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타결됐다. 그동안 '밀실 퍼주기' 논란을 빚어왔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었다. 결과는? 거의 일방적인 미국의 승리다.
이번 재협상을 통해 한국은 한미FTA의 마지막 성과라고 자부하던 자동차 부문에서 철저하게 실패했다. 기존 협정문을 고쳐가면서까지 미국은 자국의 한국산 자동차 접근을 최대한 막아냈고, 국내 자동차시장은 거의 완벽하게 열어 젖혔다.
물론 '이익의 균형' 차원에서 농업 분야에서 우리쪽 이익을 일부 관철시켰다는 이야기는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동차 부문에 비교할 것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이들은 이대로라면, 한미FTA가 뿌리째 흔들린다고도 했다.
도대체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타결이 됐기에 그런걸까. 미국 현지시간으로 3일 한미 양국이 타결한 한미FTA 재협상 내용은 최종적으로 공식발표되지 않았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협상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고, 이르면 오는 5일 서울과 워싱턴에서 공식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은 4일 (미 현지시간 3일 오후) 이번 협상 합의 내용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미국이 한국 쪽으로부터 얻어낸 자동차 부문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절대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맞춰진 자동차 부문 협상핵심은, 자국내 자동차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산 자동차의 수입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또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 수출을 보다 쉽게, 늘리기 위해 한국의 자동차 관련 세금제도와 환경, 안전 기준 등을 바꾼 것이다. 한 마디로 미국내 자동차 업계의 이익과 노동자의 일자리 확충을 위해 한국의 일방적인 양보를 이끌어낸 것이다. 미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내용들이다.
우선, 이번 협상 막판까지 줄다리기를 벌였던 미국의 2.5% 자동차 관세철폐 문제. 2007년 기존 협정문에는 미국쪽이 3000cc 이하 한국산 승용차에 대해서는 2.5%의 관세를 즉시 철폐하고, 3000cc 초과 승용차에 대해서는 2.5% 관세를 3년내 철폐하기로 돼 있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미 자동차 관세 즉시철폐'를 최대 성과로 자축했었다.
하지만 이번 협상에서는 이 내용을 지우고, 대신 철폐 기간을 5년으로 일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대신 한국은 국내에 수입되는 미 자동차에 대한 8% 관세 즉시 철폐 부분을 약간 수정했다. 4년 동안 4%로 줄이고, 5년째 완전 철폐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관세율이나 기간 등을 볼 때 양국간 형평이 맞지 않는다.
또 미국이 일반 자동차에 비해 10배나 높은 25% 관세를 매겼던 픽업트럭 부문도 미국쪽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기존 협정문에선 협정 발효 후 매년 2.5%씩 10년에 걸쳐 픽업트럭 관세를 철폐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8년 동안 25% 관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9년과 10년째에 단계적으로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자국내 픽업트럭 시장 접근을 사실상 봉쇄한 셈이다.
대신 미국은 자신들이 의욕적으로 진행 중인 전기자동차와 하이브리드차 부문에서도 이익을 가져갔다. 기존 협정문에선 미국산 전기차 등에 매기던 8% 관세를 10년간에 걸쳐 없애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철폐기간을 미국의 입맛에 따라 4년 동안 4%로 줄이고, 5년째 모두 없애기로 했다. 10년에 걸쳐 없애기로 한 것을 5년으로 절반 줄인 것이다.
최대성과 '미 2.5% 관세 즉시철폐', 5년 뒤로... 세이프가드 등 도입
이번 협상에서 논란이 됐던, 자동차에 대한 특별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도 도입된다. 한국 차의 급격한 수출증가로 미국 자동차 업계가 타격을 입게 되면, 미국은 15년 동안(픽업트럭의 경우 20년동안) 특별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협정문에는 없던 내용이다.
이 역시 국내 자동차 수출물량이 월등히 많고, 국내로 들어오는 미국 자동차가 매우 적은 상황에서 적용 대상은 미국에 수출되는 한국 자동차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우리가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점에 비춰보면, 미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장치일 뿐이다.
이와함께, 한국에서 판매되는 미국 차 가운데 연간 판매대수가 2만5000대 미만인 차종은 미국의 안전기준을 통과했을 경우, 곧바로 한국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기존 합의문은 6500대 미만이었다. 기준 자체를 4배 이상 올려놓으면서, 사실상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국내 안전기준과는 상관없이 한국에서 자동차 영업을 할수 있게 됐다.
