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내라고 말해줄래? 그 눈을 반짝여 날 일으켜 줄래? 사람들은 모두 원하지 더 빨리 더 많이…. 오 난 평범한 소녀인 걸."소녀시대의 노래 '힘내' 가사에 맞춰 열다섯 소녀들이 예쁜 손짓과 깜찍한 몸짓을 펼친다. 200여 관객들은 활짝 웃는 얼굴로 무대에 빠져든다. 진회색 조끼와 스커트에 흰색 블라우스 교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소녀들은 진짜 소녀시대보다 더 자신감 넘치는 표정, 힘 있는 동작으로 멋진 마무리를 보여 준다. 박수와 환호성이 터진다.
지난 13일 오후 청주시 공단로 충북종합사회복지센터 대회의실에서 열린 '충북수화경연대회' 현장. 청주 중앙여고 수화 동아리 '손으로 그리는 세상'이 막 공연을 마쳤다. 주변의 농아 친구들과 친해지고 도움이 되자는 마음으로 뭉쳤다는 이 여고생들은 학교 축제 준비를 위해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대회 2주 전부터 매일 한두 시간씩 똘똘 뭉쳐 연습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날 대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2학년 연지영 양은 상을 안고 "진짜 좋다"며 거의 폴짝 뛰었다.
"저희들 연습하려고 자습도 빠지고, 수위 아저씨가 강당 열쇠 안 주셔서 30분 동안 비오는 데 벌벌 떨면서 기다리기도 했어요."손짓으로 전하는 아름다운 언어, 그 뜨거운 열기
이날 대회는 수화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높이고, 보다 널리 보급하자는 취지로 충청북도농아인협회가 주최했다. 열두 번째를 맞은 올해 행사에는 총 11팀이 참가했다. 대상을 받은 중앙여고 팀 외에 나머지 10팀도 우수상, 장려상, 특별상, 인기상, 참가상 등 모두 하나씩 상을 받았다. 우수상은 충주여중 '참토리', 장려상은 충북농아인협회 청주시지부 '두손모아', 특별상은 세명대 수화동아리 '뜨레모아', 인기상은 진천상산초등학교 '4학년 친구들' 팀이 차지했다.
농아인이 아니면서도 수화에 관심을 갖는 인구가 꾸준히 늘어, 대회는 해마다 성황이라고 한다. 충북농아인협회 한효심 실장은 "매년 10개 팀, 100여명 이상이 참석해 10여 년간 1000여 명이 무대에 섰다"며 "전에 나왔던 팀도 있지만 해마다 구성원이 바뀌기 때문에 그만큼 수화를 하는 사람이 늘어난 셈"이라고 흐뭇해했다.
영동대 수화동아리 '수아송아'의 유은혜 회장은 수화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농아인친구가 있어 한글 자음 모음을 표현하는 지화 배우기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혼자 무대에 섰던 청주농아선교회 양혜경(36)씨는 "1회 대회 때도 참가했는데 오랜 만에 다시 나와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이들은 수화를 배우는 것이 하나의 언어를 익히는 것이자,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추는 것이라는 자부심을 보여주었다. 관람석에 있던 박은미(20․충주)씨는 "수화에 관심이 있어 구경하러 왔는데 참 보기 좋다"고 말했다.
알찬 구성과 꼼꼼한 준비로 나눈 수화 사랑이날 행사에는 수화 공연 외에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코너도 마련됐다. 대회 중간 중간 문화상품권을 내건 '난센스 퀴즈 맞추기' 코너는 특히 관객 호응이 뜨거웠다. '아름다운 세상' '그립다' '반갑다' 등을 수화로 표현하는 문제와 수화 관련 OX 퀴즈도 나왔다. '수화에도 사투리가 있다'는 사실을 OX 퀴즈로 맞춘 한 남학생은 1만 원짜리 문화상품권을 타가며 뛸 듯이 기뻐했다.
찬조공연으로 동작 예술인 마임, 라틴음악에 맞추어 추는 라틴무브 그리고 마술과 사물놀이 등도 이어졌다. 특히 보은군 수화통역센터 나기탁 농통역사는 지화 마임 공연을 통해 큰 박수를 받았다. 대상 수상자 발표도 '청주중앙여자고등학교'를 지화로 표현했다. 아무 말 없이 몸으로만 표현하는 마임을 보며 관객들은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농아인들의 심정을 헤아렸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관객들이 돌아갈 때는 과일 주스와 A4 크기의 파일꽂이가 무료로 배포됐다. 파일꽂이 겉면엔 한글과 숫자를 수화로 배울 수 있는 그림이 프린트돼 있어 수화 확산을 바라는 주최 측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충북농아인협회는 도내 청각․언어 장애인들에게 의료와 교육, 재활 등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수화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을 위해 기초 수화반부터 수화통역사 양성반까지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한다.(문의: 충북농아인협회 부설 수화통역센터 043-233-5614)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