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후회와 눈물에 젖은 어린 엄마와 입양이 떠오르시나요? 그러나 여기,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양육 미혼모들이 있습니다. 저출산이라는 시기적 이슈 때문에 국회나 포럼 등에서 편견의 장막에 가려 투명인간 취급받던 이들을 부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지원책은 아직 미약하기만 합니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을 만나 그동안 가슴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기자주경기도 내 중학교에서 기간제교사로 일하고 있는 정아무개(29, 가명)씨는 4살 된 아들을 키우는 미혼모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미혼모'라는 단어는 '결혼'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리고도 서류상 혼인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미혼모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 지난 16일에 만난 정씨가 그런 경우였다.
지난 2006년 결혼식을 올렸지만 남편이 신혼여행 다녀오고 며칠만에 심장마비로 숨졌다. 평소에 지병도 없던 남편이었다. 정씨와 남편의 가족들이 갑작스러운 죽음에 당황하고 있는 사이, 남편의 회사는 4대 보험 정리를 위해 먼저 사망 처리를 했다. 유족들은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도착한 각종 정리 서류를 받고서야 남편의 사망신고가 회사에서 처리되었음을 알게됐다고 했다. 이런 정씨의 사연은 지난 2008년 한 TV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나중에야 정신을 수습한 정씨가 생활비로 쓰기 위해 남편의 통장에서 남은 급여를 인출하려 했지만, 남편과 결혼했다는 아무런 법적 증거가 없었다. 시댁에서 아들 통장에 남겨진 급여를 정씨에게 인출해 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무것도 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정씨는 만약 남편이 유산을 남겼다 하더라도, 법적인 혼인 관계에 있지 않았던 자신은 아무런 법적 권한도 없는 것이 현행법의 한계라고 말했다.
결혼 직후 남편의 죽음이라는 충격을 받은 정씨는 아이가 생긴 것을 알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이를 낳지 않거나, 혹은 낳은 후에라도 새 출발을 위해 아이를 시댁에 맡길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까?
"그건, 처음에 시댁 쪽에서 우려하던 바였어요. 하지만, 저는 사람이 난 자리는 사람으로 채워야 한다는 말을 믿어요. 저는 아이가 있어야 제가 잘 될 것 같았어요. 제가 낳은 아이잖아요."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와 함께 누울 집'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씨는 '아이와 함께 발 뻗고 누울 집'이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근무하는 학교가 가까워 동생 집에서 잠시 머물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로 인근 '모자원'에서 지냈다고 했다.
'모자원'이나 '중간의 집' (아래 표 '참고1' 참조) 등은 한부모 가족을 위한 보호시설이다. 이 시설들은 지역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아 강남이나 서초, 또는 경기 동남권에는 시설이 거의 없단다. 또, 정씨가 지냈던 구로의 '모자원' 같은 경우엔 이용 희망 인원이 많아 아이를 낳은 지 24개월이 지나면 예외 없이 퇴소해야 한다. 또, 정씨처럼 모자원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직장을 다니게 되는 경우에도 출퇴근이 힘들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씨는 자기 같은 양육 미혼모에겐 한부모 가족을 위한 영구 임대 아파트 입주도 딴 나라 이야기란다. 지금의 청약 점수 산정기준으로는 미혼모가 입주 가능한 점수가 나올 수 없는 구조라는 것. 부양 가족 수, 자활사업 참여기간 등이 점수 기준에 포함되는데, 아이 하나가 대부분인 젊은 미혼모들의 경우 부양 가족 수에서 점수를 획득하기 힘들고, 자활 사업 참여는 비현실적 항목이라는 것이다.
"자활이요? 주민센터에서 한 달에 열심히 일하면 60만 원, 많게는 80만 원 받기도 해요. 정부 지원 없이 그 금액으로 살 수 있겠어요? 나이 드신 분들께는 도움이 되지만, 젊은 사람 입장에선 도움이 안 된단 말이죠. 자활이…"정씨는 저소득 한부모 가족을 위한 정부의 양육비 지원금(현재 월 5만 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자립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나마 기간제 교사 자리를 구한 이후에는 그것도 못 받게 되었다고 했다. 현재 저소득 한부모 가족 지원자격의 소득 기준은 110만 원. 110만 원 이하이면 지원을 받고 소득이 그 이상이면 지원도 받기 힘들다.
아이 유치원비 66만 원, "살 수가 없어요""얼마 전에 아이 유치원 옮기면서 66만 원을 냈어요. 매달 내야 하는 고정금액이 54만 원인데, 각종 특별활동비에 다른 항목을 더해서 66만 원을 카드로 긁으래요. 저 카드 없거든요. 동생 카드로 대신 긁었어요. 갚아야 돼요. 한부모 가족 지원자격 소득 기준 110만 원에서 66만 원 쓴다고 생각해 보세요. 보육료로 지원받을 수 있는 최대 지원금 17만 원은 나중에 환급 받아요. 제가 살 수 있겠어요?"유치원 비용이 다소 과한 것 같다는 내 말에 정씨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며 반박했다.
