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뜻밖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독감 예방접종이 실시되었을 때 별 생각 없이 노친을 모시고 태안군민체육관을 갔던 것입니다. 말기 폐암, 임파선 암에다가 엉덩이뼈로 전이된 암세포 부위 골절로 인해 일어서지도 못했던 87세 노친이 기적적으로 완쾌되어 병원생활 8개월 만에 퇴원하신 이후 나는 뭔가를 과신했던 것 같습니다.
예방접종 후 몹시 힘들어 하고 숨차 하시는 노친을 보면서, 의사와 상의도 하지 않고 깊은 고려 없이 더뻑 예방주사를 맞혀드린 내 우둔한 소치를 크게 자책하며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적'을 만들었다는 자만심에 빠져 방심을 한 탓이었습니다.
위기감 속에서 다시금 내 나름의 '대체의학'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11월에 예정되었던 세 건의 단체 나들이 참여도 모두 포기하고, 바깥일을 볼 때도 하루 서너 번씩은 집을 들락거리는 생활을 했습니다. 마침내 노친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종전보다 더 건강해지신 상태가 되어 며칠 전에는 김장 일을 거들어주시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나는 실로 오랜만에 출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세 번이나 단체 나들이 참여를 포기한 사실을 잘 아시는 노친이 적극적으로 출타를 권유한 덕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달 29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된 정의구현사제단의 '4대강 사업 중단과 4대강 예산 전액 삭감'을 촉구하는 생명평화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매일 저녁 7시에 같은 장소에서 생명평화미사가 거행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한 번도 참례하지 못하여 노상 무거웠던 죄의식이 말끔히 해소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더욱이 서울에서 생활하는 딸아이와 아들 녀석도 함께 하여 더욱 고맙고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오신 100여 분의 사제들 가운데는 우리 대전교구 신부님들도 계셔서 반갑고 감사한 마음 컸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는 500여 명의 교우들 가운데서 다시 한 번 공의로우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미사 후 낯모르는 자매님 한 분이 내게 와서 인사를 하며 내 노친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말하고, 다시 회복되신 노친 덕분에 내가 서울에 올 수 있었음을 말하니 그 자매님은 "어머, 고마우셔라!"하며 내 노친께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로, 그날의 생명평화미사에는 내 노친도 함께 하신 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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