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 체감온도 영하 17도, 올들어 가장 추운 날입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이 트위터러들을 만나 "사람들이 복지를 누리면서 기대치가 커지고 있지만 나라 형편이 되는 한도 내에서 즐겨야한다"고 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같은 날 저는, 서울 관악구 난곡에 있는 한 지역아동센터에 갔습니다. 지난 8일 통과된 2011년 예산안과 세제개편안을 다시 곱씹었습니다. 한 아이는, 장래 희망을 "수급자"라고 썼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 그 아이가 처한 현실은 과연 어떻다는 것입니까. "복지를 즐긴다"고요? 이 아이에게 복지는 살아남기 위한 가느다란 동아줄일 뿐입니다.
정부의 지역아동센터 운영비 지원예산은 2010년 831억 원이었습니다. 정부는 2011년 예산안에서 939억 원을 편성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에 더해 267억 원 증액을 의결했습니다. 한나라당도 동의했지요. 45% 증액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강행처리된 예산은 997억 원이었습니다. 정부는 전년 대비 20% 올렸으니 그 정도면 됐다는 태도입니다.
직접 가보니 45% 증액의결한 이유가 짐작됐습니다. 지역아동센터 운영비 지원예산이 월 380만 원씩 나오는데, 이것이 센터 운영비의 절반쯤 된답니다. 지원금의 1/4은 아이들에게 직접 쓰여야 해서 나머지로 선생님 1.5명 인건비를 충당하는 데 45% 증액하면 선생님 2명 인건비를 충당할 수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은 저소득층 아이 15명당 선생님 한 분은 계셨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지금은 20명당 1명 꼴인데, 학습부진과 정서불안이 심한 아이들이 1/3 가량 되고 경제문제로 부모가 이혼하는 아이들이 갈수록 많아져,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기 어렵다고 호소했습니다.
끊임없이 사회로부터 배제된다고 느껴온 아이들은, 친해질 만하면 선생님을 자꾸 밀어내고 선생님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는 불안한 심리를 드러낸다고 하네요. 이 때 필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어떤 물건보다, 자신을 믿어주고 아껴주는 사람의 존재가 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귀한 것이지요. 보건복지위에서 증액의결한 액수는, 딱 20:1을 15:1로 바꾸는데 필요한 만큼이었습니다.
끝내 개과천선하지 않는 정부와 한나라당
"나라형편이 되는 한도 내에서 즐겨야 한다"고요? 이번 국회에서 고소득자에게 900억 원 세금 깎아주는 데 끈질기게 반대하며 복지를 할 수 있는 나라형편 만들려고 했던 저로서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올해 정부는 출산을 장려한다면서 근로소득세 납부할 때 다자녀 추가공제액을 200% 늘리는 개정안을 냈습니다. 2자녀는 공제액을 5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3자녀부터는 1인당 10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늘리자는 것입니다. 이 결과로 줄어드는 세금이 한해 900억 원입니다. 액수가 꽤 됩니다.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세법 심의하면서, 저는 줄기차게 이 감세안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우리나라 근로소득자가 1800만 명인데, 그 가운데 43%가 소득세 면세점 이하입니다. 다자녀 추가공제면 누구나 혜택을 받을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실업자는 근로소득이 없으니 아예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800만 명의 근로소득자가 면세점 이하라 세금을 내지 않습니다.
2008년 근로소득 귀속분 기준으로, 과세대상 근로소득(총급여)이 1000만~1200만 원 소득자 1인당 공제금액은 2원입니다. 8000만~1억 원 소득자 1인당 공제금액은 31만 8820원입니다. 이 상태에서 공제액을 200% 늘리면 차이가 두 배로 커져서, 4원 대 63만 7740원이 될 것입니다. 균형이 맞습니까?
이 감면조항 하나로 줄어드는 세금 900억 원이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척 많습니다. 방학중 결식아동 급식 국비지원 2010년분 수준의 285억 원, 영유아 필수예방접종예산 증액요구액 338억 원, 여성장애인 출산지원사업예산 신설 요구액 7억 원, 청소년공부방 지원예산 삭감분 28억 9900만 원, 장애인자녀 학비지원예산 감소분 1억 원, 앞에 쓴 지역아동센터 운영비 지원예산 증액요구안 229억원까지 합해도 888억 원입니다.
예방접종비 외에는 모두 결식아동, 장애인자녀, 저소득층 아이 등 소득 하위 20%를 위한 예산입니다. 멀쩡히 받던 세금 줄여주는 것보다, 그대로 받아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더 쓰는 것이 사회적 형평을 위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보편적 복지는 포퓰리즘이고 부잣집 아이에게 복지혜택 줄 이유가 없다면서 저소득층과 중산층 대상의 복지정책 펼치겠다던 정부와 한나라당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집중되는 복지예산은 없애거나 줄이거나 당초 상임위에서 합의한 것도 무시하거나 극히 일부만 반영했습니다. 대신, 아이 둘 이상 있는 고소득층에게 집중되는 감세는 확실히 늘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도 고소득층 감세는 여전히 밀어붙이고 저소득층 예산은 줄인 것입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아무리 친서민을 말해도, 절대 개과천선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본질입니다. 예산안을 강행처리하더니 이제는 말 하나도 가려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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