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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치료받는 아이티 어린이 영양실조와 콜레라에 걸린 한 아이티 어린이가 30일 포르토프랭스의 난민캠프에 마련된 적십자 치료소에 누워있다. 아이티에서는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천700명을 넘어섰다.
▲ 콜레라 치료받는 아이티 어린이 영양실조와 콜레라에 걸린 한 아이티 어린이가 30일 포르토프랭스의 난민캠프에 마련된 적십자 치료소에 누워있다. 아이티에서는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천700명을 넘어섰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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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의 콜레라 사망자 수가 지난달 29까지 1700명을 넘어섰고, 감염자도 7만5천 명에 달한다고 <아에프페 통신>(AFP)이 보도했다. 유엔 아이티 안정화군이 공식적으로 밝힌 발병 날짜가 10월 21일인데, 콜레라는 한 달여 만에 아이티 전체에 짙게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대재앙이 됐다.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로 콜레라가 확산되고 있지만 환자들을 치료할 의료진과 병원 시설, 생활위생에 도움을 줄 화장실과 비누, 시체를 수거할 비닐봉지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외신들은 보도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어 지난 1월의 대지진 때 23만 명이 사망했던 아이티는 다시 죽음의 땅이 되고 있다.

콜레라 사망자들이 묻히고 있는 곳은 지진 사망자들이 묻힌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수도 포르토프랭스 시에 고용돼 시체를 수거하고 묻는 사람들은 죽은 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표할 마음의 여유도 없다.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콜레라 전염이다. 매일 수십 구의 시체를 수거해 묻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은 생명수라도 되듯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리고 시체를 싣는 트럭 안팎에 열심히 소독약을 뿌린다. 사실 이들이 의지할 것은 이 소독약 밖에 없다. 죽은 사람들의 나이와 성별에 무감각해진지는 이미 오래다. 

지난달 25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의 기자가 만난 33세의 안드랄 자스민은 손끝으로 작은 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안에는 출생일이 곧 사망일이 된 여자 아이가 담겨 있었다. 그는 아이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제 아무 느낌도 없다. 사실 이 아이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죽은 아이들을 많이 봤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진 시체 수거는 해가 기울어지자 끝났다. 생전에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시체가 되어 몸을 맞댄 채 놓였고, 불도저가 그 위에 흙을 덮었다.

지난달 24일 <씨엔엔>(CNN)은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관 제조업이 가장 호황을 누리는 사업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얼핏 보면 목관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관은 아이티의 가난을 대변하듯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목관의 경우도 구하기 쉬운 가장 싼 목재로 만들어졌다. 거리에서 관을 만들고 있던 한 제조업자는 사업이 쉬운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관을 만든 지는 7년이 됐다.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작했다. 지금은 이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아서 경쟁이 아주 심하다."

예방과 치료가 어려운 환경

콜레라는 처음 수도 포르토프랭스 북부 아티보나이트 강 인근의 쌀농사를 짓는 주민들 사이에서 발생했지만 감염 경로는 확실치 않다. 미국질병통제소는 콜레라균의 성질이 남아시아의 것과 가장 닮았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콜레라가 풍토병의 하나인 네팔에서 파견돼온 유엔평화유지군에게 의혹의 화살이 꽂혔고 성난 군중이 네팔 평화유지군에게 항의하는 폭력 시위까지 발생했다. 그러나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콜레라가 급속히 확산되고 재앙 수준까지 가게 된 것은 환경적 요인이 크다.

인구 1천만 명에 실업률이 거의 80%에 달하는 아이티는 만성적인 정치적 혼란과 부패는 물론 빈곤, 어린이 납치와 노예 등 온갖 사회적 문제가 만연해 있다. 2년 전에는 빵 대신 진흙으로 만든 과자로 연명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도돼 전 세계를 경악케 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월 대지진이 발생해 23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까지도 인구의 약 10%인 1백만 명의 사람들이 임시 숙소에서 기거하고 있으며 수백만 명이 깨끗한 식수나 화장실 등 기본 위생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 지진 후 10개월 이상이 지났지만 복구를 전적으로 외국의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가난한 나라인지라 전반적인 생활환경은 더 이상 악화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태다.

