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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 속에 나목과 같은
섬 하나 키우면서
겨울이면 낚싯대 드리웠다.
하나, 둘, 셋   그렇게 징검다리 밟으면서
나는 다음 풍경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움>-송유미

 시가 흐르는 부산지하철
시가 흐르는 부산지하철 ⓒ 송유미

최근, 부산 지하철 타고 가다가 내가 쓴 시편 <그리움>을 만났다. 오래전 쓴 시라서 나도 제목을 잊어버렸던 시. 뜻밖에 몇 달 전에 '시가 흐르는 지하철'에 게재한다고 연락은 받았지만, 깜박 잊어버리고 지냈던 <그리움>을 지하철 기다리며 읽노라니, 잠시 나는 문학소녀로 돌아가는 기분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그동안 부산 지하철 이용하면서, 최소한 하루에 5-6편쯤 지하철 승강장에 걸린 시를 열심히 읽고 좋다고 느껴지는 시편들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부산 지하철 측에서는 최근 몇 년간 '시가 있는 지하철' 기획 행사로 지하철 승강장마다 승객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시화를 게재 하고 있다. 

부산 지하철 전역에 걸쳐 설치 된 시화의 액자들은, 부산 시인들의 시만 게재 되는 게 아니라, 전국 유명 시인 등 일반인의 시편까지 다양했다. 일반인의 시의 게재는 부산지하철과 '시가 있는 지하철'을 주관하는 관계처에서, 수시로 현상 공모를 통해 뽑힌 시편을 게재하고 있다.

 시가 흐르는 지하철
시가 흐르는 지하철 ⓒ 송유미

지하철은 현대인의 삶의 속도를 느끼게 하는 공간. 그리고 지하철을 기다리는 몇분 동안 잠시 시를 읽는 것은 짜투리 시간 활용이라는 점에서도 좋은 것 같다. 날씨가 쌀쌀해서 일까. 대부분 게재 된 시들이 털목모리처럼 따뜻한 겨울을 주제로 한 시들이 많았다.

한참 지하철 승강장에 걸린 시편들을 찰칵찰칵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보기에 교양미가 물씬 풍기는 한 아주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기 걸린 시들은 대부분 읽기 쉽고 편하게 다가와서 좋네요. 그런데 이런 시라면 나도 얼마던지 쓸 것 같은데요...(웃음)"

하고 다소 볼륨감 있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러자 주위에 지하철 기다리며 시화를 읽던 한 중절모를 쓴(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노신사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그럼요. 아주머니, 사람은 누구나 시인입니다. (웃음) 영화 이창독 감독의 <시>를 보셨겠지요 ? 그 영화 속의 주인공 '미자(윤정희 분)씨'처럼, 시는 우리 삶 속에 있으니까, 부산 지하철 역마다 게시된 시들만 열심히 읽으시면 시인이 되실 겁니다.(웃음)"

노신사의 말씀을 듣고 계시던  아주머니는 눈이 그만 똥그래져서는, "... 아저씨도 그 영화 보셨나요 ? (사이) 정말 나도 시를 많이 읽으면, 영화 속의 '미자씨'처럼 시를 쓰게 될까요 ?"하고 물었다.

그런데 노신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으려 하는데, 그만 아쉽게도 지하철 도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지하철이 도착했다. 노신사와 아주머니 주위에 서 있던 몇몇 지하철 승객들과 나는 한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그리고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각각 자리 찾아 흩어졌으나, 잠시나마 시로 인해 정겨운 이웃 만난 듯 즐거웠던 하루였다….

 예술이 흐르는 지하철
예술이 흐르는 지하철 ⓒ 송유미

식료품집 문이 닫히면

지하철에서 울리는 풍금소리
텍사스로 떠난 마라를 생각한다.
마라, 낡은 스웨터에 안경을 끼고
댄스스텝으로 오너라
날씨가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지 못하므로
60칼로리 정도의 키스는 갖고 오너라
하나님은 우주공간을 날고 있지만
별이 보이는 옥수수 밭
우리 것이다.
<사랑>-이윤택


#부산지하철#시#시가 흐르는 지하철#예술의 공간#삶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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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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