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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앞을 지키고 있던 개. 골목에 서서 큰 길가를 계속 바라보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골목앞을 지키고 있던 개. 골목에 서서 큰 길가를 계속 바라보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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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주인공 이진석(원빈 분)은 피난길에 오르며 집에 남은 누렁이에게 "꼭 돌아올게"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에게 '개를 챙기는 여유'란 그야말로 사치일 수 있다. 자신의 생명이 바람 앞에 놓인 촛불과 같은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최근 현실이 되었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23일) 이후 일주일. 대다수의 주민들이 떠난 섬의 적막함과 전쟁의 공포와 불안을 알리는 기자들의 사진이 언론에 소개되었다. 그 중 사람들의 시선을 끈 몇 개의 사진이 있었다.

잿더미 위에 쭈그리고 앉아있거나, 다리에 파편을 맞거나 머리에 부상을 입은 개들의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마을을 덮친 포격에 황급히 떠나야 했던 사람들은 개들을 집에 두고 가거나 목줄을 풀어주었다. 언론에 개들의 사진이 보도되자 '그 개들은 어찌하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현지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다친 개들을 치료할 인력이나 의약품이 있을 턱이 없고 무엇보다 집안에 묶여 있는 개들은 장기간 방치될 경우 굶주림과 갈증 공포로 죽어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것이 시급했다. 27일 연평도로 가는 배편을 예약했으나 기상문제로 결항되었고 다행히 28일 오전 9시 반 연평도로 향하는 배를 탈 수 있었다.

개들의 문제, 굶주림보다 개체수 확대 가능성에

 곳곳에서 떠돌이개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떠도는 개들은 지속적인 음식공급부족뿐 아니라 향후 개체수가 불어나 문제가 될 수 있다.
 곳곳에서 떠돌이개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떠도는 개들은 지속적인 음식공급부족뿐 아니라 향후 개체수가 불어나 문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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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평어린이집 앞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미를 발견했다.
 연평어린이집 앞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미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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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장기간 묶여 있던 개들은 사람을 보면 호기심과 반가움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혼자 장기간 묶여 있던 개들은 사람을 보면 호기심과 반가움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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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도착하자마자 조사활동 계획을 세웠다. 1차 조사의 대략적인 목적은 개들이 처한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었고 이를 목표로 몇 가지 세부적인 계획을 세웠다. ①우선 대략적인 개체수를 파악해야 했다. 묶여 있는 개가 있다면 장소나 주소 파악해 향후 관리대상 목록을 만들고, 돌아다니는 개들의 개체수도 대략적으로 파악해 기록한다. ②다친 개들은 치료 후 구조한다. ③밥과 물이 공급되지 않은 개들에게 비상식량을 공급한다. ④어린 강아지의 목줄은 풀어준다. 개들이 크면서 목줄이 목을 조여 살을 파고들어가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⑤묶여 있는 개들의 경우 체인이 꼬여있어 행동반경이 줄어들었다면 길게 늘여준다.

우선 기자들이 주로 머물고 있는 학교와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활동반경을 정했다. 28일 오후는 면사무소에서 서쪽방향의 빈집들과 동남쪽의 성당, 중고등학교 주변 남쪽지역을 돌았고, 29일 오전부터 배가 떠나는 낮 12시까지는 학교에서 서쪽방향의 빈집을 물색했다.

곳곳에서 개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대부분 백구 같은 대형견들이었고 간간이 작은 발바리도 보였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섬을 떠나면서 줄을 풀어주고 간 사람들도 있었고 폭격이 있을 때 줄을 끊고 도망간 개들도 있다고 했다. 남아있는 주민들 중 돌아다니는 개들의 사료를 챙겨주는 분들이 있어 비교적 눈에 띄는 개들의 건강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곳곳에 뿌려진 사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돌아다니는 개들의 문제는 굶주림보다 개체수 확대 가능성에 있었다. 개들 중엔 금방 새끼를 낳아 젖이 불어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교미하고 있는 개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런 개들의 경우 당장의 생존이 문제가 아니라 향후 개체수가 증가하고 야생화 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문제다.

이는 향후 '연평도 개들의 들개화'라는 새로운 문제로 확대되어 이후 포획과 사냥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돌아다니는 개들은 수의사협회와 논의하여 중성화수술을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아직 주인이 소유권을 포기했다는 명확한 의사표명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될 수 있다. 그러나 개들의 건강과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우려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수술을 하고 향후 주인이 나타나는 경우 협상하는 방법도 모색해 볼 수 있다.

건강상태는 나쁘지 않았지만... 물 공급 대체적으로 부족

 어린 강아지들의 경우 커지면서 목줄이 살을 파고들어갈 수 있다. 목줄을 풀어주고 있는 모습
 어린 강아지들의 경우 커지면서 목줄이 살을 파고들어갈 수 있다. 목줄을 풀어주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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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 시골에서 개들에게 공급하는 음식잔반의 모습. 문제는 이런 밥들이 장기간 방치되면 부패되어 먹을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조미료가 들어간 밥에 길들여진 개들은 사료를 공급해도 익숙하지 않아 잘 먹지 않는다. 사료공급시 처음에 겪게 되는 어려움이다.
 대부분 시골에서 개들에게 공급하는 음식잔반의 모습. 문제는 이런 밥들이 장기간 방치되면 부패되어 먹을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조미료가 들어간 밥에 길들여진 개들은 사료를 공급해도 익숙하지 않아 잘 먹지 않는다. 사료공급시 처음에 겪게 되는 어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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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의 증언에 따라 개들이 많이 갇혀있다는 남쪽지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작은 창고 안에 갇힌 개 세 마리와 식용으로 키우는 것으로 추정되는 개들을 발견했다. 어미와 새끼들이 있었는데 물이 부족하고 사료도 없이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물쓰레기들만 있었다. 문이 모두 밖에서 잠겨 있어 비닐 봉지 안에 사료를 넣어 담장 너머로 던져줄 수밖에 없었다.