11월 초에 닥친 허리케인 토마스도 콜레라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허리케인 토마스가 몰고 온 홍수로 4명이 사망했으며 병균이 포함된 오염된 물을 따라 전염병인 콜레라가 확산됐다. 11월 9일쯤 되자 콜레라 사망자는 540명을 넘어섰고 그 후 계속 증가해 25일이 되자 사망자 수는 세 배인 1500명을 넘어섰다.

한때 콜레라가 네팔 유엔평화유지군에 의해 전파됐다는 소문으로 술렁였지만 진원지에 대한 진위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현지에서 일하는 국제 구호단체 사람들의 설명이다. 콜레라는 발병하더라도 생활위생을 강화하고 신속히 치료하면 치료가 가능하고 확산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끗한 물과 화장실 사용이 가능한 위생적 환경이라는 것은 아이티의 지진 난민과 빈민들에게는 말 그대로 먼 나라 얘기다.

11월 8일 <비비씨>(BBC) 기자는 쓰레기로 넘쳐나는 포르토프랭스 외곽 항구 빈민가에 있는 작은 병원을 방문했다. 이미 콜레라가 확산일로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확산을 방지하기에는 모든 면에서 최악인 상황이었다. 병원 앞에는 시체가 담긴 봉지가 놓여 있었다. 이 작은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프란시스코회의 마르첼라 수녀가 말했다.

"봉지 안의 소년은 병원에 왔을 때 심하게 토하고 설사를 했다. 우리 병원에 온 지 6시간 만에 사망했다. 오늘 하루에만 20명의 환자를 치료했는데 그중 6명이 사망했다. 의료 도구가 없어서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콜레라에 걸렸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갑자기 구토와 설사를 하다가 죽는다. 여기 사람들은 깨끗한 물도, 화장실도 없다. 거리가 화장실이다."

그 거리에 있는 유일한 화장실은 마르첼라 수녀가 구호지원금을 받아 지은 것이었다. 콜레라가 오염된 물과 나뒹구는 오물 때문인 것은 모두 알지만 하루아침에 비위생적인 환경을 개선할 길은 없었다. 마르첼라 수녀는 기자에게 콜레라를 막는 길은 기도하는 것뿐이라고 절망적으로 말했다. 

국제 구호단체들은 주민들의 위생환경을 개선해 콜레라 사망자 비율을 낮추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한때 네팔 평화유지군이 콜레라를 옮겼다는 소문을 듣고 흥분한 폭력 시위대들에 의해 방해를 받기도 했다. 구호단체들은 콜레라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수질정화약품과 깨끗한 물을 배급하고 임시화장실을 세우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선거 결과, 정치적 안정으로 이어질까

올해 1월의 대지진에 이어 콜레라로 전국이 다시 혼란에 빠진 가운데 지난 11월 28일에는 대통령, 그리고 상원의원 일부와 하원의원 전체를 뽑는 선거가 치러졌다. 18명의 대선 후보 가운데 12명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아이티 선관위와 선거를 감시했던 국제기구들은 작은 부정 의혹이 있지만 선거를 무효화할 만큼 중대하지는 않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1차 선거 결과는 12월 5일쯤에, 그리고 공식 결과는 20일쯤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아이티의 재건과 콜레라 확산 방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선 다시 정치적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인들이 바뀌어도 금세 생활이 안정되지는 않겠지만 정치적 혼란이 계속된다면 가난한 아이티 주민들은 희망도 없이 단지 하루를 넘기기 위해 계속 죽음과 맞서 싸워야 하는 절망적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아이티#아이티 콜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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