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안다'는 일상사에서 선입견이나 짧은 지식으로 속단하여 저지르기 쉬운 시행착오를 경계하는 말이다.
'맞고 안 맞고는 맞춰봐야 안다'는 한옥을 짓기 위한 부재들의 장부 크기나 방향을 혼동하여 잘못 팔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생각해보면, 이 말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넘어가게 되면 참담한 사고로 돌아온다.
3차원 건축설계 프로그램은 부재들의 장부를 사전에 점검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건축현장에서 사용하는 설계도는 2차원 평면도이다. 주로 오토캐드(Autocad)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3차원으로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으나 낱개 부재 하나하나를 실재로 건축하는 방식으로 결구해가며 확인해 보는 방법까지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한옥학교에서 한옥 건축기술을 배우고 익히면 손수 한옥을 지을 것이고, 소요될 창호나 가구도 나와 집사람이 같이 짤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나 발상이 얼마나 우매하고 무모한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3차원 건축 설계프로그램으로 설계하고 결구되는 한 곳 한 곳의 부재들을 컴퓨터 화면 상에서 맞춰보면서 확인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내가 확인해 본 3차원 건축프로그램인 스케치업(sketchup) 프로그램은 아직까지는 시현에 많은 제한 사항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때문에 이러한 결점은 곧 보완되리라 믿고 불편함을 참고 있다.
스케치업 프로그램은 무료로 공개된 프로그램이다. 바로 이 때문에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물론 나는 스케치업 소유사인 구글(google)과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다. 스케치업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것도 불과 몇 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머잖아 건축계의 윈도 3.1이 될 것이다. 쉽고 매우 유용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옥학교에서 배운 결구법들을 스케치업 프로그램으로 작성하여 보관해 간다. 앞으로 지을 한옥 건축도 진행 과정을 3차원 프로그램으로 설계하면서 확인해 갈 것이다. 가능성을 시험해보기 위해 지금 배우고 있는 '초익공' 결구법을 스케치업 프로그램으로 작성하였다.
초익공 설계
한옥학교의 '굴도리 결구' 다음 교육일정은 '초익공 결구법'이다. 다포집과 주심포 형태의 건물로 건너가는 다리이다. 한옥의 고급 결구 기술이 대부분 동원된 결구법이라 폿집에서 가장 간단한 형태이지만, 이를 익히면 한옥 목수의 든든한 교두보가 확보된 바나 다름 없다. 민가 건축에 사용하는 경우는 드문 형태이다. 누각이나 정자, 사당, 향교, 사찰 등 예술성이 가미되어야 하는 상징적인 건물을 지을 때 많이 사용하는 건축방법이다.
초익공은 기둥, 창방, 초익공, 주두, 보, 소로, 장여, 굴도리 가 차례로 결구되어 서까래를 타고 내려오는 지붕의 무게를 기둥을 통해 초석으로 전달하는 결구법이다. 한옥의 멋은 처마나 용마루 곡선미로 대변할 수 있으나 건축물마다 다른 익공의 곡선과 초의 형태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다.
기둥은 지붕을 받치면서 집의 형태와 모양을 유지하는 골조다. 착시현상을 수정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흘림의 형태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한다. 주로 사각기둥과 원기둥이 많이 쓰이며 원기둥은 벽체가 없는 바깥쪽에 사용하고 사각 기둥은 벽체와 연결해야 할 내부기둥으로 쓰는 것이 어울린다. 원기둥일 경우 한 자 크기, 사각형기둥 기둥은 7치 정도 크기를 사용하면 아주 훌륭한 건물이 된다.
기둥의 설계가 끝나면 창방을 설계할 차례이다. 창방은 장여를 보완하여 기둥을 좌우로 연결하는 부재다. 장여와는 소로를 통해 상하로 연결된다. 창방이 기둥에 연결되는 방법은 '통넣고주먹장 맞춤' 결구방식이다. 기둥에 맞춰 창방의 크기를 결정하고 설계한다. 사용하는 단위는 mm이지만 이를 약간 변형으로 사용하는 '자'이다. 천 자리수는 '자를 표시하며 백 단위는 '푼', 십 단위는 '리'이다. 예를 들어 부재의 길이가 12자 3치 5푼이면 12350mm로 표기했다.
창방 결구가 끝나면 익공을 설계하고 정확도를 확인한다. 익공은 보아지와 같이 보를 지지하는 기둥의 면적을 확장하는 역할을 하면서 집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역할을 겸한다. 익공을 통해 살기 위한 집이 예술작품이 된다. 익공장식이 한 줄일 경우 초익공이라 하고 익공 위에 또 다른 익공이 있는 경우 이익공이라 한다.
익공은 형태나 옆면에 조각하거나 새기는 초의 모양이 목수기문에 따라 다르다. 이광복 도편수 기문에 입문한 지용한옥학교 2기 학생들도 스승이 제시하는 익공의 형태를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 반복 연습한다. 익공 끝의 쇠서나 초새김은 시작과 끝이 없이 순환하는 우주의 원리와 하늘을 향하는 인간의 염원을 콩머리로 함축하여 표현하는 수단인 것도 알게 되었다.