오후 3시가 넘어 면사무소 주위 빈집 몇 곳을 돌아다녔다. 대문이 열려있는 어느 집에서 진돗개 두 마리를 발견했다. 주인이 꽤 많은 양의 사료를 밥그릇 안에 넣어둔 것으로 보였으나 물이 전혀 없었고 변도 한 번도 치워주지 않아 악취가 진동했다.

비교적 많은 개체수의 동물을 키우는 집(농가부업이거나 상업적 목적으로 가축을 키우는 것으로 보이는 집)은 사료그릇이 비어있는 경우는 없었고, 기자들과 봉사자들이 모여 있는 학교 주변의 개들은 비교적 먹이 공급이 원활했다.

그러나 일반 가정집의 경우 사료공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대부분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있었으나 이마저도 썩어 있었고 물은 어느 집이나 거의 공급되지 않았다. 물 공급이 시급했고 물그릇 역시 너무 더럽거나 개들이 발로 차면 쉽게 엎어지는 형태였다. 조사과정에서 인천시수의사협회가 30일 연평도로 치료를 위해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물그릇준비를 요청했다.

29일엔 면사무소 서쪽 빈집을 둘러보았다. 빈집 지붕 위에서 고양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고양이들 역시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보였다. 기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거리를 걸어다니다 개들의 공격을 받는 고양이가 있다고 했는데 그런 이유에서인지 대부분 지붕이나 집안에서 고양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건강상태는 대부분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거리를 돌아다니거나  골목 주변을 돌면서 서성거리고 혹은 집 대문 앞을 지키고 있는 개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보기에도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공포심에 사로잡히거나 성격이 소심해 집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밥도 먹지 못하는 개들이었다. 이런 개들은 대부분 눈에 띄지 않아 면사무소 측이나 주민들에게 발견되지 않아 혼자 앓다 죽을 가능성이 있었다.

지진 나면 동물구조팀도 함께 움직이는 일본

 혼자 묶여 있는 개들은 일주일 이상 변을 치워줄 사람이 없어 주변에 악취가 진동하게 된다. 일정기간 방문해 치워주어 위생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혼자 묶여 있는 개들은 일주일 이상 변을 치워줄 사람이 없어 주변에 악취가 진동하게 된다. 일정기간 방문해 치워주어 위생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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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시급한 것은 물공급이었다. 대부분의 개들의 물그릇이 좋지 않았고 물도 거의 없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물공급이었다. 대부분의 개들의 물그릇이 좋지 않았고 물도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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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집에 혼자 방치되어 있던 개. 집 안으로 들어가자 겁을 집어먹고 개집안으로 숨어들어갔다. 밥은 거의 썩어 있었고 심하게 말라 있어 물과 사료를 공급했다.
 빈집에 혼자 방치되어 있던 개. 집 안으로 들어가자 겁을 집어먹고 개집안으로 숨어들어갔다. 밥은 거의 썩어 있었고 심하게 말라 있어 물과 사료를 공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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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와 29일 오전까지 확인한 개들은 집에 묶여 있는 개, 집 주변을 돌며 지내는 개, 거리를 활보하며 떠도는 개, 목줄은 없으나 견사에 갇혀 있는 개들로 총 40여 마리였으며 고양이는 10여 마리 정도 볼 수 있었다. 개들의 경우 주민들의 의견으로는 적게는 70~80마리 많게는 200여 마리까지도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다행히 다친 개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으나 문제는 이 개들의 주인이 피신상태이지, 개들의 소유권을 포기했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일괄적으로 유기동물처리를 할 수가 없고 모두 구조해 육지로 데려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29일 인천시수의사협회 측은 전화통화를 통해 연평도 내에 임시 보호소를 만들고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섬 내에 수의사가 상주하고 옹진군과의 협조 하에 개들을 관리하게 된다. 그러나 수의사협회와 관청의 보호란 적은 인력과 예산으로 많은 수의 동물들을 관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또 1차 조사결과 관청과 사람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방치된 개들이 많이 있었다. 주민들이 대부분 연평도로 들어오지 못하는 상태가 장기화되면 이 또한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현장에서 일본인 기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기자들을 통해 일본의 동물구조관리시스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일본은 자연재해, 특히 지진이 많이 발생하여 지진이 나면 인명을 구조하는 팀뿐 아니라 동물구조팀이 함께 움직인다고 한다.

재해가 발생해 인명과 동물이 모두 위험에 빠지게 될 경우, 어떤 관리시스템을 만들어 작동시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지 우리의 실정에 맞는 매뉴얼이 필요하다. 재해가 발생하면 관청과 수의사 동물단체는 각각의 역량에 맞는 역할을 분담하고 현지주민과 함께 이를 해결할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움직이지 않고 현관앞을 지키고 있는 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움직이지 않고 현관앞을 지키고 있는 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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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공존의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꼈다. 골목을 서성이며 한 곳만 계속해서 바라보던 백구의 슬픈 눈을 주인은 알고 있을까. 현장에서 만난 한 외국인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사람들은 동물보다 인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동물을 구하러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물론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에 동물구조란 배부른 사치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답했다.

"모든 사람들이 동물을 사랑하는 사회에서 과연 전쟁이 있을 수 있을까? 동물 하나라도 소중히 하는 사회라면 당연히 사람 역시 죽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이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전달될 때까지 연평도 동물구하기 작전은 계속된다.


#연평도사건#동물구조#유기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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