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년 <굿모닝 학교>를 넘어라
아내가 쓴 뮤지컬 <굿모닝 학교>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대학로 학전에서 11월 19일부터 12월 26일까지 공연 중이다. 작년 한 해, 아내가 아이를 품은 채 고생하며 쓴 작품의 2010년 버전.
처음 굿모닝 학교가 올해에도 공연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다. 어차피 MB 정부의 교육정책이 달라진 게 없을 터, 뮤지컬이 작년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 달리 아내는 <굿모닝 학교>의 두 번째 버전에 대해 6개월 동안 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아내는 우선 교육환경이 바뀌었음을 지적했다. 비록 똑같은 MB 정부지만 올해 지방선거에서 서울·경기 지역의 곽노현과 김상곤 등 소위 진보적인 교육감이 등장함으로써 일선 학교의 교육조건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상급식으로 불붙은 진보-보수 간 갈등이 학교 현장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또 다른 아내의 고민은 작년에 뮤지컬을 본 학생들의 한결 같은 지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뮤지컬 내용이 전체적으로 무겁다는 학생들의 총평. 그것은 결국 작년 <굿모닝 학교>의 감수성이 너무 80년대식이지 않았느냐는 자체적인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었다. 비록 촛불집회의 영향이라고는 하지만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중학교에 경찰까지 들어와서 진압하는 건 좀 오버가 아니냐는 자아비판.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시 시작한 10년 <굿모닝 학교>. 과연 <굿모닝 학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한결 가볍고 따뜻해진 <굿모닝 학교>뮤지컬 <굿모닝 학교>는 작년과 비교하여 전체적으로 좀 더 가벼워져 있었다. 러닝타임 3시간이 2시간으로 줄은 건 차치하고서라도, 중3에 어울리지 않았던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이 많은 부분 정리되어 있었다. 교실에서의 이야기는 좀 더 밝고 유쾌했으며, 학생들은 가볍고 쾌활했다. 작년보다 더 자주 크게 터지는 관객석의 웃음소리.
올해 뮤지컬이 가벼워졌음은 특히 2막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2막의 내용은 전교 1등을 하던 재단 이사장 딸 민이가 시험지 유출 사건을 계기로 자살을 하자(1막) 이를 계기로 반 친구들이 합심하여 진실을 밝히고 현 교육체제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었는데, 그 방법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민이 죽음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학교에서 시위를 했었던 작년과 달리, 거리로 나가 상황극을 벌이며 좀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주장하는 학생들.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기보다는 각각 선생님과 학생으로 분해 자신의 처지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분명 작년보다 가벼웠고 좀 더 현실적이었다.
또한 이번 <굿모닝 학교>는 작년보다 공교육의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작년에는 사교육에 찌든 학생들을 포용하기는커녕 그들의 투쟁의 공간으로만 존재했던 학교 교실이, 올해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기댈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무능력하고 독하기만 한 공교육의 상징 독사 선생이 운동 실패 이후 모든 걸 포기했던 준혁 선배를 붙잡고 초등학교 4학년 산수부터 가르쳤다는 에피소드는 의미심장하다. 아무리 학교가 지긋지긋하다지만 우리들 모두는 그 속에서도 우리를 진심으로 아끼고 격려해주던 선생님 한 분쯤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청년 백수 준혁 선배의 등장은 향후 <굿모닝 학교>가 그 내용을 확장해 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이렇게 죽어라 공부해봤자 지금의 학생들이 도달할 결론은 결국 청년 백수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올해 <굿모닝 학교>가 교실 내에서 끝을 맺은 것은 상징적이다. 그 장면에는 교실 밖에서 더 큰 세상을 그리며 끝맺음했던 작년과 달리 공교육에서 희망을 보고 싶은 연출진의 간절한 소망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쉬운 <굿모닝 학교>작년보다는 훨씬 정리된 느낌의 <굿모닝 학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은 작년에 이어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다름 아닌 1막과 2막 간의 단절성.
뮤지컬은 1막에서 우리의 공교육을 정말이지 신랄하게 비판한다. 교육을 통해 사람을 키우기는커녕 한 소녀를 자살로 몰아넣는 이 극악한 시스템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본다. 자본과 권력,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의 욕망이 결탁하여 학생들을 착취하는 공교육의 현주소.
문제는 이와 같은 1막의 문제제기를 2막에서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사람이 죽었는데 올해의 상황극은 너무 가볍지 않은가. 작년에는 학생들이 진실규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지만, 이 역시 중학생에 어울리지 않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내는 극을 쓰면서 꽤나 많은 고민을 했다. 심지어 해결방안으로 트위터를 떠올리기도 한 아내. 학생들이 민이의 죽음 이후 자신들의 일상을 트위터에 올리고,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이런 한국 교육의 현실을 떠들게 되면, 서구 콤플렉스가 강한 우리 사회가 다시금 스스로의 현실을 바라보지 않겠냐는 것이다. 물론 이 아이디어는 아이디어로서 머물고 말았지만 그만큼 아내는 절실했다.
고민 끝에 아내가 제안한 상황극. 문제제기에 비해 너무 약하지 않느냐는 나의 핀잔에, 아내는 자기가 이 문제를 풀 수 있었다면 지금 이곳에 있겠느냐며 반문했다. 하기야 아직까지 그 문제가 안 풀리니 이와 같은 뮤지컬이 나온 것일 테고, 우리들은 사교육비에 헉헉대며 궁상을 떨고 있는 것일 테지.
아마 아내는 내년에도 11년 <굿모닝 학교>를 붙들고 똑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그리고 역시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아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위 뮤지컬을 보고 중지를 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 뮤지컬이 26일까지다. 리뷰가 너무 늦었다. 서둘러서 보신 다음에 좀 더 많은 말씀을 해 주시길.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