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연평도 사건으로 세상이 어수선하다. 마치 사람들 마음 속에 회색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다. 그래도 멍하니 있을 수만은 없잖은가. 어느 노래 제목처럼 '어쨌든 우리는 살아가야 하니까'. 각설하고 요즘 판결 8번째 이야기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객관식 문제로 가볼까 한다. 소개할 판결은 3가지다.

① 점 3백 고스톱, 유죄일까 무죄일까.
② 박근혜 미니홈피 댓글 논쟁 결과는?
③ 성폭행하다가 멍만 들게 했다면 무슨 죄?

[판결 1] 점 3백 고스톱 치다 싸우면 도박죄? 상해죄?

 영화 <타짜> 중 한 장면.
영화 <타짜> 중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주)

[사례 ①] 오토바이 가게를 하는 사익하(가명)씨. 그는 오후 5시쯤 손님이 뜸한 시각이 되자 주변 가게 주인들을 불러모았다.

"자, 다들 한가하신 것 같으니 우리 가게에서 고스톱이나 칩시다. 점당 3백이고요. 딴 사람이 탕수육 사기예요."

네 판이나 돌았을까. 갑자기 화투판이 뒤집어졌다. 지역마다 다른 고스톱 규칙이 문제였다. 사씨가 막판에, 다른 사람이 싸놓은 패를 먹고 피를 한 장씩 달라고 했는데 건너편에 있던 우길남(가명)씨는 주지 않았다. 자기 동네에선 막판에는 주지 않는다고 맞선 것이었다.

판이 엎어지고 두 사람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우씨가 먼저 사씨를 밀어서 넘어뜨렸다. 아프고 화가 난 사씨도 여기에 맞서 주먹으로 우씨의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이가 깨지고 말았다.

사씨는 어떻게 처벌을 받았을까?
① 도박 유죄, 상해 유죄
② 도박 유죄, 상해 무죄
③ 도박 무죄, 상해 유죄
④ 도박 무죄, 상해 무죄

쉽지는 않은 문제다. 하지만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진다. 먼저 도박을 보자. 형법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형법 246조
① 재물로써 도박한 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한다. 단, 일시 오락 정도에 불과한 때에는 예외로 한다.

일시오락 정도는 위법성이 없어서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디까지가 오락일까. 점 백? 2백? 3백? 법원은 이렇게 말한다.

"도박죄에 있어서 위법성의 한계인 '일시오락 정도'에 불과한지 여부는 도박의 시간과 장소, 도박자의 사회적 지위 및 재산 정도, 재물의 근소성, 그 밖에 도박에 이르게 된 경위 등 모든 사정을 참조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2008도 5018 판결 등)

결국 이것저것 다 보고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말인데, 명확하지 않다. 가끔 경찰이 공인중개사 사무실이나 노인정에서 재미 삼아 고스톱이나 훌라 하는 사람들을 도박죄로 입건하면서 마찰이 빚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고스톱을 친 사람들이 모두 인근 가게 주인으로 서로 아는 사이고 ▲판돈으로 탕수육을 시켜 먹으려고 했으며 ▲도박 시각이 낮이었고 ▲시간도 10분 정도에 불과한 사실을 인정하여 오락으로 보았다. 따라서 도박죄는 무죄. 

그렇다면 점 3백까지는 오락이라도 봐도 될까. 그렇지는 않다. 만일 사례와 다르게, 모르는 사람들이 야밤에 모여 오랫동안 고스톱을 쳤다면 도박죄로 인정되고도 남는다. 사안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먼저 공격받고 가해해도 방어이자 공격... 정당방위 아니다"

다음으로 상해 부분이다. 먼저 주목할 사실은 싸움이 법정에 오면 좀처럼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씨가 먼저 힘으로 넘어뜨리자 화가 난 사씨가 뒤늦게 맞섰으니 사씨로선 억울한 측면도 있겠다.

하지만 법원의 일관된 판례는 "공격할 의사로 싸우다가 먼저 공격을 받고 이에 대항하여 가해하게 된 경우, 그 가해행위는 방어행위인 동시에 공격행위의 성격을 가지므로 정당방위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사건에서도 사씨의 주먹질이 우씨의 부당한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것에 그치지 않고 공격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상해를 인정하였다. 2심(서울중앙지법)까지 올라갔던 이 사건은  지난달 20일 확정되었다.

싸움을 하다가 서로 치고 받은 경우 양쪽이 전과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한쪽이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판사가 직접 보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는 이상 양쪽 모두 처벌할 수밖에 없다. 판사는 신이 아니다.

이 사건의 교훈 한마디. 싸움은 방어인 동시에 공격으로 보기 때문에 정당방위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사실, 명심하자. 정답은 3번.

