림이 됩니다. 군대와 학교와 감옥이란 똑같은 불지옥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 아닌가 하고 느꼈습니다. 착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지 못하는 군대요 학교요 감옥입니다. 저절로 궂은 사람으로 굴러떨어지도록 내모는 군대이며 학교이며 감옥이라고 느낍니다. 숲에서 뒹굴고 논밭이랑 벗삼으며 삶을 살찌우는 슬기를 깨우치도록 하는 곳이 학교여야 할 텐데, '학교'라는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쇠사슬이 된다고 느낍니다. 토박이말 사랑으로 외치는 '배움터'가 아닙니다. 이름 그대로 배우는 터가 되어야 할 배움터입니다. 이름 그대로 보금자리나 집터가 되어야 하고, 나눔터가 되어야 하며, 살림터가 되어야 합니다. 참다운 놀이터야 하고 즐거운 일터여야 합니다. 너그러운 쉼터여야 하고, 반가운 만남터여 하며, 기쁜 새터로 자리잡을 노릇입니다.

궂은 벗이란 처음부터 따로 있지 않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사람들 마음밭에는 사랑스러운 씨앗과 함께 구질구질한 씨앗이 나란히 있어, 오늘날 이 땅 학교와 군대와 감옥은 사람들 마음밭에서 구질구질한 씨앗이 우람하게 커지도록 부추긴다 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사회에서도, 회사에서도, 전철이나 버스에서도, 길거리에서도 …… 사랑스러운 씨앗이 올망졸망 돋아나게끔 이끌지 못하거든요.

.. 여기서부터는 덤불이 너무 자라 오솔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안네마리는 키 큰 블루베리 덤불 옆에 감춰진 오솔길 입구를 찾아냈다. 늦여름에 그 달콤한 블루베리를 따려고 얼마나 자주 여기서 멈춰 섰던가! 입과 손은 금방 퍼렇게 물들곤 했다. 그러고 집에 가면 엄마가 늘 웃으셨다 ..  (139쪽)

평화는 평화를 부릅니다. 전쟁은 전쟁을 찾습니다. 고운 벗은 고운 벗을 부릅니다. 궂은 벗은 궂은 벗을 찾습니다. 그런데 평화는 전쟁을 평화로 바꿀 줄 알며, 고운 벗은 궂은 벗을 고운 벗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전쟁 또한 평화를 전쟁으로 끌어당길 줄 알며, 궂은 벗 또한 고운 벗을 궂은 벗으로 사로잡을 줄 압니다.

 (3) 평화문학 <별을 헤아리며>

전쟁 이야기를 다룬 문학 <별을 헤아리며>를 읽습니다. 책을 찬찬히 읽으며 마지막 쪽을 덮습니다.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이 문학을 일컬어 으레 '전쟁문학'이라 말할 수 있겠다 싶으면서 어딘가 찜찜합니다. 글쎄, 모두들 '전쟁문학'이니 무어니 하고 말하는데, 이러한 이름이 어울리지 않다고 느낍니다. 다른 전쟁문학을 놓고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이러한 이름을 붙이는 사람이 있는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별을 헤아리며>와 같은 문학을 가리킬 때에는 '평화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어울리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전쟁 때문에 아프고 힘겨운 나날을 그리니까 '전쟁문학'이라 할 수 있는데, 곰곰이 살펴보면 전쟁통에 평화를 꿈꾸는 삶을 그리기에 '평화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살펴보면 전쟁이건 아니건 언제나 평화롭게 살아가며 평화로운 사람들과 평화로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기에 '평화문학'이라는 이름이 아니면 안 어울리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 전쟁은 언젠가는 끝난다. 헨리크 삼촌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정말이었다. 전쟁은 거의 2년이나 지나서 끝났다. 안네마리는 열두 살이 되었다 … 거의 2년 동안 이웃들은 탈출한 유대인들을 위해 화분도 돌봐 주고 가구의 먼지도 털어 주고 촛대도 닦아 주었다. 엄마도 엘렌의 가족을 위해 그렇게 해 주었다. "친구란 그렇게 하는 거야." 엄마가 말했다 ..  (164∼165쪽)

전쟁문학으로 <별을 헤아리며>를 읽을 때하고, 평화문학으로 <별을 헤아리며>를 받아들일 때에는 크게 다릅니다. 평화문학인 <별을 헤아리며>라 한다면, 작품에 나오는 '딱하거나 안쓰러운' 독일 병사들한테 당신들이 얼마나 바보스러우며 어리석은가를 깨닫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당신들 독일 병사한테도 사랑스러운 딸아이가 있고 고마운 어머니가 있으며 믿음직한 벗이 있음을 깨닫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당신들 독일 병사 고향마을에도 맑은 해가 돋아나고 밝은 달이 비추며 너른 들판에 아름답고 구수한 곡식이 익는 줄을 깨닫도록 손길을 내밀 수 있어요.

평화란 사랑입니다. 평화는 해코지가 아닙니다. 평화란 호미이자 쟁기입니다. 평화는 무기가 아닙니다. 평화란 믿음입니다. 평화는 따돌림이 아닙니다. 평화란 나눔입니다. 나한테 있는 돈이든 힘이든 무어든 스스럼없이 이웃과 나누는 마음이 평화입니다. 남한테 있는 돈이든 힘이든 빼앗으려 하거나 가로채려 하거나 후려치려 하는 마음은 평화일 수 없습니다.

평화문학 <별을 헤아리며>는 좋은 벗으로 사귀는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아끼며 사랑하는가를 찬찬히 그립니다. 좋은 벗으로 언제까지나 아름다이 살아가고픈 이들이 당신들 하루를 어떻게 빛내거나 일구는가를 알뜰히 그립니다. 착하게 살아가는 즐거움을 그리고, 참다이 어깨동무하는 기쁨을 그리며, 곱게 사귀는 멋을 그립니다. 밤하늘을 달과 함께 빛내는 별 하나는 모든 사람 가슴에 고즈넉히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 별을 잘 알아채고, 누군가는 이 별을 죽는 날까지 못 알아챕니다. 별을 알아채는 사람은 평화를 사랑하고, 별을 못 알아채는 사람은 전쟁에 눈이 멉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별을 헤아리며

로이스 로리 지음, 서남희 옮김, 양철북(2008)


태그:#청소년책, #청소년문학, #책읽기, #삶읽기, #평화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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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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