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에 대해 국회의원들에게 찬반 의견을 묻는 조사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운하반대교수모임이 지난 8월부터 5차에 걸쳐 실시한 4대강 사업에 대한 찬반 의견 조사에서 172명의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나성린, 이주영 의원 단 두 명의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무응답'한 것.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 '왕의 남자'라 불리는 이재오 특임장관(의원직 유지), 당 대표 안상수 의원, 사무총장 원희룡 의원, 원내대표 김무성 의원도 찬성 의사를 표하지 않았다.
운하반대교수모임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단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통령이 '올인'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거의 모든 의원들이 찬성 입장을 밝히기 꺼려했다는 점은 의외다. 일부 의원들은 조사 자체를 무시했다고 할 수 있지만 4대강 반대 여론을 의식하거나 사업절차상의 문제에 동의하지 않는 의원들이 다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운하반대교수모임은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4대강 찬반 국회의원 결과 발표 및 종교 학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결과를 밝히며, 4대강 예산 처리 과정에서 예상되는 파행적인 국회 운영에 대해 경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자신의 의견 없는 의원, '거수기'라고 부른다"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은 지난 8월 엄창옥 경북대 교수를 실무팀장으로 '4대강사업 찬반조사팀'을 구성하고, 298명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설문조사에 착수했다. 조사팀은 지난 9월 3일 '4대강 사업의 보 건설과 대규모 준설에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라는 질문 한 가지만 전화·이메일·팩스로 의원들에게 전달했고, 이에 무응답 한 의원들에게는 지난 2일까지 5차례 걸쳐 추가설문 실시했다.
이번 한나라당 의원들의 조사결과에 대해 이원영 수원대 교수(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 정책위원장)는 "다섯 차례에 걸친 조사 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왜 계속 전화하느냐'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라며 "국가 주요사업에 자신의 소신을 밝히지 않은 것은 국회의원으로써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만사형통이라는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과 '실세 장관' 이재오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등 대통령의 최측근 다수가 무응답인 것에 놀랐다"라며 "무응답은 사실상 4대강 공사에 찬성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지난 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출신이기도 한 윤 전 장관은 "4대강 사업 추진 절차에 있어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찬성하기 어렵다"라며 "한나라당 내에도 그런 의식이 있는 사람이 다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 나서 예산처리 과정에서 양심에 따라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운하반대교수모임 공동대표)는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60년대 말 3선 개헌을 앞두고 여당 의원들의 항명파동이 있은 후, 여당 의원들은 자신의 의사를 가져본 적이 없다"며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거수기'라고 부른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교수는 이어 "여당 의원은 사람이 아니고 (손을 드는) 기계라서 의견이 없다고 본다"라며 "그래도 여당 내 최소한의 양식이 있는 분들에게 이성적으로 나서 줄 것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는 '4대강 사업 반대'가 당론인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에도 아직까지 개인적으로 찬반 의사를 결정하지 않은 의원들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의 경우 박상천, 박영선, 변재일, 서종표, 최인기 의원 등 5명이 '무응답'했고 나머지 82명의 의원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원영 교수는 "민주당 5명의 의원은 '무응답'하는 것이 자신들의 소신이라는 답을 보내왔다"라고 설명했다.
그밖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의원은 전원이 반대 의사를 표했고 자유선진당은 4명의 의원이, 무소속은 2명이 반대했다. 이로써 298명 국회의원 가운데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의원은 96명, 찬성하는 의원은 2명, 무응답한 의원은 200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예산 강행처리 가담하면 심판한다"
이에 앞서, 운하반대교수모임과 4대 종단(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연대회의는 윤여준 전 장관,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사회원로들과 함께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2011년 4대강 예산 심의 절차의 파행적 운영을 우려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시민사회단체가 4대강 예산 편성을 철회 할 것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무기한 농성을 시작한데 이어 학계와 종교계도 반대 여론에 힘을 싣고 있는 것. 이들은 "4대강 예산을 강행처리할 경우 가담한 의원들을 심판하겠다"고 경고했다. 국회는 6일부터 열리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4대강 예산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운하반대교수모임과 4대 종단 연대회의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권부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금명간 국회에서 다수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4대강 예산을 처리하려 한다"며 "한나라당 의원들 중에도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 그리고 합리성을 갖춘 의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들이 중심을 잡고 앞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들은 또 "4대강 예산 심의 의결 과정이 상식에 바탕을 두지 않고, 국민의 뜻을 저버리는 파행적 과정(강행처리)으로 진행된다면, 이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간여한 모든 이에 대한 심판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상진 신부(4대강사업저지천주교연대 집행위원장)는 "종교인들은 정당 정치에 참여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4대강 공사와 관련해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하느님 뜻에 맞는지 아닌지를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양재성 목사(기독교환경연대 집행위원장)는 "종교인들이 왜 정치에 참견하느냐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종교가 정치에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종교의 영역을 침해하고 파괴하기 때문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양 목사는 "생명의 영역은 종교의 영역이고 생명이 파괴되는 것을 방관하는 것은 종교인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2011년도 4대강 예산을 합의 없이 강행처리하면 (종교인들도)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불복종 운동'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관 스님(불교 4대강사업저지특별대책위 위원장)은 "4대강 사업은 민주주의 근본인 절차적 과정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이고 불교를 말살하려는 정책"이라며 "4대강 공사 유역에 묻혀 있는 수많은 불교 유적이 파괴되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지관 스님은 이어 "어떤 일이 있더라도 4대강 예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최영찬 서울대 교수(운하반대교수모임 공동집행위원장)는 "한나라당 국회에서 4대강 예산을 밀어붙여 통과시킨다고 해도 우리들은 계속 4대강 공사를 저지해 갈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4대강 공사를 계속 밀어붙이면 저항을 막지 못할 정도의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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