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옥기씨는 초보 붕어빵 장수다. 의족을 한 장애인기도 하지만, 이제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생존전쟁에 뛰어 들었다.
 김옥기씨는 초보 붕어빵 장수다. 의족을 한 장애인기도 하지만, 이제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생존전쟁에 뛰어 들었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회사로 말하면 승진한 셈이다. 김옥기 아주머니는. 붕어빵 장수를 시작한 지 30일 정도 되었으니 승진한 지 30일 정도 지난 셈이다.

보자기 채소 노점에서 붕어빵 노점 좌판으로 승진

그렇다면 그 전엔 무엇을 했을까. 바로 노점 채소장사였다. 노점 채소장사라고 해서 번듯하게 자리를 잡고 한 것은 아니었다. 철마다 나오는, 집에서 소소하게 키운 채소 등을 보자기 위에 펴놓고 조그맣게 장사한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주변 가게나 노점 좌판에서 싫어하면 자리를 옮기거나 장사를 아예 못하기도 했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게 생활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져온 것들을 다 팔지 못할 때도 많았다. 다 팔아도 그야말로 몇 푼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장사가 소위 입에 풀칠이라도 하게 했다. 하지만, 자꾸 커가는 막둥이 딸과 살림을 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그녀는 결심했다. 이러지 말고 좌판 노점상을 해보자고. 자본이 전혀 없던 그녀로선 대단한 결심이었다. 먼저 농협으로부터 대출을 받았고 대출 받은 돈으로 노점 좌판을 계약했다. 이왕 할 거 길목 좋은 곳으로 했다. 경기도 안성 명동거리에서 안성시장 통으로 가는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바로 보이는 노점 좌판(계란빵) 다음 좌판으로 자리를 잡았다. 노점좌판이라고 자릿세를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다. 그래도 불안한 자리에서 하는 것보다 수십 배 장사도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종목은 붕어빵. 생전 처음 해보는 장수다. 전에 잠깐 국화빵을 구워보긴 했지만, 그것은 집에 온 손님들을 대접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붕어빵 기계와 자리를 샀다.

날씨가 추워지자 시려오는 의족 다리... 쓸 전기가 없었다

이제 탄탄대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쉬운 것은 없는 법. 붕어빵 초보가 구운 붕어빵에 손님들의 반응은 처음 얼마간 시큰둥했다. 그녀는 나름대로 붕어빵 앙꼬를 친환경 재료로 정성껏 만든다고 했지만, 손님들이 길들여진 맛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다행히 이를 빨리 눈치 챘고 그녀는 붕어빵 반죽은 더 바싹바싹하게, 앙꼬는 더 달고 맛있게 만들었다. 젊은이들의 구미에 맞게 말이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다. 날씨가 추워지자 의족을 한 다리가 매우 시려오는 것이었다. 사실 그녀는 의족을 한 장애인이기도 했다. 전기난로라도 있어야 겨울을 보낼 수 있고 의족한 다리에는 따뜻한 전기팩이 필요했다. 한편으론 냉장고가 없어 붕어빵 반죽이 남으면 바로 버려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이런 모든 문제들은 전기가 있으면 해결될 것들이었다.

난감했다. 초보 붕어빵 장수에게 시장 사람들이 맘의 문을 열고 전기를 공급해 줄 것인가. 주변 노점 좌판들도 어쩌면 경쟁 상대가 들어온 것이니 곱지 않은 시선일 수 있고 주변 점포 입장에서도 어쨌든 귀찮은 노점 좌판일 수도 있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그녀는 며칠을 고민했다.

따뜻한 '이웃의 정'... 전기를 내주고 시공을 해준 사람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던가. 이런 사정을 들은 주변 점포에서 쾌히 전기를 주기로 했다. 바로 속내의 전문점을 경영하는 김정태씨다. 다른 옷가게에서도 전기를 주고 싶어 했지만, 건물 주인과 협의가 되지 않아 못 주었다고 한다.

사실 가게에서 전기를 내주기란 쉽지 않다. 내주고 나면 전기세 문제로 곤란할 수도 있고, 전기 누전이나 전기사고 등으로 서로 곤란해질 수도 있다. 또 전기선이 가게를 거쳐 나가기에 미관의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김옥기 아주머니는 이런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 선뜻 전기를 준 김정태씨가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전기를 시공하는 일이다. 전기선만 달랑 나오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전기차단기에서 따내어 새로운 차단기를 만들고, 그것을 길게 연결해야 한다. 그렇게 이어진 전기선은 옆 가게 간판을 몇 개 지나서 걸쳐온다. 문제는 노점 좌판이 길 가운데 있어서 최후의 2m 정도의 전기선은 땅을 파야한다는 것. 사실 땅이 아니라 아스팔트다. 그걸 기계로 까내어 전기선을 묻어야 한다. 끝마무리는 구멍을 크게 파서 관 처리를 한 후 거기에 전기 콘센트를 설치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다가 아스팔트를 까는 것은 소리도 시끄럽지만, 먼지가 상당히 날린다. 낮에는 주변 장사들 때문에 도저히 못한다. 밤이나 되어야 작업을 할 수 있다. 이런 악조건을 감수하며 전기업자가 올까.

 초보 붕어빵 장수에게 전기를 기꺼이 공급해주기로 한 총각 CEO  안성 트라이점 대표 김정태씨다. 인상도 참 좋게 생겼다.
 초보 붕어빵 장수에게 전기를 기꺼이 공급해주기로 한 총각 CEO 안성 트라이점 대표 김정태씨다. 인상도 참 좋게 생겼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다행히 이런 소식을 접한 한 전기업자가 저렴한 가격에 쾌히 시공을 해주겠단다. 아마도 김옥기씨의 사연이 마음을 움직인 듯하다. 지난 9일, 오후 10시부터 시공 작업이 진행되었고 전기설치가 완성이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추위가 시작된다는 날이었다.

의족을 한 김옥기씨가 세상을 걸어가기엔 난관이 참으로 많다. 책임져야 할 삶이 어쩌면 무거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녀의 의족 걸음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 따스한 이웃들이 있기에 그녀의 도전이 가능하리라. 그녀는 오늘도 주변 덕분에 따스한 몸과 마음으로 붕어빵을 열심히 구워낸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1일 안성시장 통에서 김옥기씨와 이루어졌습니다.



#붕어빵#김옥기#안성시장#안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