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사상의 중심에 윤회가 있고, 서양 사상 중심에 옳고 그름이 있다. 동양 사상은 머무르는 곳 없이 떠돌고, 서양 사상은 뚜렷한 목적 지향적이다. 동양의 사상은 우주를 돌아다니고, 서양 사상은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정의이고, 개인 및 집단의 지향점, 즉 궁극적 목표 또한 정의다. 인간 혼자서 정의라는 단어를 만들어 지구의 질서를 만들고 있다. 그것도 힘센 몇몇이서.
올해 출판계의 화두는 단연 '정의'였고, 그 중심에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있다. 그런데, <정의란 무엇인가>를 얼핏 보면 진지하게 정의에 대해 고심하는 듯하지만, 꼼꼼히 읽어보면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하버드대학 교수이며 지구촌 지성인으로 추앙받는 교수님에게 쓸 표현은 아니지만 말이다.
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 루소, 존 로크, 칸트, 흄, 아리스토텔레스 등 지나간 유명한 사람들의 시선을 빌려 정의를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했을 뿐, 진정 정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한 줄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다. 대학 교수면 학자가 아닌가. 학자란 무엇인가라고 마이클 샌덜에게 묻고 싶게 하는 책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즉, 하나의 관념을 끈질기게 묻는 책들이 어떤 것이 있을까.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버틀란트 러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머릿속을 언뜻 스친다.
E.H.카는 역사란 "지나간 사실과 현실의 끝없는 소통"이라고 정의한다. "역사를 배우지 말고 역사에서 배워라"고, 신영복 교수님은 이를 알기 쉽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현재 역사를 지나간 사실 자체만으로 놓지 않고, 역사를 현실로 끝없이 끌어들인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슬그머니 강감찬과 을지문덕이 사라지고, 현재는 이순신이 지배하고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한 E.H.카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끝없이 현재에 의해 지배받는다"라고 확고하게 말했다.
버틀란트 러셀은 애초부터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답하려 하지 않았다. "철학은 그 문제에 명확한 대답을 얻기 위해 연구되는 학문이어서는 안 된다. 독단적 확신을 약화시켜 우주와의 통합이야말로 정신의 최고선"이라고 주장했다. "독단적 확신의 약화"란 철학이란 무엇인가 명확하게 정의하지 말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버틀란트 러셀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철학이란, 확신하지 않고 끝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자체가 철학인 것이다.
물론, 마이클 샌델도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공리의 행복 극대화를, 어떤 이는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어떤 이는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세 번째 방식을 좋아한다"라고 책 말미에 자신의 소신을 조심스럽게 비친다. 즉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시골에서 올라온 순진한 여학생이, 교수의 강압에 못 이겨 아주 소심하게 답하는 투로 말이다.
그렇다면 정의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서전에는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라 표기했다. 마이클 샌델보다 알아듣기 쉽다. 물론 <정의란 무엇인가> 책의 주 내용은 주류에 눌린 소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인권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게 하여 사고의 풍요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마이클 샌델이 이 책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제목을 잘못 지었다.
"옷을 입는 게 좋냐? 벗는 게 좋냐? 라고 누군가가 물으면, 벗는 게 좋다, 입는 게 좋다. 정할 수 없다. 그러면 아무렇게나 해도 되냐? 그것도 아니다. 목욕탕에 들어갈 때는 벗어야 되며 나오면 입어야 된다." 법륜 스님의 말이다. 정의를 정의한다는 것은 목욕탕이나 밖에서나 모두 옷을 입어야하나 벗어야 하나를 묻는 우문과 같다.
"가장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또 지금하고 있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대문호 톨스토이의 말이다. 역사도 현재에 있고, 철학도 현재에 있다. 정의도 정의되어 있지 않고 현재의 상황에서 수시로 변한다. 공동선이 아니다. 국어대사전에도 풀이했듯이 "개인 간에 있고 사회 구성 간에 있는 도리"다. 개인은 돌아다니고, 사회 구성원은 목적에 따라 이리 모였다 저리 모였다 한다.
현재의 모든 국제적 분쟁부터 개인의 이견대립까지, 모두 독단적 확신에 의해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이나 국가가 정의를 정의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들이다. 역사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끝없이 현재에 의해 지배"받듯이, 철학이 "독단적 확신의 약화" 즉 "오직 모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함으로써 시작되듯이,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지 말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면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확실한 것은 확고한 정의가 존재한다고 믿는 한 평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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