또 있다. 지난 서울 재협상때 거의 합의했던,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연비 와 배출가스 등 환경규제 역시 이번에 최종 합의했다. 한국은 2007년 합의 이후 강화된 기준에 대해 미국 자동차가 목표의 119%만 달성하면,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는 것. 결국 미국은 국내 환경기준 적용에서도 20% 완환된 기준을 적용받는 '양보'를 이끌어 낸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의 환경, 건강권이 한미FTA로 인해 침해받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이밖에 자동차 관련 새로운 규정을 도입할 경우, 한국은 미국업체가 이를 적용할수 있도록 12개월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기존 세계무역기구(WTO)에선 통상 6개월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2배나 긴 시간이다. 이 역시 미국 자동차 업계에 유리하다.
백일 울산 과학대 교수는 "미국은 자동차 부문에서 철저하게 자국에게 유리한 것을 거의 다 얻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2.5% 관세 즉시철폐 연장 뿐 아니라 전기차나 픽업트럭 등에서 미국 시장은 철저히 닫고, 한국시장은 관세 뿐 아니라 세금, 환경, 안전기준 등 거의 모든 면을 자신들 유리한 쪽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퍼주기 협상 현실로..."미국과 FTA해야할 이유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사실상 자동차 부문에서 거의 '완패'한 국내 협상단은 무엇을 미국 쪽으로부터 얻어냈을까. 4일 현재 우리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번 협상의 구체적인 합의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역시 3일 귀국길에 협상 결과를 묻는 기자들에게 "한미간에 서로 윈-윈(win-win)하는 결과를 도출하자는 인식을 강하게 가졌고,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절충하려 노력했다"면서 "절충이라는 것은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게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우리도 미국으로부터 받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내놓은 협상 타결 후 내놓은 자료에는 "자동차 등에서 제한된 분야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었다.
김 본부장은 "집중적으로 논의된 것이 자동차였으며, 거기에 대해 제가 요구한 것들이 있다"면서 "우리가 요구한 것들에 대한 표현을 일일이 못하니까 '등'자가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발표 때까지 기다려달라"면서 "그 내용에는 농산물도 있고 등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쇠고기 문제에 대해선, 김 본부장은 "쇠고기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통상당국자 등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미국이 당초 자동차 부문에서 현재 합의된 수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요구를 해왔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한 마디로 자동차에서 최대한 방어 해가면서, 농산물 분야에서 이익의 균형을 위해 일부 얻어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 정부는 농산물 분야에서 세이프가드 품목을 일부 확대하는데 합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존 협정문에는 국내 쇠고기 등 20개 품목에서 미국산 농산물의 수입이 크게 증가할 경우, 세이프가드를 발동할수 있게 돼 있다. 이번 협상에서 이같은 농산물 품목 숫자를 좀더 늘려서, 일부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정도의 결과라면, 사실상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기존 협정문에서 우리 정부가 그동안 이득이라고 내세웠던 자동차 비중이 이번에 사실상 거의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부 스스로도 그동안 한미FTA를 두고 농업, 축산업, 금융, 서비스 분야 등에서 전체적으로 손해지만, 자동차에는 큰 이익을 올렸기 때문에 '이익의 균형'을 맞춰왔다고 자평해 왔다.
이 때문에 이번 재협상으로 한미FTA의 이익의 균형은 완전히 허물어졌으며, FTA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해영 국제통상연구소장(한신대교수)은 "이번 재협상은 사실상 자유무역하고는 무관한 미국산 자동차의 강제판매나 다름없는 세일즈 전략을 들이댄 것"이라며 "그토록 자랑하던 한미FTA 성과가 모래알처럼 무너졌다. 이제 미국과 FTA를 해야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한편 정부는 오는 5일 오전 이번 협상 내용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이어 양국 실무진들이 새로운 한미FTA 협정문의 조문화 작업을 올해 안까지 마무리한다. 이어 새해인 2011년초 양국 의회에 비준안을 제출한다. 하지만 민주당 등 야당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등이 '퍼주기, 굴욕협상'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 국회 통과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