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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뭐 먹었어? (1∼3)
 (요시나가 후미 글·그림,노미영 옮김,삼양출판사 펴냄,2008∼2010/5000원씩)

 겉그림.
겉그림. ⓒ 삼양출판사
글책을 읽을 때에는 밑줄을 긋습니다.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사진책을 읽을 때에는 밑줄을 그을 수 없습니다. 글책을 읽으며 빈자리에 느낌글을 몇 줄 끄적인 다음 앞이나 뒤쪽 흰 종이에 쪽수를 적어 놓습니다. 나중에 다시 펼칠 때에 이 책을 읽으며 받은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살필 수 있도록. 그림책이나 만화책이나 사진책을 읽을 때에는 느낌을 적바림할 빈자리가 없습니다. 책 앞이나 뒤 하얀 종이에 쪽수를 적은 다음, 이 옆에다가 느낌을 적바림합니다.

만화책 <어제 뭐 먹었어?>를 이태 만에 다시 펼칩니다. 2008년에 1권이 나온 <어제 뭐 먹었어?>를 곧바로 사서 읽은 다음 2권이나 3권은 더 사지 않고 책시렁에 얌전히 모셔 두었습니다. 이태 앞서 이 만화를 본 다음 뒤엣권을 더 사고픈 마음이 들지 않아 더 안 사기도 했으나, 이 만화책을 놓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갈피를 잡을 수 없어 고이 묵혔습니다.

새롭게 읽는 만화는 늘 새롭습니다. 예전에 열 번을 읽었든 백 번을 읽었든 언제나 새롭습니다. 줄거리를 떠올리며 '이제 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겠지?' 하고 어림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예전에 읽을 때에는 놓친 그림이나 구석을 곰곰이 헤아리기만 합니다. 노상 새로 읽는 책으로 자리하는 만화입니다. 글책을 읽을 때이든 사진책을 읽을 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뭐 먹었어?> 1권을 다시 읽으며 '느낌이 와닿는 대목'에서 한동안 눈길을 멎은 다음 책 앞쪽 흰 종이 자리를 들여다봅니다. 책을 다시 읽고 덮기까지 모두 네 차례 눈길이 멎고, 네 차례 눈길이 멎은 쪽수를 헤아리니 이태 앞서 이 책을 읽으며 눈길이 멎을 때하고 똑같습니다.

.. '흠, 저녁 준비는 정말 대단해. 일을 깔끔히 마무리지었을 때나 느끼는 보람을 하루에 한 번은 맛볼 수 있으니. 이 뿌듯함 속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지을 수 있을는지.' ..  (13쪽)

첫째, <어제 뭐 먹었어?>는 밥하기를 즐기는 아름다운 마음을 살뜰히 그립니다. 밥하기는 숱한 살림일 가운데 하나이며 몹시 커다란 살림일입니다. 옷도 때 맞춰 잘 빨아야 하고 이부자리도 느긋해야 하는데, 끼니때에 끼니를 잘 챙기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밥하기를 살뜰히 그리며 아름다운 살림임을 보여주는 작품은 드뭅니다. '요리와 맛'을 다루는 작품만 쏟아지는 오늘날이거든요.

그런데 <어제 뭐 먹었어?>에 나오는 밥하기란 '요리와 맛'이 아닌 '여느 살림꾼 삶자락'이기는 하나,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값이 더 싼 먹을거리'를 '마트'에서 삽니다. '마트에 들어오는 먹을거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공산품 먹을거리'에 어떤 성분이 깃들었으며, 어떤 화학 양념과 물질이 스몄는가를 살피지 않아요. 더군다나, 일본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널리 잘 퍼진 생활협동조합 물건은 한 차례조차 안 씁니다.

만화를 보는 분들이 눈여겨보는지 모릅니다만, 다카하시 신님이 그린 <좋은 사람>이라는 작품을 보면, 이 만화 주인공 아가씨는 먹을거리를 살 때에 언제나 '생협 목록'을 들여다봅니다. 딱 한 번인가 두 번, 이 그림이 나오는데, 다카하시 신님이 남달리 생각하여 '생협에서 먹을거리 장만하기'를 그렸다 할 수 있으나, 일본에서는 조금 생각있게 사는 사람뿐 아니라 여느 사람한테까지 '공산품 아닌 생협 물건'을 써야 하는 줄 퍽 널리 퍼져 있다 할 만합니다.

