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던 지난 11월 7일 오후 1시, 독립문공원에 서울 전역에서 오신 학교 급식조리원, 즉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급식하는 밥을 만드는 분들의 집회가 열렸습니다. 집회의 제목은 '정책협약서 이행촉구를 위한 서울지역 학교급식조리원 결의대회'. 대부분 학교 급식실에서 일을 하면서 집안 살림도 챙겨야 하는 주부들이시라 밀린 집안일도 해야하고, 휴식도 취해야 하는 일요일 오후에 이 분들이 독립문공원에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지방선거에서 가장 큰 화두는 '무상급식'이었습니다. 특히 교육감 선거에서 서울을 비롯해 경기, 전북, 강원, 전남, 광주에서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친환경 무상급식 문제는 요즘 가장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을 밥을 만드시는 분들, 학교급식조리원(이하 조리원)들의 엄청난 노동강도와 열악한 처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5월 조리원들은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학교급식조리원 처우개선 준비위원회>를 만들고 곽노현 당시 서울교육감 후보와 정책협약서를 체결합니다. 정책협약서는 '우선적으로 열악한 급식조리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급량비 지원을 이유로 공제한 점심값에 대한 예산을 확보하여 지원함으로써 급식조리원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는 일을 시행하겠습니다'라며 점심값 해결문제를 첫 번째 과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버스 기사가 버스요금 내고 운전하나?
학교 상황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 점심값 해결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조리원들은 학교에서 밥을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에 조리원들이 지은 밥으로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조리원들도 식사를 합니다.
원래 조리원들은 따로 밥값을 내지 않았는데 서울시 교육청이 임금에 급량비가 포함된 공문을 학교로 보냈고 2008년부터 순차적으로 적게는 월 4만원에서 많게는 6만원 가량의 점심값 공제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월 4~6만원이면 그리 큰 돈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조리원들의 실수령액이 연봉 950만원~1030만원(월 79만원~85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적은 액수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시·도교육청에서는 조리원의 식대를 공제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교육청은 이를 공제하면서 조리원들의 열악한 처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학교 현장의 조리원들은 "내가 만든 밥을 돈 내고 먹으라고 한다", "버스 기사에게 버스비 내고 운전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가뜩이나 임금도 낮은데 점심값까지 떼어간다"고 하나같이 불만을 토로합니다.
학교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는 조리원
학교라는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조리원들은 공무원처럼 고용이 보장되고 좋은 처우를 받을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조리원들의 이야기는 이와 전혀 다릅니다.
조리원들은 학교회계직원 직종 중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데다가 호봉이 기능직 10급 1호봉으로 고정되어 있어 5년을 일한 조리원도, 10년을 일한 조리원도 새로 입사한 조리원과 똑같은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급식인원 200명당 1명을 기준으로 조리원을 고용하기 때문에 일반 단체급식소의 5배에 이르는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으며, 조리용기 등 조리원들이 하루에 들었다 놨다 하는 무게만 2-300kg에 달해 대부분의 조리원들이 손목결림, 허리통증, 어깨뭉침 등의 업무상 질환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조리원들은 본인이 대체인력을 구해오지 않으면 휴가조차 사용할 수 없어 아파도 제대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업무상 사고나 재해를 당했을 때에도 90% 이상이 산재나 공상처리가 아닌 개인부담으로 치료를 하는 불합리한 작업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조리원들이 학교별로 고용되어 있는 상황에서 표준 근로계약서가 존재하지 않아 조리원의 고유업무인 조리업무와 무관한 업무를 시키는 학교가 많다는 것입니다.
학교에 따라서는 관리자의 방 청소와 세탁, 다림질 그리고 복도, 계단 청소 등의 부가업무를 시키는 곳이 많고 심지어는 운동부 학생들의 체육복 빨래를 시키거나 교장선생님의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은 정책협약 성실히 이행해야
이처럼 열악한 처우와 엄청난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는 조리원들은 노동조합으로 단결하고 있고,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교육청에서는 조리원들을 비롯한 학교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17일 전남에서는 조리원 3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전남지역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출범했고, 서울에서도 지난 10월 19일 안국동 수운회관에서 500여명의 조리원들이 모인 가운데 현장증언대회를 여는 등 노동조합 출범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남, 강원, 인천, 경남,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급여 인상, 근속수당 신설 등 조리원 처우개선대책을 발표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곽노현 교육감이 후보 시절 정책협약서까지 체결한 서울시 교육청은 2개월여 동안의 TF 논의를 진행했을 뿐 어떠한 처우개선책도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곽노현 교육감과 서울시 교육청은 지금이라도 정책협약을 성실히 이행하고 조리원을 비롯한 학교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밥 짓는 아줌마'가 아닌 '학교급식노동자'로
요즘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서울일반노조와 함께 학교급식조리원 조직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강북구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며 조리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노조가입에 대한 안내도 하고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만나는 조리원들은 하나같이 열악한 처우와 엄청난 노동강도로 인한 고통을 토로하며 노동조합에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십니다.
음식은 정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먹을 밥을 만드는 조리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을 때, 아이들의 안전한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친환경 무상급식 만큼이나 조리원 처우개선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어야 하고, '밥 짓는 아줌마'가 아닌 당당한 '학교급식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겠다고 일어선 학교급식노동자들의 발걸음에 우리가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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