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 한국전쟁 휴전 이후 처음으로 우리의 영토(연평도)와 민간인에게 직접 공격을 가했다. 북방한계선(NLL)과 달리, 연평도는 북한도 인정하는 대한민국 영토다. 영토 안에 거주하는 민간인에 대한 포격은 비겁한 전쟁범죄다. 이같은 야만적인 범죄를 기획-지시한 이는 통일 이후 반드시 법의 심판대에 세울 일이다.
이 전례 없는, 그래서 예기치 못한 포사격으로 한반도는 언제든지 '코리아 리스크'(Korea discount)'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공사장의 애꿎은 민간인 2명이 죽었고, 또 이번에도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다. 고(故) 서정우 병장은 제대를 불과 한 달 앞둔 말년 병장이었고, 고 문광욱 이병은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지 세 달밖에 안된 신참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해군 장병 46명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수장된 지 불과 8개월도 안된 시점이다.
참으로 난감한 것은, 22일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에 맞서 '미국의 전술핵무기 한반도 재배치' 카드를 빼든 지 하루 만에 북한의 군사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국방의 수장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초강수 대응방침을 밝히자마자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무참하기 짝이 없다.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사건과 대통령의 메시지
국군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언행도 무참하기는 마찬가지다.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이 대통령이 보인 동선은 긴급 수석회의(오후 3시경 청와대 지하벙커)→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4시35분 청와대 지하벙커)→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8시50분 용산) 방문으로 긴박하게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군과 국민에게 전한 지시(메시지)는 ▲확전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 ▲몇 배로 응징하라 ▲100번의 성명보다, 행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군의 의무다. 다시는 도발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 등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의 지시(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는 자신의 브리핑 내용을 스스로 뒤집는 모양새를 연출할 만큼 갈팡질팡했다. 청와대는 이런 혼선을 대통령의 말이 와전된 탓으로 돌리지만, '군인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군통수권자의 발언이 너무 유약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한 '메시지 관리'로 보인다. 그러나 '말폭탄'이 영토를 지켜주진 않는다.
국민은 휴전 이후 숱하게 반복된 북한의 군사도발과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았다. 국민들은 그 경험을 통해서 대통령의 단호한 지시(메시지)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것도 안다. 군사도발에 대한 즉각적 대응공격은 자위권과 정당방위로 합리화되지만, 실기한 뒤의 '몇 배 응징'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자의적 보복행위일 뿐이다.
군은 적이 도발한 거리만큼, 화력 종류나 위협 정도에 상응하는 공격을 가하는 '비례성의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무력집단이다. 예수님은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내밀라고 했지만, 군은 적에게 맞은 만큼 되갚아주지 않으면 존립이 불가능한 조직이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이 가죽점퍼 차림으로 합참 지휘통제실을 방문해 "군은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마라. 책임은 정부가 진다. 여러분은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며 '죽음을 무릅쓴 군인의 길'을 강조한 것은 군통수권자의 책임과 의무일 수 있다.
'이미지와의 전쟁'과 남북관계가 처한 '상황의 이중성'그러나 이 대통령이 '태극기 휘날리는 가죽점퍼' 차림으로, 말이 아닌 행동을 군에 주문한다고 해서 그것이 천배, 만배의 응징보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어쩌면 부시가 이라크 전쟁에서 그랬듯이, 애국심에 호소하는 '이미지와의 전쟁'이거나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라이브 쇼'일 뿐이다.
북한이 단지 '적'이라면, 사실 이런 '쇼'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차라리 '적'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무찌르자 오랑캐' 노래처럼, 군이 박차고 나가서 무찌르면 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아니고, 북한 역시 이라크가 아니다. 북한은 우리의 '적'이자 공존해야 할 통일-통합의 대상이다. 남북관계가 처한 '상황과 구조의 이중성'이다.
즉, 나라밖 세상은 탈냉전 시대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의 조류가 흐르는 상황의 이중성에 처해 있다. 또 남북관계와 통일은 민족의 문제이면서도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국(미, 일, 중, 러)의 이익이 달린 국제문제이기도 한 구조의 이중성에 놓여 있다.
더욱이, 되로 받고 말로 갚는 '비례성의 원칙'을 고수하기엔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 상황은 너무 '비대칭적'이다. 북쪽 땅은 굶어죽는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목숨 걸고 탈북한 새터민의 눈에 비친 남쪽은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로 넘쳐난다. 그래서 잃을 것이 없는 북쪽에는 전쟁이 '이판새판'('이판사판'에 빗대어 '새판'을 짜자는 의미)일 수 있지만, 잃을 것이 너무 많은 남쪽에 전쟁은 '공멸'의 지름길이다.
북한도 그 지점을 안다. 어쩌면 북한의 끊임없는 군사도발은 남북관계가 처한 상황과 구조의 이중성과 남한의 '수'를 읽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즉, 자기들이 도발을 해도 잃을 것, 지켜야 할 것이 많은 남한은 전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때문이다.
'피스 키핑'(peace keeping)과 '피스 메이킹'(peace making)
그래서 한반도의 '평화 관리'가 어렵고 고민스러운 것이다. 이 대통령이 깍듯이 모시는 김영삼이 북한의 핵위협에도 '버르장머리'를 고치지 못한 것도, 통일외교 지략가인 김대중이 '햇볕정책'이라는 대북포용정책으로 일관하고, 뛰어난 전략가인 노무현이 포용정책을 승계한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한 것도 그런 어려움과 고민의 결과다.
