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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 겉표지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겉표지 ⓒ 황금가지

한 번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던 사람이라면 과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전과자는 그럴듯한 직장에 취직하는 것도 어렵다.

 

그런 와중에 과거의 동업자들이 찾아와서 좋은 건수가 있으니 한 탕하자고 부추기면 그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에 등장하는 한 형사는 새롭게 시작하려는 전과자를 치료 중인 알코올 중독자에 비유한다. 알코올이든 범죄든 중요한 것은 유혹을 피하느냐 못 피하느냐가 관건이다.

 

치료 중인 알코올 중독자 앞에 술잔을 놓아 두면, 그 중독자는 빠르든 늦든 그 술잔을 집어들게 마련이다.

 

갱생을 원하는 전과자에게 과거의 동료가 나타나서 그럴듯한 건수를 여러 개 보여주면 그 전과자도 넘어갈지 모른다. '이번 한 번만', 이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하지만 그 한 번 때문에 전과자의 남은 인생도 거덜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알코올 중독자가 술잔을 피하듯이 전과자들은 과거의 삶을 떠올리는 모든 것들을 피해가야 할 것이다.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의 주인공 대니 카터도 이렇게 과거와 결별하고 새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대니는 어린 시절부터 시카고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녔었다.

 

손을 씻고 새 삶을 살려고 하는 대니 카터

 

열살 무렵에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싸움꾼이 되어 있었고, 편의점에서 1리터들이 맥주를 훔치면서부터 절도에 눈을 떴다. 25살때 전과 2범이 되었고 주 교도소와 연방 교도소를 차례로 거치면서 죗값을 치렀다. 대니의 아버지는 평생 힘들게 일하면서도 입에 풀칠하기가 힘들었지만, 대니의 주변에는 차 도둑질로 일주일에 2000달러를 벌어들이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대니는 에번 맥건이라는 오래된 친구와 함께 범죄의 세계에 빠져들어갔다. 아마추어 복싱 챔피언을 지낸 에번은 성질이 급하고 쉽게 흥분하는 체질이다. 대니와 에번은 어느날 밤 전당포를 털기로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전당포에 들어가서 책상 서랍의 자물쇠를 따고 두둑하게 현금을 챙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현금만 챙기고 현장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에번이 전당포에 있을 마리화나를 찾느라 시간을 지연시킨다. 그 지연된 시간 사이에 전당포 주인이 애인과 함께 전당포로 돌아오고 흥분한 에번은 전당포 주인에게 총을 쏘고 그의 애인을 무자비하게 폭행한다.

 

당황한 대니는 그 자리를 피해야한다고 마음을 먹는다. 이미 전과 2범이니 이번에 체포되면 꼼짝없이 중형이었다. 결국 대니는 에번을 혼자 현장에 둔 채 몰래 전당포를 빠져나온다. 이 일이 후에 대니의 인생을 잔뜩 꼬이게 만들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채로.

 

이야기의 시작은 이로부터 7년 뒤다. 전당포 사건 이후로 손을 씻은 대니는 여자친구 캐런과 함께 살며 건설회사에서 프로젝트 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다. 대니가 학교에서 건설일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특유의 예리한 눈썰미와 뒷골목에서 갈고 닦은 수완에 힘입어서 회사를 크게 성장시킨다. 뒷골목 건달이 건설회사 사장의 오른팔로 변한 것이다.

 

새로운 삶도 에번 맥건이 교도소에서 가석방되면서 끝나고 만다. 전당포 사건 당시 경찰에 체포된 에번은 대니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혼자서 교도소에 들어갔다. 그리고 7년 만에 가석방이 되자 대니를 찾아와서 조용히 협박한다.

 

"너는 나에게 빚이 있다, 그러니 같이 한 탕해서 크게 챙기는 걸로 그 빚을 갚아야 한다. 알겠냐?"

 

어떻게 범죄의 유혹에서 빠져나갈까

 

오르는 것은 힘들어도 떨어지는 것은 금방이다. 범죄에서 손을 씻고 새 삶을 사는데 7년이 걸렸지만, 그 삶은 몇 주 만에 다시 엉망으로 뒤틀려 버린다. 에번은 교도소에서 육체와 정신을 더욱 거칠게 다듬었다. 대니는 에번을 설득하지만 에번은 요지부동이다.

 

에번은 모든 것이 경제 때문이라고 한다. 부자들은 가난한 것들이 제자리에 꽉 엎드려 있게 하려고 별 수작을 다 부린다. 엿 같은 일자리를 던져주고 굶어죽지 않을 만큼만 돈을 쥐여 줘서 창문도 없는 판잣집에 살게 만든다. 이 거지 같은 사회가 자기 손에 총을 잡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긴 대니의 아버지는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서 쉬는 날도 없이 일해야 했다. 반면에 태어날때부터 부자인 사람도 있는 세상이니, 대니도 에번의 말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한다. 남들은 못 가진 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인간들은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일을 저지른다.

 

대니도 그동안 몇 차례 그런 일을 저질러 왔지만 이제는 잘못된 인생을 바로 잡으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알코올 중독자 앞에 나타난 술병처럼 에번이 나타난 것이다. 과거를 깨끗이 잊고 미래만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범죄자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 마커스 세이키 지음 /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

마커스 세이키 지음,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2010)


#칼날은 스스로를 상처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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