"제가 비싼 데를 고른 게 아니라, 그냥 동생 집 근처 사립 유치원에 보낸 거예요. 가까운 곳에 국공립 어린이집이 없어요. 저희 엄마도 진짜 이 금액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정말 보낼 데가 없었어요."정씨가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게 되면서 늦는 날이 많아 동생이 퇴근 후 아이를 보는 일이 많다고 했다. 앞으로 결혼도 해야 하고, 자기 생활 챙기기도 바쁜 동생에게 정씨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지금이야 동생 집에 잠시 있는다지만, 앞으로 집을 구하면 월세까지 내야 해요. 생각해보세요. 정말 아무 것도 못해요. 아이 밥도 제대로 못 먹여요."그간 간간이 인턴 교사로 근무하면서 받은 금액은 월 60여만 원. 이번에 자리를 구한 기간제 교사는 6개월짜리라고 했다. 6개월 후에는 또다시 어떻게 생활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나마 기간제 교사 임금은 180만 원정도여서 생활이 낫다.
남편과의 사별, 제 잘못인가요?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절실하지만, 정씨를 힘들게 하는 것이 비단 그 문제뿐만은 아니다. 그녀는 사별한 남편을 둔 미혼모인 자신에게 쏟아지는 편견과 스스로의 위축감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제일 처음 면접을 봤을 때, 교장선생님이 남편 뭐하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사별했다고 얘기했더니 표정이 좋지 않으셨어요. 다행히 이번에 다니게 된 학교는 이전 학교의 선생님 한 분이 저를 추천해 주셔서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보셨어요. 그 추천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6개월 근무할 수 있는 자리도 구하기 힘들었을 거예요."정씨가 나에게 되물었다.
"근데, 왜 저를 평가하는데 남편 직업을 물어볼까요?""학교에서도 그저 사별이라고 말하니까 더 이상 묻지 않아서 그렇지, 법적으로 혼인신고도 안 되어 있다는 사실을 교장선생님이나 다른 선생님이 알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당연히 잘리겠죠."그녀의 말을 들으니 얼마 전 목경화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가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가장 심한 곳이 중고등학교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정씨 역시 학교의 폐쇄성을 인정했다. 정씨는 더 나이가 들면 기간제 교사로 일하기도 힘들어 질 것에 대비해, 올해부터 임용고사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남들은 공부에만 올인하며 몇 년간 준비한다는데, 아이도 키우고 직장도 다니며 공부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정씨에게는 안정된 직장과 집을 갖는 것 말고 또 다른 바람이 있다. 바로 아이에게 올바른 남성상을 알려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 정씨는 "친정에도 아버지나 남자형제가 없고 시아버지가 계시긴 하지만 자주 찾아뵙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씨는 "유치원 선생님도 모두 여자이고 그러다 보니 (4살 된) 남자 아이인데도 좀 심하게 여자아이처럼 노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사회의 바람직한 여성상은 정씨가 스스로 노력해서 보여주면 되지만, 바람직한 남성상의 절반을 채워주기에는 너무 부족한 현실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내년이면 아이 데리고 목욕탕 가기도 힘들어질 텐데, 선량하고 아이 좋아하는 남자 대학생들이 아이 돌보미 서비스 같은 건 안 하나요? 협회 차원에서 이런 자원봉사 받아주면 좋을 텐데…"하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정씨가 시댁과의 왕래를 끊지 않았던 것도 알고 보니 아이에 대한 그런 속깊은 배려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아빠를 대신해 할아버지, 할머니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시댁 어른들도 아이는 예뻐하신다. 그러나 정씨 입장은 여전히 모호하다고 했다.
시댁에선 정씨를 며느리로 여기기엔 해줄 것도 없고 젊은 사람 앞길을 가로막는 것 같기도 하여 부담스러워 하신단다. 친정도 나름대로 딸 아이를 결혼시켰는데 남편은 없고 아이만 있는 것을 안쓰러워 한다. 정씨는 "스스로도 자신의 위치가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다"며 "양쪽 집의 이런저런 시선에서 벗어나려면 빨리 독립하는 것만이 최선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퇴근 후 아이를 돌봐주던 정씨 동생에게서 두 번이나 전화가 왔다. 헤어질 시간이다. 이야기하던 식당을 나와 조금 걸어가니 자전거를 탄 아이가 정씨 동생과 함께 나란히 서 있었다. 저녁 늦은 시간 추운 날씨에 모자 달린 외투를 입고 마스크를 한 남자 아이가 엄마를 기다린다. 그들 모자가 어서 빨리 그들만의 보금자리로 독립할 수 있기를 빌어 보았다.