'햇볕정책' 설계자인 임동원은 '안보'와 '평화 정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피스 키핑'(peace keeping)과 '피스 메이킹'(peace making)을 동시에 추구했다. 포용정책은 쉽게 말해 남북한의 연결고리를 많이 만드는 정책이다. 각 분야별로 많은 연결고리를 만들어 대결보다는 교류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하고, 교류와 협력을 하다 보면 신뢰가 증진되고, 신뢰 증진이 결국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한다는 논리다. 이런 선순환 연결망 만들기의 대표적인 사례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그리고 대북 경수로 건설이었다.
문정인-이종석 같은 노무현 정부 대북정책 이론가들은 전임자가 마련한 '안보'와 '평화 정착'의 토대 위에서 '평화 구축', 즉 피스 빌딩(peace building)을 추진했다. 참여정부가 서해 북방한계선의 긴장을 완화하고 우발적 충돌 방지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추진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이 대표적 사례다.
10.4선언에서 보듯, 이는 해상의 경계를 NLL의 선(線) 개념이 아닌 비무장지대(DMZ)와 같은 면(面) 개념으로 접근해 충돌과 긴장의 공간을 평화지대로 만들자는 지혜로운 합의였다. 그러나 임기말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합의는 제도화의 동력을 얻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는 그 합의를 휴짓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문제는 휴짓조각으로 만들었을 뿐, 끊임없이 NLL 무력화를 꾀하는 북한군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대안은 마련치 못한 것이다. 천안함 사건도, 연평도 포격도 그 대안 부재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침을 밝힌 5월 24일 담화에서 '한반도 안정과 평화가 우리의 궁극적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이 정부는 출범 이후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직무유기'라고 할 만큼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외면한 이 정부가 3년간 취해온 한반도 안보와 평화 정착의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지난 정부와 상대평가하면 더 그렇다.
"지금 전쟁하면 50년 후퇴할 것을 각오해야"이를테면 참여정부 5년 동안 서해든 휴전선이든 남북간 교전은 한 차례도 없었다. 당연히 남한이든 북한이든,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한 명의 사상자도 없었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는 민간인이 남북한 '피스 메이킹' 연결고리의 상징인 금강산에서 총격으로 피살되고, 개성공단에서 억류되더니, 급기야는 서해에서 군인 46명이 수장되고, 마침내 영토에 포격까지 발생해 군인과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
북측 또한 대청해전에서는 NLL을 침범한 함정이 반파되고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도 '비례성의 원칙'에 의한 남측의 대응공격으로 북한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화와 공존의 바다'를 '증오와 대결의 바다'로 만든 결과다.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다. 남북한 통틀어 5년 동안 사망자가 0명인 참여정부와 3년 동안 남측만 사망자가 55명인 이명박 정부 가운데 누가 더 '피스 키핑'(안보)에 유능한 정권인가? 그래서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전쟁을 할 것인가, 평화를 만들 것인가.
연평도에 북한군의 포탄이 떨어진 날, 서울시내의 한 식당에서는 한 시민단체가 주최한, 독일 통일 사례를 중심으로 본 남북한 사회통합 토론회가 열렸다. 예비역 장군으로 북한학 박사인 이 단체의 공동대표는 인사말에서 "무력통일을 이루기 위해 육사에 가서 청춘을 군문에 바치고 사단장까지 지냈지만, 지금 전쟁을 하면 우리는 적어도 50년은 후퇴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 통일 당시 동서독의 경제력 격차는 동독이 서독의 1/2 수준이었는데 비해 현재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는 북한이 남한의 1/10 수준이라는 통계가 있다. 서독은 통일 전부터 동독에 '대가없는 퍼주기'를 해주었고, 통일 후에는 동독지역 재건을 위해 세금과 재정을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독일 통일 20년이 지난 지금, 정치-경제적 통합은 성공했을지언정 '사회적 통합'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일의 사례와 남북한 위정자들의 '적대적 의존관계'독일의 사례는 한반도에서 벌어질 '실패한 통합'을 보여주는 일종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두 가지 관점에서 그렇다.
우선, 독일과 한반도는 누적된 갈등의 깊이가 다르다. 독일은 ▲갈등(49~62년) ▲화해(63~74년) ▲협력(75~88년) 시기를 거쳐 ▲통일(89~90년)을 이뤘다. 이에 비해 남북한 ▲갈등(45~97년) ▲화해-협력(97~2007년) 시기를 거쳐 다시 ▲갈등(2007~2010년)으로 환원되었다. 동서독의 경우 갈등기(13년간)보다 화해-협력 시기(24년간)가 훨씬 더 길다. 이에 비해 남북한의 갈등 시기는 55년이지만 화해-협력 시기는 10년에 지나지 않는다.
누적된 갈등의 양상과 질도 차원이 다르다. 독일은 갈등기를 제외하곤 교류협력(63년), 통행 협정(72년), 문화교류(TV 개방) 등을 통해 갈등을 치유하는 사회통합의 과정을 거쳤다. 이에 비해 남북한은 무엇보다도 3년간의 전쟁과 50년간의 냉전으로 갈등을 증폭시켜왔다. 6.25 전범, KAL 858기 폭파, 천안함 사건 등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도 사회적 통합의 장애물이다.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은 남북한의 누적된 갈등과 증오의 골을 더 깊게 하는 또 하나의 사슬이다. 그 골이 깊을수록 치유와 통합은 멀어질 뿐이다. 그래서 '준전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왜, 유독, 이 정부 들어와서만 애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는가? 도대체, 언제까지, 남북한 위정자들은 이 증오의 악순환 고리를 끊지 않고 '적대적 의존관계'를 유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