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하니 억하고 죽었다." 요즘 40%대 시청률을 내다보는 드라마 <자이언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황 회장이 명동성당을 찾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게 내민 신문지의 글귀다. 이른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두고 하는 내용이다.
재방송으로 보던 나와 아내는 밥을 먹다 말고 함께 소리쳤다. 엊그제 책에서 읽은 내용이 아니냐면서. 함규진의 <김구 전태일 박종철이 들려주는 현대사 이야기>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다. 거기에도 드라마와 똑같은 게 들어 있었다.
"그야말로 코미디 같은 발표가 나온 거야. 박종철을 불러다 놓고, 자백을 하라며 책상을 한 번 '탁'하고 쳤더니, '억'하면서 쓰러졌다." 나 원 참, 나는 그때 혼령이 되어서 그 발표 현장에 있었는데, 너무 말도 안 되는 발표를 하니까 화보다 웃음이 먼저 나오더라. 내가 그렇게 튼튼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직접 때린 것도 아니고 책상을 탁 치는데 억하고 죽을 수 있겠니? 내가 뭐 하루살이니? 아니면 책상을 친 경찰관이 초사이언인?"책 <김구 전태일 박종철이 들려주는 현대사 이야기>는 김구와 전태일과 박종철의 시각으로 현대사를 읽어준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균형을 잡고서 쓰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왜 북한의 김일성을 만나려고 했는지, 그 분은 왜 친일파이자 지주가 많았던 당시의 한민당과 손을 잡으려고까지 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다.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만큼은 막아보고자 그렇게 애썼다는 거다.
장준하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나도 그만큼 존경했다. 헌데 이 책을 보면 그도 박정희의 군사혁명이 성공하도록 지지한 것으로 나온다. 이유가 뭘까? 4·19혁명으로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지만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까닭이었다. 결국 장준하도 국민들의 열망처럼 경제를 살려 줄 수 있는 힘 있는 정부를 바랐다는 뜻이다.
물론 이 책은 박정희 정권이 과연 훌륭한 정권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군사 쿠데타, 일본에 대한 굴욕 외교, 베트남 전쟁의 용병 파견 등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는지 말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전태일의 분신 사건이 이 책에 튀어 오른다. 외국에 나간 광부나 간호사들만 힘든 세월을 보낸 게 아니라, 국내 노동자들도 짐승 같은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래, 박정희 정권은 분명히 경제 성장을 이룩했어. 하지만 누구를 위한 경제 성장이니? 모든 국민이 고르게 잘 살아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니? '경제를 살려야 한다.', '북한을 이겨야 한다'는 명목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열네 살짜리 어린 소녀가 눈이 짓무르고 폐가 망가지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니? 그런 식으로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고 짓밟으면서, 나라와 민족이 발전한들 뭐하겠니?(123쪽)그것이 40년 전 전태일이 온 몸에 기름을 부어댄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중심을 잃지 않는다. 과연 5·16이 없었더라면 정통성 있는 민주정부가 경제를 순조롭게 발전시킬 수 있었는지 되묻는 게 그것이다. 이는 얼마전 우석훈 박사가 장하준 박사와 관련된 글을 쓰면서 한 말과 일맥상통하기도 하다. 그로서도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어떠했을지, 아직까지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이 책을 쓴 함규진은 왜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김구와 전태일과 박종철의 시각으로 읽어보려고 했을까? 그것도 만화를 곁들여서 말이다. 아마도 한쪽에 치우진 현대사를 바로 잡아주려는 까닭이지 않았을까? 이 책에 철수와 영희와 역돌이로 등장하는 많은 아이들에게 역사 왜곡이 아닌 역사 바르게 세우기를 보여주려고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로 하여금 바른 미래를 내다볼 수 있도록 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