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에 들어갈 캘리그라피를 만들어 디자인회사로 보냈다. 새삼스레 딸아이가 결혼을 한다는 것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예단은 얼마 보내지 못하겠지만 작은 족자두루마기에 사주와 혼서 등을 직접 친필로 적어 빨간 모시보자기에 둘둘 말아서 보낼 생각이다. 20대에 한때 동양자수를 하면서 만들어 놓은 빨간 공단에 수놓고 매듭을 한 은수저집도 깨끗이 손질해 이번에 보낼 것이다.
이미 나와있는 세간이 더 화려하고 좋아 보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흔하고 잘 나와 있는 것보단 세상에 단 하나만 있는, 정성과 소박한 마음이 담긴 것으로 포근히 감싸서 보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다.
딸을 시집보내는 어느 엄마의 넋두리 같은 흔한 대사 하나가 기억난다. "안 갈 때는 원수같더니만 막상 간다고 하니 미운정 고운정 들어 서운하다"고… 그렇게 원수까지는 아니었지만 한 때는 "에구! 이 애물단지야!" 하고 아이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철썩 칠 때가 자주 있었다.
주로 아이가 자신을 다잡지 못하고 상황에 휩쓸려 자기의 심신을 힘들게 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게 오버하거나, 또는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 정직하지 않고 감추거나 하는 경우에 그렇게 대했다. 그리고 최근에도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아이의 언행이 은근히 얄미워지면 그렇게 장난처럼 철썩! 때렸다.
그래도 세상의 모든 엄마는 한결같이 딸자식이 그저 건강하게 잘 살아가기를 바랄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어느 엄마처럼 딸아이가 유학가서 명예와 부와 권력을 가까이 하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엄마가 세상에서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주위의 모든 엄마는 자녀들이 무탈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손수 적은 딸아이 청첩장에 들어 갈 문구... 복 주는 존재로 살길그런 마음에서 아이의 청첩장에 들어갈 글 하나를 캘리그라피 해보았다. 복을 받아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서로에게 복이 되어주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뭔가 받으려고 기대하는 데서 갈등이 생긴다는 것을 나는 많이 경험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것이 한부모 가정이 되는 원인의 하나도 되었기 때문에 딸아이는 받기 보다 주는데서 기쁨을 느끼고 그렇게 사랑의 질그릇을 만들어 가기를 소망한다.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을 치루는 과정이 항상 꽃잎같이 기쁘고 축복스러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당사자들과의 관계, 자매들과의 관계, 모녀와의 관계, 부녀,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 등에서 생기는 일곱무지개 보다 더 다양한 상황들, 그리고 각종 물질적인 절차에서 생기는 부수적인 총천연색빛의 일들이 그 안에 있다.
결국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하나씩 하나씩 해결되어 갈 것이다. 비록 어제는 눈물을 흘렸고 오늘은 다소 웃음을 짓고 하는 상황이 반복되지만 그래도 결국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아이는 새로운 삶의 출발선상에 설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신부의 엄마가 되어 촉촉한 달무리처럼 마음이 젖을 것이다. 내가 숱하게 넘어지며 갔던 그 길을 거울삼아 딸은 크게 다치지 말고 무사히 끝까지 걸어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