[판결 2] 박근혜 미니홈피 댓글 논쟁 결과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최근 미니홈피 갈무리 화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최근 미니홈피 갈무리 화면. ⓒ 박근혜 미니홈피

[사례 ②] 박근혜 전 대표의 골수팬을 자처하는 박시소(가명)씨. 그는 박근혜 미니홈피에서 살다시피 했다. 박씨는 '그네공주'에 대한 악플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홈피 자유게시판에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박 전 대표를 비판하는 듯한 댓글이 올라오자 참을 수 없었다.

그는 10여 차례에 걸쳐 "명빠 XX가 근혜님의 책임이 있다고 OO을 하네", "앞으로 명빠는 글을 올리지 마라", "여기서 니가 선전하면 후원금을 줄 것 같으냐" 등의 댓글로 맞섰다. 그러자 욕을 먹은 사람은 이 내용을 저장하여 경찰에 신고했다.

박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① 정당한 논쟁 과정에서 생긴 일이므로 무죄
② 사이버 명예훼손죄로 처벌
③ 사이버 모욕죄로 처벌
④ 이런 걸 신고한 사람이 문제다

사실 박씨가 사용한 댓글을 표현의 자유로 보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법률상 무죄로 보기도 힘들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상당수 누리꾼들은 논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욕설과 원색적인 비난을 마다하지 않는다. 간 큰 행동이다.

박씨에게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벌금 150만 원형이 선고됐다. 박씨는 댓글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지난달 26일 서울동부지법은 "박 전 대표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댓글을 단 것 같다고 박씨가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점 등을 보면 허위 사실을 게시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정답은 2번 사이버 명예훼손죄, 정확하게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상의 명예훼손죄(70조)이다. 허위 사실이냐 사실이냐에 따라 법정형에 차이가 있다.

제70조
①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참고로 명예훼손과 모욕의 차이는 (허위) 사실의 적시가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즉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리는 표현이 (허위) 사실을 담고 있으면 명예훼손이고, 단순하게 욕설이나 경멸의 표현 정도가 담겨 있으면 모욕이 된다.

어디 미니홈피뿐이겠는가. 사이버 논쟁 중에 욕설을 주고받기란 예삿일이다. 하지만 문제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실제로 법정에 오면 전과자 되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 논쟁 중에 댓글을 신고하는 일도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그보다 먼저 댓글논쟁도 품위를 지키자 (이렇게 설명했는데도 이 기사 댓글에 욕 쓰는 사람 꼭 있다).

[판결 3] 성폭행하려다 멍만 들게 했다면 무슨 죄?

[사례 ③] 밤 11시 술에 취한 남근성(가명)씨는 처제 한송이(가명)씨가 살고 있는 원룸을 찾았다. 문이 잠겨 있자 주방쪽 창문을 넘어 방으로 들어갔다. 남씨는 안방에 있는 한씨의 목을 감싸면서 바닥으로 눕히고 어깨로 양쪽 허벅지를 눌러 성폭행하려 하였으나 그 와중에 한씨가 도망가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 한씨는 그 과정에서 오른쪽 허벅지와 종아리에 약간 멍이 들었다.

법원은 남씨에게 어떤 죄로 어떻게 처벌했을까?
① 주거침입죄로 벌금형
② 상해죄로 징역형 집행유예
③ 강간미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④ 강간치상으로 징역형

남씨는 처제 한씨에게 잘못한 건 맞지만 한씨의 상처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고 자연 치유될 정도이므로 선처해달라고 호소했다.

 최근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원의 처벌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최근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원의 처벌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 (사)한국성폭력상담소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엄격했다. 법원은 "남씨가 상체로 한씨의 반항을 억압하기 위하여 유형력을 행사한 사실이 인정되고 이로 인하여 한씨의 몸에 멍이 들었다"며 "따라서 상처는 강간의 수단인 폭행을 직접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것"으로 보았다.
한씨는 의학적으로 우측 하퇴부 좌상을 입었다. 상처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전치 2주의 진단에 연고 처방을 받았고, 열흘 정도 지난 시점까지 멍이 남아 있었다면 상해에 해당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대법원도 통상 발생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서 강간을 하기 위한 폭행․협박으로 생긴 상처는 강간상해죄의 상해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남씨는 술에 취하여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형의 감경을 요청했지만 법원은 이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구지법은 지난달 26일 남씨에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의 강간등 치상죄를 적용,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그나마 "성폭행이 미수에 그쳤고 처제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법원은 설명했다.

정답은 4번이다. 비록 성폭행이 미수에 그쳤더라도 폭행이나 협박 과정에서 상처를 입혔다면 강간상해로 중형이 선고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성폭력 범죄는 갈수록 처벌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성폭행#정당방위#도박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