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012년은 종편 등장으로 방송 미디어 빅뱅 핵심 시기다. 전 언론으로 확산될 게 분명한데 한 가지 걱정은 광고 시장 파이를 어떻게 키우느냐다."
헌재가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을 기각한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 홀가분한(?) 모습으로 방통위 기자실을 찾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털어놓은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동안 누리꾼 입을 막아온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 폐지 계획이 없느냐는 기자 질문에는 별다른 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최 위원장의 '고민' 수준은 방통위 새해 업무 계획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방통위는 1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업무 보고회를 열고 새해 업무 계획을 발표했다.
방통위는 "방송통신이 중심이 되는 스마트시대를 열겠다"며 ▲ 방송통신콘텐츠 시장의 활력 제고 ▲ 와이브로 전국서비스 실현과 현재보다 6배 빠른 차세대 무선망 구축 ▲ 방송통신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출현 기반 조성 ▲ 신규 광고시장 창출과 방송광고 규제 완화 ▲ 사이버공격과 사회교란 유언비어에 대한 대응 강화 등을 내세웠다.
이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건 방송 광고 규제 완화와 유언비어 대응 강화다.
내년 지상파 다채널 방송 실시?... 종편 언론사 반발에 '번복' 해프닝
이날 보고에 앞서 방통위는 15일 오후 기자실에서 언론을 상대로 업무 계획을 사전 브리핑했다. 하지만 내년 지상파 '다채널 방송 서비스(MMS)' 실시 논란 때문에 다음날(16일) 추가 브리핑을 하고 배포 자료 내용도 일부 바꾸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방통위가 15일 브리핑에서 내년부터 MMS를 실시할 계획인 것처럼 발표하자 종합유선방송사업자, 특히 종합편성채널(종편) 사업을 신청한 '조중동' 등 유력 언론사들은 발칵 뒤집혔다. MMS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방송으로 전환할 때 남는 주파수 대역을 활용해 동시에 여러 방송 채널을 전송하는 서비스다.
지상파 1개 채널당 채널을 최대 4개까지 늘릴 수 있어 지상파 방송사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반면 당장 내년 방송을 시작해야 할 종편 사업자들에겐 큰 위협 요소다. 양문석 방통위 상임위원 역시 지난 9월 기자들을 만나 내년 MMS와 지상파 중간광고가 도입되기 때문에 종편 사업 전망이 부정적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에 방통위는 16일 "2012년 말 아날로그 방송 종료를 앞두고 지상파 다채널 방송 서비스 정책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지 당장 내년에 도입하겠다는 건 아니다"라고 수습에 나섰다.
언론 배포 자료 내용도 애초 "(다채널방송서비스 도입) 지상파 다채널방송서비스 도입을 위해 운영주체, 면허방식, 채널구성 등 정책방안과 관련 법제도 정비방안 마련"에서 "(다채널방송서비스 정책 마련) 지상파 다채널방송서비스 정책방안 ※ 운영주체, 면허방식, 채널구성 등 관련 법제도 정비 방안 마련(필요시)"으로 바꿨다.
김준상 방통정책국장은 "MMS는 2002년 월드컵 때도 실험방송을 했을 정도로 오랫동안 논의돼온 문제"라면서 "전송 속도와 화면 깨짐 등 기술적 문제로 중단되기도 했지만 그동안 기술적 진보도 있었고 2012년 말 아날로그 방송 종료를 앞두고 고화질(HD)와 함께 디지털방송의 장점인 다채널 서비스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다만 "당장 내년에 도입된다는 건 아니고 어떤 방식으로 도입할지, 도입 시 매체 간 이해관계 등에 관해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라면서 "많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만 큰 기대나 큰 우려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전체 방송 광고 시장이 한정된 상황에서 자신들의 '먹을거리'에 언론사들이 얼마나 민감한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방통위에서 올해 8조 원 전후로 추정되는 국내 광고시장 규모를 내년 GDP 0.74%, 2015년까지 GDP 1% 수준(약 13조8천억 원 추정)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고민을 반영한 것이다.
방통위는 "종편 보도 채널 등 신규 방송서비스의 성공적인 개시를 위해 광고 규제 등을 완화하겠다"면서 먹는 샘물, 의료기관, 나아가 일부 전문 의약품 등 광고 금지 품목도 기획재정부, 복지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해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또 광고시장 확대를 위해 광고 총량제 도입과 중간광고 확대 계획도 밝혔다.
'광고 총량제'란 시간대와 관계없이 광고 총량만 규제하는 방식으로, 방송사들은 시청률이 낮은 시간대 광고 시간을 줄이는 대신 광고 단가가 높은 프라임 시간대 광고 시간을 더 늘릴 수 있다. 또 현재 케이블TV에만 허용된 중간광고도 지상파 방송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의약품 광고 규제 완화는 당장 의사협회 등 의료계의 이해 관계와 맞물려 있고 광고 총량제, 중간광고가 지상파까지 확대될 경우 시청자의 거부감이 커 실행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허위사실-유언비어 심의 강화" vs. "사회 공포 분위기 조성"
인터넷을 통한 '유언비어', '허위사실' 대응 강화도 큰 논란거리다. 방통위는 "사회 교란 목적으로 인터넷상에 유포되는 명백한 허위사실, 유언비어 정보에 대한 민간 자율심의 강화"하고 "법률 위반 여부 등에 대한 관계 부처의 유권 해석이 필요한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관련기관 간 협조체계를 통해 신속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이진강)는 최근 연평도 포격 관련 일부 게시글이 '허위사실'이라며 잇따라 삭제를 요구해 논란이 됐다. 방통심의위는 지난 2일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포털 사장단 회의에서도 이 건을 언급하고 "사업자의 자정 노력과 자율 규제 활동이 중요하다"며 포털의 '자발적 조치'를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에선 '민간 자율심의 강화'라는 말부터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허위 사실', '유언비어'는 사회학적 개념이지 법적인 개념 아니어서 누구도 판단할 수 없고 민간이 자율 심의할 이유가 없는 사안"이라면서 "정부에서 법적 차단에는 시간이 걸리니까 그동안 방치할 수 없어 민간 기업을 앞세워 인터넷 콘텐츠를 제어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이사는 "허위사실 심의를 할 사회적 권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국가가 생각하는 '허위 사실', '유언비어'에 대한 통제이고 이는 표현의 자유 침해일 뿐"이라면서 "과거 독재정권처럼 사회적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정보통신망이용촉진법' 개정안까지 통과되면 정부의 인터넷 여론 통제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개정안에는 제한적 본인확인제 대상의 시행령 위임, 임시조치(게시글 블라인드) 미이행시 과태료 부과, 서비스 제공자의 불법정보 모니터링 의무화 등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있는 조항들 때문에 여야 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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