[참고1] 미혼모 관련 시설 |
한부모가족을 위한 복지시설 중, 양육미혼모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시설은 모자보호시설(미혼모시설), 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중간의집), 모자보호시설(모자원) 등이 있다.
미혼모시설 - 미혼의 임신여성 및 출산 후(6개월 미만) 보호를 요하는 여성 대상 보호기간 : 1년 (6개월 추가 연장 가능) 시설수 : 32 개소 , 입소정원 : 768명 혜택 : 숙식무료제공 / 분만의료혜택 / 자립지원(직업교육,인성교육,상담지도) / 기타 국가 지방자치단체가 정하는 경비 지원
중간의집 - 2세 미만의 영유아를 양육하는 미혼모로서 보호를 요하는 여성 대상 보호기간 : 2년 (1년 추가 연장 가능) 시설수 : 23개소 , 입소정원 : 174세대 혜택 : 아동양육비지원 (한부모가족지원법대상 및 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에 한함) / 숙식무료제공 / 만4세이하 자녀를 법정 저소득층아동으로 포함하여 보육료100% 지원 (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에 한함) / 자립프로그램 / 기타 국가 지방자치단체가 정하는 경비 지원
모자원 - 만 18세 미만의 자녀를 양육하는 무주택 저소득 모자가족 대상 보호기간 : 3년 (2년 추가 연장 가능) 시설수 : 41개소 , 입소정원 : 1,062 세대 혜택 : 아동양육비지원 (한부모가족지원법 대상) / 고등학교 학비 지원 / 방과후 아동지도 / 아동급식비 지급 / 복지자금융자 지원 / 영구임대주택입주 지원 / 보육시설 이용시 보육료 감면 / 기타 국가 지방자치단체가 정하는 경비 지원
[자료] <2010한부모가족지원사업안내> 보건복지가족부(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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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권희정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을 만나 미혼모에 대한 지원대책에 대해 물었다. 그는 미혼모에 대한 파악을 기반으로 통합적 지원대책이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 사무국장은 작년에 예산안이 확정돼 올해 시행되고 있는 청소년한부모(만18~24세) 지원 예산 121억 원을 일례로 들었다. 해당 예산은 미혼모 시설 등에서 생활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홀로 자립해서 생활하는 청소년한부모(주로 청소년미혼모)들을 대상으로 한다. 월 10만 원의 양육비와 2만 4천 원의 의료보험료 및 검정고시비용 등을 지불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권 사무국장에 따르면, 편성된 예산의 집행률이 10월 말 기준 5%에 그쳐 실효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올 2010년 경기도 양육미혼모부자 생활실태 조사(서해정, 2010)는 시설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분포된 미혼모에 대한 고른 실태파악의 첫 사례로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복지급여를 수령하는 미혼모 중 24세 이하가 22.2%, 25~30세 이하가 22.3%, 31세 이상이 55.5%.
권 사무국장은 이 자료를 예로 들며, 여타 연구와 비교해 30대 이상의 비중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고 했다. 이는 기존의 시설입소 미혼모를 대상으로 조사할 때와는 상당히 다른 결과였으며 정책입안자들이 미혼모들이 주로 어리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견해를 뒷받침하는 의미있는 분석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권 사무국장은 "실제로 어린 미혼모들은 출산에 따르는 비용부담이 어려워 시설을 이용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며 "이제까지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양육 미혼모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현황이 조사된 사례가 없음을 감안할 때, 이번 경기도내 실태파악의 방법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 보다 현실적인 지원대상의 규모와 예산안 편성이 용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사무국장은 "미혼모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고 그로 인한 기존 관계의 단절, 최종적으로 경제적 궁핍 등의 삼중고에 시달리게 된다"며 "가난한 사람들이 미혼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미혼모가 돼 고립되면서 경제적으로 궁핍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오마이뉴스>의 미혼모 기획이 일반인들로 하여금 다양한 양육 미혼모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혼모 스스로도 위축감과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게 될 것이라고.
현재 여성가족부에서 모자원에 입소한 미혼모 가족을 위한 심리상담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으나, 이런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지역사회의 일반 미혼모와 그 아이들에게까지 심리상담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권 사무국장은 말했다.
미혼모는 여러 가지로 상당한 심리적 경제적 부담을 안고 생활하는 것이 현실. 그에 따라 그 압박감이 본의 아니게 아이에게 향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미혼모뿐 아니라 그 아이들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한국미혼모가족협회(cafe.naver.com/missmammamia.cafe)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와 연대하여 아이들과 미혼엄마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연락처 : 02-734-5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