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끝자락 남도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꽁꽁언 차가운 날씨마냥 몸도 맘도 얼어 버리기 쉬운 계절이다. 일년 중 가장 바쁜 달 12월은 겸허하게 한 해를 정리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일까? 이리저리 많은 모임 탓에 술자리를 피하기도 예삿일이 아니다.
즐거워야 할 연말, 술로 놀란 가슴은 무엇으로 달래면 좋을까?
입소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있다. 한적한 시골길에 위치한 그곳은 시내에서 30분 이상을 차로 달려야 도착한다. 하지만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분주하니 궁금증은 자꾸만 더해간다.
"3달 전 MBC <전국시대>에서 취재 나온다고 연락 왔는디 내가 거절했지." "우리 집은 입소문 듣고 찾아 온당께."풍만한 채구에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아저씨가 분주한 모습이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장수만 반지락 손칼수집' 김승수 사장은 14년 전 건강악화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김 사장은 상한 몸을 이끌고 이곳에 와서 청정 자연과 함께 바지락, 솔잎 등 자연식을 먹으며 건강을 회복했단다. 그의 건강비결은 이곳의 좋은 음식과 솔잎으로 담근 차, 그리고 솔잎주를 꼽는다. 봄철 새순이 돋아나는 시기 새순을 따서 녹즙과 10대 1로 생수에 섞어 솔즙을 마시면 보약이 따로 없단다.
"칼국수 너 참 반갑구나" 소문 듣고 찾아간 바로 그곳이곳은 외진 곳 같지만 뜨내기 손님보다 입소문을 듣고 맛객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사람이 있다. 서울에서 출발해 해안선을 따라 전국을 돌며 자전거 1만리 여행에 나선 바로 이 사람, 성낙선 기자다. 필자도 소문을 듣고 여러 번 이곳을 오려했으나 오지 못 했고 기사를 보고 이곳에 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의 여행기(
자전거가 드디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에는 장수만에서 맛본 칼국수 맛에 감개무량했노라며 이렇게 전했다.
"음식 단지 안에 바지락이 수북이 쌓여 있다. 바지락부터 맛보는데, 여기에 와서 비로소 바지락의 참 맛을 맛보는 것 같다. 바지락 본래의 맛이 살아 있다. 처음에는 그 바지락이 그 바지락이겠지 생각했는데, 이곳은 그 맛이 좀 더 신선한 걸 느낄 수 있다. 국물 맛이 진국이다." 칼국수의 핵심은 바지락이다. 이곳에 오는 바지락은 여자만인 장등, 낭도, 사도, 나라도 등에서 온다. 여자만은 바다 가운데 여자도(汝自島)라는 섬이 있어 붙은 이름으로 여수·순천·고흥·보성을 포함한 큰 바다를 말한다.
바지락은 백합과에 딸린 조개를 말한다. 3월~5월 초까지가 제철이다. 바지락은 부채 모양의 다양한 색깔을 띠며 주로 얕은 바다의 자갈이 섞인 모래와 갯뻘에서 산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반지락'이라고 불린다.
또한 <동의보감>에 의하면 바지락은 "사나운 열독을 풀어주기 때문에 생강과 초를 섞어 생채로 먹으면 좋고, 주독을 풀고 당뇨병 증세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간 해독과 빈혈 예방에 효능이 좋단다.
'대한민국에서 바지락 제일 많이 주고 맛있는 집'화양면 장수리에 있는 장수만은 칼국수와 전통차가 주 메뉴다. 가게 입구에 걸린 펼침막이 후~우 예사롭지 않다. 입구에는 '대한민국에서 바지락 제일 많이 주고 맛있는 집'이라는 펼침막을 걸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치 인사동 골동품 가게에 온 듯하다. 그곳에는 머구리 수경, 인디안 활과 화살, 옛날 재봉틀, 우체통 등 여기저기 놓여진 소품들은 본인이 사용하거나 지인들로부터 선물을 받아 진열해 놓은 진기한 물품들로 가득하다.
칼국수를 주문하니 잘 익은 갓김치와 배추김치가 놓인다. 2인분씩이 기본으로 가격은 인당 7천 원씩이다. 드뎌 항아리처럼 생긴 옹기그릇에는 반지락 칼국수가 나온다.
"와 양이 장난이 아닌데... 이걸 둘이서 다 먹으라고?""반지락 맛이 넘 쫄깃쫄깃 혀~""살이 여간 탱탱해 잘 여물었어.""후루룩 후루룩~~~"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하얗게 입을 벌리고 있는 바지락을 하나씩 주섬주섬 먹는다. 빈 그릇에는 쌓인 껍질이 수북하다. 연두색 칼국수 면발은 쫄깃함이 톡 끊어지듯 부드럽게 넘어간다. 바지락을 넣어 푹 고은 뽀얀 국물 맛이 담백하다. 정말 국물 맛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문구에 쓰인 말이 빈말이 아니다. 칼국수를 다 먹고 나니 후식으로 나온 생강에 감초를 넣어 푹 달여낸 전통차가 입맛을 돋운다.
장수만 앞에 펼쳐진 여자만의 아름다운 섬 넘어로 여자만의 저녁 노을이 물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