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 물의 신으로 농경민족인 우리완 인연이 깊다. 가뭄이 계속되면 용정(龍井)이나 용소(龍沼) 등지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정월 대보름날엔 용을 상징하는 줄다리기를 벌여 비가 알맞게 내려 풍년 들길 기원했다. 이러한 용은 권위와 길상(吉祥)의 상징이다.
사찰의 법당이나 탑, 부도에 용이 새겨지고 그림이나 장신구에도 용이 등장한다. 그러한 용이 흉한 기운을 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바로 역모(逆謀)다.
이 같은 일을 일어나려면 뭣보다 용의 심기를 자극해야 한다. 그 자극이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지라도 장난삼아 하는 것처럼 태연을 가장하고 기회가 오길 기다려야 한다. 그것을 책략가들은 '역린(逆鱗)'이라 했다.
이번 일은 어떤가? 사도세자 묘역을 수원의 천장지로 옮기는 건 전하의 마음에 각인된 숙원이었다. 벽파의 중신들은 이마를 맞대며 방책이란 걸 찾아냈다.
"전하께선 몇 해 전부터 수은묘에 묻힌 사도세자를 존호(尊號)하여 장헌세자로 격상하고 문의의 양성산, 장단의 백학산, 광릉 근처의 달마동 등지를 감여에게 돌아보게 하여 지금의 수원부 관가 뒤산의 반룡농주(盤龍弄珠)란 터에 봉표지를 세웠습니다."이 자린 '누운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곳'으로 상감의 마음에 흡족한 곳이었다. 비록 왕위를 이어받지 못했지만 장헌세자는 제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용'의 자리에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벽파 쪽에서 보면 이 일은 결코 살가운 게 아니다. 좋은 곳에 묻혀 그 후손이 복록(福祿)을 일으키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하께선 오래도록 마음에 두신 일이니 결코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천장지가 정해지고 그 주윌 장용위 병사들이 엄위하고 있으니 뚫고 들어가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관상감의 감여들을 움직인다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그것이 헌화(獻花)와 타태(墮胎)라는 비방이었다. 송하(松下) 도인은 관상감의 부정(副正) 자리에 있었으므로 품계가 낮은 최정오에게 넌지시 비책을 던져주었다.
"자네가 수원부사로 하여금 백성들이 살만한 곳을 찾으라 하게. 팔달산 아래 국세(局勢)가 트였으니 어려운 일은 아닐 게야. 일단 자리가 정해지면 자네에게 좋은 일이 찾아올 것이야."
장헌세자의 묘역은 현륭원(顯隆園)으로 정해지고 백성들은 수원부사 조심태(趙心泰)의 지휘 아래 팔달산 아래에 터를 골랐다. 한눈에 200여 가구가 들어설 자리였다. 터를 고르고 있을 때 송하 도인은 최정오를 찾아와 뜻밖의 말을 내놓았다.
"지금 벽파에선 자신들이 차고 앉을 자리에만 연연하는 것 같네. 자신들이 저지른 죄상으로 사도세자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음에도 그게 자신의 허물이라 인정하질 않네. 세상은 모든 일을 부족한 듯 살아야 사고가 생기지 않네.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든다면 조정은 또다시 두 쪽이나 세 쪽으로 나뉘어 왕실에 불행함을 남길 뿐이네.""그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시생에게 생길 좋은 일이란 뭣입니까?"
"내가 오래도록 관상감에서 일하다 보니 느끼는 바 한두 가지가 아니네. 보다 진취적이고 만인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전하의 뜻을 대비전에선 왜 뒤집어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장헌세자가 묻힌 천장지에 손을 대 해괴한 일이 일어나게 하는 건 결국 주변에 사는 백성들에게도 해를 끼치는 일이니 나는 그 일에서 손을 떼겠네."
송하 도인은 한숨을 깊게 흘리고 나서 다음 얘길 꺼냈다. 그는 자신이 떠난 후의 일을 내비쳤다.
"장헌세자의 천장지를 돌아보는 감여들에겐 반드시 간룡척(看龍尺)이란 지남쇠를 주도록 하게. 그것은 수원부의 지형을 살피는 요긴한 물건이네."최정오는 그게 어떤 용도로 쓰일 지도 모른 체 일단 송하도인이 그려준 대로 만든 후 양재도찰방까지 안내한 후 풍수사들을 수원부로 파견했다.
이곳엔 역촌을 비롯해 열두 개의 역말을 관리하는 송씨 성의 찰방(察訪)이 있었다. 이름이 일전(一錢)이었다. 그는 본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철들기 시작할 때는 허기진 가난이 턱밑까지 와 있었다.
부친은 이생원으로 사는 곳은 소의문(昭義門) 밖이었다. 낡은 거적때기를 출입문으로 삼은 이생원은 생계를 꾸릴 방법이 없자 잡일 하는 일꾼들 가까이 다가가 찬밥 몇 숟가락씩 구걸해 입사귀에 싼 채 집으로 가져갔다.
집에는 두 딸과 막내둥이 아들이 있었는데 자식들은 이생원이 가져 온 차디찬 음식을 따뜻하게 죽으로 데워 훌훌 마시곤 했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일꾼 하나가 이생원에게 소리쳤다.
"아니 잡일하는 우리가 뼈 빠지게 일해야 세끼 밥을 먹는데 명색이 양반이라는 작자가 부군당(府君堂)마냥 음식을 먹으니 우리가 당신 새낀 줄 아시오? 차라리 죽고 말지 구차한 양반 내세우며 살긴 왜 살아!"
