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동취재단, 황방열 기자]어제까지도 치매를 앓았지만 60년만에 딸을 만날 때는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왔다.
5년 전부터 치매를 앓아온 남측 아버지 박상화(88)씨는 북측의 딸 박준옥(64)씨를 첫 눈에 알아보고 울음을 쏟아냈다. 전날까지도 "우리가 금강산에 관광 온 것이냐"고 물어, 혹시 딸을 알아보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던 주변의 우려가 무색했다.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부인과 딸(준옥), 아들(준봉)을 낳고 살던 박씨는 1.4후퇴 때 "가장이 중공군에 끌려가면 안 된다"는 부인의 권유로 홀로 월남했다고 한다. 이후 박씨는 곧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경기도 파주에 터를 잡았으나 휴전이 된 뒤 결혼해 2남 2녀를 뒀다.
박씨는 4살 때 헤어진 뒤 처음 만난 딸에게 "내 딸아 미안하다, 내가 혼자 내려오는 것이 아닌데…"라며 눈물을 쏟았다. 딸 준옥씨는 "어머니는 조선 여성으로서 74살까지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박씨를 비롯한 남측 이산가족 상봉신청자 94명과 동반가족 43명은 3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측 가족 203명을 만났다. (앞서 10월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진행된 '추석계기 1차 상봉'에서는 북측 97명, 남측 436명의 이산가족이 만났다.)
"1년 전에만 왔어도 생전의 형님을 뵐 수 있었을 텐데..."
이날 상봉에는 국군포로인 북측의 서필환(사망)씨의 아들 백룡(55)·승룡(45)·칠룡(42)씨 3형제가 생전 처음 숙부 익환(72)씨를 만나, 부친이 지난해 4월 부모님과 남측가족을 그리워하다고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필환씨는 22살이던 1949년 군에 징집됐고, 당시 12살이던 익환씨는 어머니 손을 잡고 서울 한남동에서 입대훈련을 받던 형님을 면회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필환씨는 6.25에 포병으로 참전했고, 국방부는 가족에게 1950년 7월 15일자로 그가 행방불명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57년이 지난 2007년 중국의 지인을 통해 형님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익환씨는 곧바로 이산가족상봉신청을 하려 했으나 2008년에는 상봉행사가 없었다. 결국 2009년에 신청을 해 올해 상봉단에 포함됐으나, 이미 형님은 세상을 떠난 뒤였다.
북측 조카 백룡씨는 준비해온 가족들 사진과 필환씨가 생전에 받은 각종 훈장 15개를 숙부에게 보여주면서 "아버님이 생전에 '동물은 죽어 가족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셨다. 동네에서 서필환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했다. 익환씨는 조카들을 족보에 올리기 위해 생년월일과 한자 이름을 꼼꼼하게 적었다.
이번 '추석계기' 상봉에서 국군포로·납북자 상봉은 서씨 가족이 유일했다. 이와 관련해 남측은 지난달 26~27일 개성 적십자회담에서 북측에게 "특수이산가족 25명에 대해 생사확인을 의뢰했는데 24명은 '확인불가'라고 하고, 1명에 대해서만 답을 준 것은 너무나 불성실한 처사"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97세 최고령 김부랑 할머니, 남편이 북에서 낳은 딸 만나
남북한 합쳐 이번 상봉의 최고령자인 남측 김부랑(97)씨는, 남편이 북측에서 결혼해 낳은 딸 권오령(65)씨와 외손자 장진수(38)씨를 만났다.
김씨는 시댁인 안동에서 살았는데, 교사이던 남편은 북한지역으로 발령받아 떠난 뒤 해방이후 38선이 막히면서 헤어졌다고 한다. 김씨는 재혼을 하지 않은 채 시부모님을 모시고 1남 2녀를 키우며 살아왔다.
김씨는 남편이 북한에서 낳은 딸인 오령씨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혔고, 김씨를 모시고 온 아들 오인씨는 "아버지라고 큰 소리로 한 번 불러보고 싶었다"고 눈물을 쏟았다. 김씨는 남편의 묘소에 부어달라며 다른 선물들과 함께 술 한 병을 건넸다.
한편 이번에 상봉에 나선 남측 94명 가운데 90대가 19명으로 역대 최고령을 기록했다. 이어 80대 48명, 70대 27명으로 69세 이하는 한 명도 없어, 이산가족 고령화가 심각한 상태임을 보여줬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90세 이상이 이산가족 상봉자의 20%가 넘는 건 이번이 처음으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이날 첫 만남에 이어 4일 개별상봉, 공동중식, 단체상봉을 하고 5일 작별상봉을 한 뒤 헤어지게 된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남북고향방문 행사를 포함해 이번까지 총 19번 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