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사랑한다
"제일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어느 TV드라마 제목처럼 '미안하다 사랑한다'이구나. 선생님으로서 너희들이 마지막이 된다 생각하니 더 목이 메어지는구나..."
김호일 교사는 마지막 수업의 시작을 학생들에게 편지를 주고 읽게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편지를 읽어 내려가고 정적이 이어졌다.
"오늘부터 날이 갑자기 쌀쌀해졌구나. 지난번 너희들에게 이야기 한 것처럼 헤어져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구나. 날이 추우니까 마음까지도 쓸쓸해지는구나..."로 시작된 김호일 교사의 편지는 A4 두 장 분량으로 어린 학생들한테 당부하는 말과 헤어져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이어졌다.
편지를 읽은 아이들은 아직 선생님과의 이별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 했다. 금세 장난기 있는 얼굴로 "선생님 피구해요"라고 졸라댔고, 김 교사는 "그래, 너희들 하고 싶은 거 하자"며 공을 준비하고 편을 갈랐다. 수업시간 내내 피구놀이를 했고 이제 그만하자는 선생님의 말에도 아이들은 "더 해요"라고 졸라댔다.
이런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김 교사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늘져 보였다. "징계위에 해임되기 며칠 전에라도 미리 알려달라고 부탁했는데 어제 통보를 받았다"며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학생들에게 상처를 안주고 새로운 선생님이 오면 빨리 적응하도록 했을텐데 바로 어제 통보해 줘서 너무 당황스럽다"고 했다.
김 교사는 "헤어진다는 게 실감이 안난다. 저 어린 아이들이 힘들어 하지는 않을런지 걱정스럽고 빨리 적응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었다.
"선생님, 당당하게 일어서서 힘 내세요"
3학년 수업이 끝난 후에는 4학년 체육수업이 이어졌다. 김 교사는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나눠주고 "너희들도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그동안 즐거웠다"며 수업을 시작했다.
김 교사는 편지를 통해 아이들에게 "항상 꿈을 가져라. 친구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어려운 사람을 잘 도와주었으면 한다. 당당하고 자신있게 살아라"고 당부했다.
"저 설민이에요. 선생님이 편지로 쓰셨던 것처럼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라'라는 노래도 있죠. 저는 매일 그 노래를 듣고 매일 기죽지 않고 당당하잖아요. 선생님도 당당하게 일어서서 힘을 내시면 돼요."
편지를 읽은 정설민 양이 노트에 바로 답장의 편지를 썼다. 그 모습을 보는 김 교사의 콧등이 시큰해 보였다. 김 교사는 "특별한 날 연락해라. 크리스마스날, 설날, 집에서 맛있는 거 먹는 날..." 하며 웃었고 "헤어질 때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말에 아이들은 "웃으면서 보내요" "붙잡아요" 했다.
김 교사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에게 마지막 부탁이 있는데 선생님 한 번씩만 안아줄래?"라고 하자 아이들이 나와 김 교사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연필이며 볼펜, 찰흙, 샤프심 등을 선생님한테 선물이라며 내놓았다.
아이들은 금방 숙연해질 것 같았지만 선생님에게 축구하자고 졸라댔고 김 교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몇 안되는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밝은 얼굴로 두 팀으로 나뉘어 축구를 하고 운동장을 내달렸다.
김호일 교사의 마지막 수업을 지키기 위해 전교조 경북지부의 교사들과 대구지부의 임전수 지부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아침 일찍부터 학교를 찾았다.
경북교육청, 11일 해임통보 하고도 쉬쉬...
경북도교육청은 전국에서 제일 먼저 징계의결한 정당가입 교사의 해임을 확정하고 11일 김호일 교사가 근무하는 김천위량초등학교에 통보했다. 이에 해당 교사 및 전교조 경북지부는 강력 반발했다.
전교조 경북지부 김임곤 지부장은 "경북도교육청은 해임 통보를 하면서 당사자에게도 쉬쉬하고 모르게 할 수 있느냐? 교사가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내보내려 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하수인 노릇만 하겠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는 것만 같다"고 비난했다.
한편, 경북도교육청의 서서규 인사담당 장학관은 "징계 결재가 나면 지체없이 통보하는 게 규칙이고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아이들의 수업에도 지장이 없다"며 "학교장이 기간제 교사를 구하거나 아니면 교육청에서 구하더라도 다음 월요일 쯤이면 수업에 참여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위량초등학교 장병철 교장은 "교사 구하는 게 콩 볶아 먹듯이 금방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냐"며 "교사를 모집할 시간도 안주고 갑작스럽게 통보를 해서 당황스럽다. 갑작스럽게 떠나는 선생님도 그렇고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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