지독한 모욕이었다. 이생원은 입사귀에 싼 밥을 가지고 돌아가더니 일체 문밖 출입을 삼갔다. 며칠 후 일꾼 하나가 그 집에 가 보니 두 딸과 이생원은 죽어 있었고 다섯 살짜리 아들놈은 울다지쳐 잠이 든 상태였다.
소문을 들은 단소의 명인 송벽상(宋碧翔)이 한밤중에 찾아들어 아이를 안고 사라져 버렸다.
"굶어죽은 네 아빈 이씨다. 그래도 양반으로 태어나 생원을 지냈으니 그렇게 살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다만, 네가 양반을 버리고 다시 태어난다면 송씨란 성을 받고 내 뒤를 잇거라. 내가 가진 건 너에게 줄 것이니 나중에 내 부탁 하나를 들어주거라.""예에."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일전은 양재도찰방의 눈썰미 좋은 찰방으로 행세하며 지지기반이 단단해졌다. 이곳에서 역말이 형성된 말죽거리와 열두 개의 작은 역을 관리하게 되자 곳곳에서 미색이 고운 계집들을 보내왔다.
"헤헤헤, 이 아인 나이 열여섯이니 한창 물 오를 땝니다. 송 찰방 가까이 뒀다가 잠자리 시중이나 들게 하시지요."
이것은 송찰방이 자식이 없기에 하는 말이었다. 마지못해 그러겠노라 집에 머물게 한 처녀가 셋이나 되고 혼례를 올린 아내까지 넷이었는데 아이가 들어섰다는 말은 어느 곳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시중에 어쭙잖은 말들이 떠다녔다. 임오년에 세상을 떠난 사도세자가 존호(尊號)를 받고 수원부의 관가 뒷산에 천장한다는 말이었다. 그날 찰방을 부른 송벽상은 오랫동안 묵혀뒀던 말들을 꺼냈다.
"수원부로 네 명의 풍수사가 이곳에서 출발할 것이다. 그들이 출발하기 전, 너는 감여들을 집으로 초청해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고 미혼약(迷魂藥)을 술에 타 혼곤히 잠들게 하라. 그리한 후 그들의 몸에서 간룡척(看龍尺)을 꺼내거라.""간룡척이라니오?"
"용 모양의 지남쇠다. 지남쇠의 머릿부분엔 용의 수염을 그린 부분이 있는데 거길 은수저로 가만히 밀어보거라. 그곳에 아무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간룡척은 가짜다. 전하의 명을 빙자해 수원부의 천장지에 좋지 않은 일을 저지르려는 역도들이니 한 사람도 살려둬선 안 된다.""풍수사를 살려야 한다면 어떤 변화가 나타납니까?"
"제왕의 색인, 노랑이다."이날의 술자리는 흥겹게 끝났지만 결과는 그리 좋은 게 아니었다. 네 명의 풍수사가 모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봄기운은 좋아 한식날이 가까워지자 봄나들이 나갈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한밤중이 되었을 때 서른이 넘어 뵈는 사내가 찾아들었다.
"소인은 악공(樂工)입니다. 즐기는 건 활을 날리는 것이지만 잘하는 건 단소를 멋들어지게 부는 것이지요.""어디서 오는 길입니까?"
"수원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입니다. 단소 한 곡 불어도 되겠습니까?"
"아, 그럼요. 좋지요."
사내는 품 속에서 단소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것은 황새 정강이뼈로 만든 물건입니다. 찰방 어른께서 들어보실만 할 겁니다."
사내는 단소를 입으로 가져갔다. 맑고 우아한 소리가 봄 밤의 포근함을 가져와 주었다. 찰방은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사내는 품에서 단검 하나를 빼들었다. 서슬이 퍼런 칼날이 불빛을 받아 번쩍이자 그제야 사내가 평범한 악공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송찰방은 사내가 강도임을 깨닫고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창밖에서 누군가 다가와 무거운 어조로 아뢨다.
"나으리, 이제 당도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내는 왈자패 강도단의 두목이었고 좀전의 단소 연주는 졸개를 부른 신호였다. 밖으로 나간 사내는 오른손엔 검을 왼손엔 주인의 멱을 잡은 후 졸개들을 돌아보았다.
"이곳에서 찰방을 한 주인을 직접 만나니 소문대로 그렇게 나쁜 분이 아니다. 상감이 보낸 풍수사들을 살해했다곤 하나 이유가 있을 것이라 본다. 모든 물건을 반으로 나누되 검은 당나귀는 나눌 수 없으니 그대로 남겨 악공을 잘 대해준 은혜에 보답하라."
잠시 후 수런거리는 소리가 그치더니 강도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송찰방이 물건을 점검해 보니 모든 것은 크고 작거나를 불문하고 반으로 나눠졌고 다친 사람은 없었다.
송찰방은 집안이 털린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누설하지 말라고 아랫사람들을 단속했다.
적지 않은 재물을 잃기는 했으나 강도들이 몽땅 가져갈 수 있었는데도 반만 가져갔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이보다 다행스런 일은 없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을 때 사헌부 서리배들과 정약용이 나귀를 끌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나귀 등엔 짚 풀로 만든 부대가 실려 있었고 부대 위엔 편지가 꽂혀있었다.
<졸개 두 놈이 정보를 잘못 알아 상감이 수원부에 파견한 풍수사를 찰방이 살해했다는 말에 한 놈은 화살로 죽였소. 가짜를 죽인 사실을 뒤늦게 알고 다른 놈은 명령을 어겼으면서도 시치미 떼었기에 그 놈의 머릴 나귀에 실어 보내 사죄하는 바입니다.>[주]
∎찰방(察訪) ; 역참의 일을 보던 종6품의 벼슬아치
∎반룡농주(盤龍弄珠) ; 장헌세자의 천장지
∎부정(副正) ; 관상감의 종3품 벼슬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