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서울 강북구 북서울 꿈의 숲이 있는 뒷동산에 오른 날은 모처럼 날씨가 참 맑았다. 대부분 굴참나무와 아카시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은 단풍이 한창이었지만 썩 고운 모습이 아니었다. 초가을의 폭우와 단풍철의 가뭄 때문이리라.
숲을 돌아서자 한쪽 산자락이 새하얗다. 신기한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한 무리의 하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어 아름답다. 꽃송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군데군데 무리지어 피어있어서 눈이라도 내린 듯 온통 새하얀 풍경이 여간 멋진 모습이 아니었다.
"어, 저 꽃 저거 서양등골나물이네, 모양은 예쁘지만 독초라던데"저 꽃 이름이 무엇이었지? 하고 생각하는 사이 함께 걷던 일행이 금방 알아보고 꽃 이름을 말해준다. '서양등골나물'은 우리나라 재래종인 등골나물과 모양이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잎과 꽃모양은 비슷해도 전혀 다른 것이 있었다.
우리 재래종 등골나물은 봄철에 채취하여 나물을 만들어 먹는데 서양등골나물은 독이 있어 먹을 수 없는 것이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이 식물은 미국등골나물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상당히 강한 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중랑천에서 만난 한국 환경청소년 서울연맹 이원병 사무총장은 서양등골나물이 우리 자연생태계를 교란할 뿐만 아니라 독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지난 1978년에 보고된 외래식물로 번식력도 매우 강하여 서울은 물론 중부지방에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양등골나물은 독성이 강해서 소나 말 등 새끼를 밴 초식동물이 먹으면 낙태 위험이 있고, 젖소가 먹으면 젖이 잘 나오지 않으며 그 젖(우유)을 사람이 먹으면 인체에도 해롭다.""본래 소나 양, 말 등 초식동물은 독성이 있는 식물은 먹지 않는 법인데 모르고 먹는 경우도 있나 보네.""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야. 다른 풀과 섞여 있는 것을 먹게 되는 경우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절대 독성식물을 그냥 먹지는 않을 걸, 그럼 우리 한 번 테스트 해볼까?"일행들은 독성이 강하다는 서양등골나물을 초식동물이 모르고 먹는지 한 번 시험해보자고 한다. 뒷동산 공원에는 마침 사슴사육장이 있었다. 일행들은 함께 사슴사육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육장 근처에서 구절초 한 개와 서양등골나물 한 개를 채취하여 철조망 근처에 앉아있는 사슴에게 내밀어 보았다.
사슴은 먼저 구절초를 한입에 날름 받아먹는다. 그리고 서양등골나물도 구절초로 착각했는지 혀를 내밀어 먹으려 하였다. 우리는 당황했다, 사슴이 독초를 그냥 받아먹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혀를 내밀었던 사슴은 독초를 받아먹지 않고 고개를 내밀어 냄새를 확인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닌가. 역시 초식동물인 사슴은 독성이 있는 풀을 금방 식별했던 것이다. 우리는 몇 번이고 사슴에게 서양등골나물을 내밀어 코앞에서 흔들며 유혹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아저씨! 그걸 왜 자꾸 먹으라고 그래요? 그건 먹는 풀 아니에요. 미국독초거든요."사슴은 왜 자꾸 먹으라고 귀찮게 하느냐는 표정이다. 눈만 끔벅거릴 뿐 전혀 먹고 싶지 않다는 듯 시선도 돌리지 않는다. 한 번 냄새로 확인한 이상 두 번 확인할 필요도 없다는 단호한 태도였다.
"것 봐? 초식동물들은 선천적으로 먹을 수 있는 풀과 독성이 있는 풀을 감별해내는 능력이 있다니까?"조금 전 독이 있는 풀이라면 절대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일행이 어깨를 으쓱한다.
30여 년 전에 이 땅에 들어와 생태계를 교란하는 식물로 눈총을 받고 있는 서양(미국) 등골나물. 그러나 이 식물은 아름다운 꽃모양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며 날씨가 서늘해진 요즘도 새하얗게 무리지어 피어나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어디 우리 자연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식물뿐이겠는가? 요즘 우리 사회에서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