생협 물건이 마트 물건과 견주어 '아주 비싼' 값이 아닐 뿐더러, 생협 물건이 더 값쌀 때가 있기도 합니다. 아니, 더 값싸다 해야 옳겠지요.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안 쓴 능금 한 알을 1500원에 파는데, 굵고 소담스러운 능금 한 알 또한 1500원을 웃돌기 일쑤입니다. 생협 소시지하고 마트 좋은 소시지, 생협 세겹살과 마트 좋은 세겹살 값은 그닥 안 벌어집니다.

.. "대형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면 많이 벌기야 하겠지. 하지만 죽도록 일에만 매달려야 할 테니 시급으로 치면 편의점 알바비 정도일걸. 난 적당히 벌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 이거야." ..  (15쪽)

둘째, <어제 뭐 먹었어?>는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뜰히 그립니다. 만화를 옮긴 분은 "적당히 벌면서"라 적었습니다만, 한자말 '적당'을 넣은 이 대목은 자칫 잘못 읽힐까 걱정스럽습니다. 이 대목은 "난 알맞게 벌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쯤으로 옮겨야 했을 텐데요. 잘못 읽으면 "적당히 벌면서"는 "대충 벌면서"처럼 되고 맙니다.

그나저나,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 돈만 왕창 번들 무슨 보람과 재미와 기쁨이 있겠습니까. <어제 뭐 먹었어?>를 보면 주인공이 동성애를 하건 말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건 머리방에서 일하건 남다르지 않습니다. 막일을 하건 교사로 일하건, 대통령으로 일하건 시장으로 일하건 다를 구석이 없어요. 저마다 내 꿈을 알맞게 키우며 내 삶을 알맞게 누릴 수 있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 "사장님은 손님들한테 자기 부인이랑 자식들 얘기 한다구. 왜 난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해 입 닫고 살아야 하는데……?" ..  (57쪽)

셋째, <어제 뭐 먹었어?>는 수수하게 살아가는 재미와 멋을 수수하게 그립니다. 자랑이 아니요 떠벌임도 아니지만 감출 일이라거나 숨길 일 또한 아닌 삶입니다. 돈이 제법 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며 감출 일이 아닙니다. 돈이 하나도 없다 해서 숨길 일이 아니나 떠벌일 일 또한 아니에요. 그저 똑같이 사랑스러운 우리 삶입니다. 그예 한결같이 고운 내 삶이에요.

내가 사랑하는 내 살붙이입니다. 우리가 아끼는 우리 벗님이자 이웃입니다.

몸이 아픈 옆지기를 걱정하면서 옆지기가 아픈 몸으로도 늘 즐겁고 사랑스레 살아갈 수 있기를 비손하는 얘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몸이 튼튼한 옆지기라면 몸이 튼튼해서 좋다는(몸이 여리다면 몸이 여려서 여린 대로 좋다는) 얘기를 오순도순 나눌 수 있습니다. 내 사랑이 가서 닿는 삶이고, 네 사랑이 와서 닿는 삶이에요.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삶이랍니다.

..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두렴. 어머니는 네가 게이나 범죄자여도 네 전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말야!" '……. 어머니한텐 내가 범죄자하고 동격이로군.' ..  (156∼157쪽)

넷째, <어제 뭐 먹었어?>는 꾸밈없이 어우러지는 빛깔을 그립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꾸밈없이 어우러지면 됩니다. 꾸밀 때에는 어우러지지 못합니다. 꾸미니까요. 꾸미기에 숨겨지니까요. 꾸미기에 허울을 뒤집어쓰고 마니까요.

이렇게 네 가지로 알차면서 재미난 작품 <어제 뭐 먹었어?>라고 느낍니다. 그림결은 깔끔하고 줄거리나 이야기에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어느 하나 빠지지 않아요. 어느 구석이든 허술하지 않습니다. 참 잘 그린 만화라고 생각합니다. 널리 사랑할 만하고 두루 사랑받을 만합니다.

다만, 저는 이 만화책은 1권 하나로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1권 하나를 보았어도 즐겁다고 여깁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알라딘 서재] http://blog.aladin.co.kr/hbooks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어제 뭐 먹었어? 1

요시나가 후미 지음, 삼양출판사(만화)(2008)


#만화책#만화읽기#요리만화#책읽기#삶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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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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