익공과 창방이 기둥 위에서 결구되면 주두가 올라가고, 주두를 가로지르는 보가 설계되고 이 보에 장여가 결구되고 장여와 창방 사이에 소로가 끼워진다. 소로는 옛날 긴 부재인 장여와 창방의 접촉면을 완벽하게 수평면으로 접합시키기 어려워 이를 보완하면서 장식의 미를 갖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지만 지금은 장식의 의미가 강하다.
장여가 결구되면 마지막으로 '두겁주먹장' 결구방식으로 결구될 굴도리를 설계하여 장여 위에 올리면 '초익공' 3차원 설계가 완성된다. 완성된 모델을 X레이투시법으로 부분부분을 확대해 가면서 결구 상태를 확인한다.
설계를 끝내고 각 낱개 부재를 칫수를 기록한 상태로 출력했다. 신무기로 무장한 자신감으로 의기양양하게 학교 치목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설계된 크기와 형태로 부재를 치목하는 일은 완전히 별개인 다른 분야의 일이었다.
초익공 장부파기와 결구11월 3일인 수요일 저녁까지 2주간에 걸친 '초익공' 결구 이론 및 실습이 모두 끝났다. 2기 학생들 중 고운 손(솜씨가 좋은 목수)으로 이름 난 '이진한'씨 작품과 '신주환'씨 작품이 모탕(작업대) 위에 올랐다. 흠잡을 곳이 없는 작품들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모든 작품이 모두 대단히 우수한 편이다"라고 말씀을 꺼내면서 작품들이 돋보이는 세세한 부분을 열거하면서 칭찬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셨다.
변명이 되겠지만, 나는 신체적 조건과 환경적 여건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많이 불리하다. 나이와 생활습관 때문에 단체 생활을 못해 밀접한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해 정보에 뒤진다. 정기검진과 지병치료 때문에 2주간 교육 시간인 5일 중 2일간 결석해야 했다. 귀도 약간 문제가 있지만 나의 주시력인 왼쪽 눈이 오른쪽 눈보다 시력이 약하다. 두 눈을 뜨고 톱일을 하면 부재가 똑바로 잘라지지 않고 틀어진다.
초익공 모델 이론과 설계를 하는 첫날과 그 다음 주 월요일을 눈 치료 때문에 결석을 했다. 3차원 설계도를 의지했지만 현장의 부재 크기와 모양은 설계도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계도의 효용성 뚝 떨어졌다. 곁눈질하면서 반 친구들에게 물어물어 가는 길이다.
수요일 오전이 지나자 우등생들은 작업을 끝내고 반 친구들의 진도를 보고, 조언하면서 여유를 즐긴다. 모델의 절반도 못 만든 나는 마음이 급해진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자주 도와주나 잠시 자리를 비우면 밤길을 가는 나는 자꾸 곁으로 빗나간다.
이 선생님께선 예순살이 넘은 NO 1(소방설비 기술사인 예순 여덟 살, 김 사장님은 건축과를 졸업하고 소방설비회사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다)과 NO 2인 나에겐 근력의 힘을 감안하여 지속적으로 힘을 써야하는 일은 전동공구를 사용해도 좋다는 특혜를 주셨다.
오리(1.5cm)를 다투는 섬세한 일에 전동공구 작업은 고도의 숙달이 전재조건이다. 익숙하지 못한 전동공구들을 사용하면서 서둘러 길을 간다. 익공부재의 앞과 뒤 조각과 초새김의 방향을 뒤바꿔 버렸다. 하루 일이 날라가는 순간이다. 바른 순서는 먹을 다 놓고 확인하고 난 뒤, 조각을 하고 초새김을 해야 하나 급하다 보니 한 줄 그리고 한 줄 판 결과다.
저녁 식사 후 평가회까지 마친 반친구들은 통닭에 맥주로 축하 파티를 하러 갔지만 나는 저녁을 학교에서 먹고 치목장으로 돌아갔다. 강원도 11월 바깥 날씨는 기세가 등등하다. 보 부재를 전동대패로 다듬고 하부장부를 파고 두주에 얹어보니 보가 결구되지 않고 움직인다. 두주의 사갈 통으로 들어가야 할 부분까지 들어 내 버렸다. 저녁 4시간 야간 작업이 헛일이 되었다. 10시 반이 넘어서고 있다. 피곤과 추위가 심하게 밀려오고 중심잡기가 어렵게 비틀거린다.
"당신 그러다 또 떨어져" 집사람 전화다. 평가시간에 이마에 붙은 '낙제생' 표식을 떼려고 추위를 참고 견디며 혼자 작업한 결과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보를 다시 만들어 다듬고 장부를 파려면 오늘 저녁시간으론 불가하다. 이번 주말을 이용하여 초익공 모델을 완성할 때까지 '낙제생' 표식을 이마에 부치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 참으로 우울한 밤이다.
"초익공을 이해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고 만드는 기술은 숙달이여!" 평가시간에 모델을 아직 완성하지 못한 나를 의식한 선생님의 고마운 말씀이다.
그러나 사실(事實)은 사실이다.
주말에 마지막 과정을 완성할 것이다. 낙제보다 꼴찌가 나을 것 같기 대문이다. 나에게 낙제는 영원한 탈락이다.
덧붙이는 글 | 기사 중에 언급된 설계도를 비롯한 나머지 부재별 설계도는 기자의 블로그에 올려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