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먹고 싸는 동물같이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략) 저희 같은 장애인들도 얼마든지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비정상'같이 다 할 순 없어도 해야 할 일은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대전의 한 장애인수용시설에서 퇴소해 '자립'을 선언한 민경식(뇌병변 지체장애인)씨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소통이 안 될 만큼 중증의 언어장애와 지체장애를 동시에 가진 그이지만, 컴퓨터로 작성, 인쇄해 온 한 장의 인사말을 다른 사람이 대신 읽는 것을 통해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민씨는 지난 6월 대전장애인부모연대와 대전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가 합동으로 대전지역 시설수용 장애인 150여 명에 대한 샘플조사를 하면서 만난 장애인이다.
이 과정에서 민씨는 수용시설을 떠나 자립하고 싶다는 의사를 조사원들에게 전달했고, 이에 조사원은 도와줄 수 있는 기관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민씨에게 했다. 이후 민씨는 인터넷을 통해 자신도 시설을 나가 자립할 수 있고 이를 도와주는 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대전장애인부모연대에 이메일을 보내 '자립'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하여 대전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 등이 민씨의 시설 퇴소를 돕게 됐고, 민씨는 지난 9월 드디어 시설을 나와 인천에 있는 민들레자립생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체험홈'에 입주하게 됐다. 민씨와 시설에서 함께 거주했던 신길성씨도 시설을 나와 민씨와 함께 이 체험홈에서 살고 있다.
이 체험홈에서는 2년 동안 거주하면서 자립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며, 그 이후에는 집을 구해 완전한 독립을 해야 한다.
이러한 민씨와 신씨가 8일 오전 대전시청 북문 앞에 나타났다.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대전장애인부모연대, 진보신당 대전시당 등이 마련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기 위해 인천에서 찾아온 것.
이날 기자회견은 민씨와 같이 시설을 퇴소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현재 대전에서도 몇몇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그룹홈'이 존재하지만, 장애인의 완전한 독립을 지원하는 '체험홈'이나 자립지원제도가 없다. 이 때문에 민씨와 신씨도 인천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민씨가 입주한 것과 같은 '체험홈'이 현재 10곳 운영되고 있고, 2012년까지 해마다 10곳씩 추가로 마련키로 했다. 또한 '탈시설장애인 정착지원금'도 1인 500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인천과 대구의 경우에도 각각 2개의 체험홈이 운영되고 있으며, 정착금도 500만원씩을 지원한다. 경남도 5곳의 자립홈이 있으며, 300만원의 정착금을 지원한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우리는 대전에는 시설 퇴소 장애인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방안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다"며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방안이 협소해서 오래 기다려야 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예 없는 것이다, 이는 한번 시설에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으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상황이 이렇다보니 장애인 시설은 더욱 고압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본인의 의지로 퇴소를 하겠다는데도 완강한 태도로 처리를 해주지 않기까지 한다"면서 "이 같은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대전시가 여전히 시설의 편에서 장애인정책을 펼치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대전시에 대해 ▲시설 퇴소 장애인에게 정착금을 지급하여 자립생활 초기에 겪을 수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 ▲퇴소 후, 자립생활을 익히고 영구거주방안을 마련할 때까지 완충기간을 둘 수 있는 체험홈을 설치할 것 ▲정기적인 시설조사와 더불어 시설생활인을 대상으로 자립생활 강좌를 모든 시설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할 것 ▲장애인복지정책의 기조를 시설 중심에서 자립생활 중심으로 변경할 것 등을 촉구했다.
인사말에 나선 김남숙 대전장애인부모연대 공동대표는 "한 달 두 달도 아니고, 1년 2년도 아니고, 10년 20년 30년 이상을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은 말 그대로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사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장애인이 당해야 하는 폭언과 폭력, 인권침해 등이 매우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어 "더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와 소통의 창구가 전혀 없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장애인도 시설에서 보호받고, 대우받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철저한 조사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시설에서 나와 자립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이날 오후 대전시 복지정책과 관계자들을 만나 이들의 주장이 담긴 '서한문'을 전달했다.
시설 퇴소 후 '장애인 자립생활 체험홈'에서 살고 있는 민경식씨의 인사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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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1982년 10월 4일부터 대전 한 시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난날 28년간 생활했었던 시설을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전 다만 제가 겪었던 생각을 잠시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생활했던 시설에서 처음부터 많은 고통과 아픔으로 그렇게 제 시설 생활이 시작되었고, 시설에 입소한 1년 만에 재활 수술이라는 뜻도 잘 모르는 저를 강제로 3번의 수술을 시켰고, 전 하기 싫은 수술인데도 강제로 해야만 했었는데, 그 수술이 좋아지지 않고 반대가 되는 것 같아서 속이 너무 아팠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사는 제 자신이 너무 억울하네요. 그때 저를 수술했었던 그 의사에게서 이런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널 수술해서 뭐하나, 차라리 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말투로 절 사람같이 보지 않고 그저 동물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전 의사가 했던 소리를 아직도 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제가 슬펐던 일들이 위에 글 전부가 아닙니다. 제가 하지도 않았는데 제가 했다는 누명도 쓰고 훔치지도 않았던 물건을 훔쳤다는 도둑놈이란 소리도 들었습니다. 물론 좋은 일도 있었지만 이렇게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의 말을 안 믿는 현실입니다. 그저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은 먹고 싸는 동물같이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회 시선들이 비정상으로 생활할 수 없는 장애인들을 시설에다가 처넣고 그냥 밥만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좋은 곳에 있는 것을 축복이라고 하지만 그 좋은 시설에서 장애인 등급을 갖고 놀았던 시설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아는데 그 시설은 지금 이 시간도 잘 돌아가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지금 사회는 그것도 모른 채로 장애인들의 요양시설이 더 많이 세우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같은 장애인들도 얼마든지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비록 비정상같이 다할 순 없어도 해야 할 일은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세상 많은 시설들이 저희 장애인들이 독립을 하고 싶어 하는 그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시설은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돈이기에 장애인들을 못나가게 하며 협박을 할 것입니다. 저 역시 그 협박에 지난날을 두려움으로 독립이라는 꿈도 꾸지 못한 체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렇게 나와 보니까 지난 제 자신이 너무 바보 같습니다. 그런 제가 세상 밖으로 뛰어나와 보는 세상은 참 살기 좋은 곳이고 저희 같은 장애인도 자유롭게 창공을 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오늘도 시설에서 주는 밥과 간식들이 우리들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단 하루를 산다 해도 자기가 해보고 싶은 일을 하면서 참된 자유를 누려보세요.
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의심과 두려움을 다 던져놓고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처럼 마음으로 삶을 시작하세요. 저 같이 심한 몸도 자유를 위해서 독립을 했는데요. 잘 살고 있답니다. 장애인 여러분들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믿음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을 승리하는 날까지 열심히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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