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는 노련하게 인터뷰를 진행하고 사회를 봤다. 학자는 머쓱한 듯 웃었지만 현답을 내놓았다. '다시 불꽃을 피우기 위한 신명 프로젝트'라는 책의 부제처럼 <진보집권플랜> 북콘서트는 시종 즐거웠다. 3일 만에 매진된 티켓. 400여 석 규모의 객석이 가득 찼고, 공연장의 공기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진보집권플랜> 3쇄 기념 조국-오연호 북콘서트 열려
27일 오후 8시, 서울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화암홀에서 <진보집권플랜>의 공저자 조국 서울대 교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북콘서트를 열었다.
트위터를 통해 독자들에게 책 3쇄를 찍으면 '북콘서트'를 하겠다 했었다. 장난처럼 재잘대던 얘기였지만 책은 3쇄를 넘어 4쇄까지 찍었고, 저자들은 약속을 지켰다.
<진보집권플랜>은 제목 그대로 2012년 선거에서 진보 세력이 집권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쓴 책이다.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한 내용을 정리한 대담집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출판시장에서, '진보'나 '집권'처럼 '빡센'(?) 제목을 달고 있는 책으로서는 드물게 고무적인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이 책의 흥행은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을 읽기 쉽게 풀어낸 두 저자의 말 실력, 글 실력과 조 교수의 미모(?) 외에도 오 대표의 신명 나는 '트윗질'에 힘입은 바 크다. 오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책을 읽고 느낀 소감이나 격려, 비판 등을 독자와 나누어왔다. 자연히 홍보도 되고 재미있었다.
"다음 쇄에 조국 교수의 브로마이드를 넣으면 판매고가 뛸 것이다", "오연호 대표가 조국 교수보다 잘 생겼다!"는 등 재치 넘치는 트윗들이 리트윗됐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 보니 오 대표의 팬클럽도 결성되기도 했고(회원 수는 3명이라고 한다), "3쇄 찍으면 호프집서 조국 콘서트, 5만 부 팔리면 장충체육관, 10만 부 팔리면 상암운동장"이라는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구경' 아닌 '참여'하는 콘서트, 민주주의와 닮은꼴콘서트는 시민 합창단과 함께 부르는 노래로 문을 열었다. 조 교수는 "변화와 진보는 단지 구경만 해서는 찾아오지 않는다, 시민의 참여가 중요하다"며 시민과 함께하는 공연의 의의를 설명했다. 시민 합창단과 함께 부르는 '그날이 오면'은 의미심장했다.
관객층은 20대, 30대, 40대에 고루 분포됐다. 예상보다 20대가 많았는지 오 대표는 놀란 눈치였다. 대학문화는 죽었지만 뜨거운 가슴팍들에 숨어 있는 진보의 씨앗마저 고사한 것은 아니었다. 오늘의 대학생들은 취업준비에 선배를 잃고 기업자본에 참여할 판을 빼앗겼지만 어떻게든 씨앗을 싹 틔울 마당을 찾아냈다.
법전을 사러 서점에 갔다가 <진보집권플랜>을 샀다는 대학생이 무대에 올라왔다. 조 교수는 그에게 법전을 선물했다. 하이힐을 사려고 모아둔 돈으로 책을 세 권 사서 주변에 나눠줬다는 여성에게는 상품권을 보내주었단다. 오 대표는 "집 사려고 모은 돈으로 책을 샀다는 분이 있는데 어떻게 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했다.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두 저자가 나눈 대담에서는 오 대표의 재치와 노련함, 조 교수의 학문적 식견이 돋보였다. 조 교수는 "냉정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자학을 해서는 안 된다"며 "희망, 낙관"을 강조했다. "암울한 현실이 20대를 88만 원 세대로 만들기는 했지만, 88% 투표하면 세상은 88%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은 청중의 갈채를 이끌어냈다.
민중가수 손병휘가 기타를 치며 노래했고, 두 저자와 같은 동네에 산다는 소설가 공지영 씨가 출연해 우정을 과시했다. 스트라이프 니트스웨터에 어그부츠로 젊은 패션 감각을 뽐낸 공 작가가 "오 대표보다 2년 선배"라는 말에 객석은 자지러졌다. 트위터를 통해 모인 북콘서트 준비위원 30인이 발랄한 율동을 선보이기도 했다.
오 대표는 '백만송이 장미', 조 교수는 '다행이다'를 각각 열창했다. 오 대표는 "어제(26일) 노래방에 가서 이 곡을 리허설해 봤는데 38점이 나왔다"고 웃었다. 조 교수는 "3일 전부터 연습한 거라 제멋대로 부르더라도 이해해 달라"며 무반주로 노래했다. 노래 실력은 38점이라도(물론 그것보다는 훨씬 잘 불렀다) 관객과의 교감만은 100점 만점이었다.
오 대표는 "왕이 되기를 포기한 행복한 영주가 되지 말자, 다시 한 번 불꽃을 피우자"는 조국 교수의 표현을 책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문장으로 꼽았다. 조 교수는 "<진보집권플랜2>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하루빨리 (진보 세력이 집권해서) 그 책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한편 시민참여저널리즘의 허브인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행사답게 공연장 곳곳에서 시민기자들이 취재했다.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수강생들도 눈에 띄었다. 긴장한 표정의 초보 시민기자들은 어눌하지만 참 아름다웠다.
이미 불은 다시 붙은 듯하다. 활활 타올라서 다 태워버리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