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라는 키워드로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파더>를 보자는 제안인 이 글은, 이 영화를 둘러싼 몇 가지 당혹감에서 비롯됐다. 그 당혹감은 크게 작품 내적인 구성들과 작품 외적인 상황들로 양분할 수 있다.
우선 작품 내적인 요소에 대해 말하자면,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부'와 '영구'와의 만남 그 자체부터 사실 조금은 당혹스럽다.
'영구'(심형래)가 뉴욕 마피아의 대부 '돈 카리니'(하비 케이틀)의 아들이라는 설정은 이 영화의 뼈대이자, 이 영화가 웃음을 자아내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 이러한 설정은 영화의 구조 외에도 제작자로서 심형래씨가 '글로벌 휴먼 코미디'라는 야심찬 목표를 내세운 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심씨의 욕망이 고스란히 투사되어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작품 외적인 상황들이다. <디워>(2007년) 개봉 후 평론가들의 가혹한 평가를 받았던 심형래 감독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서슴없이 "평론가를 위한 영화는 만들지 않았다"고 말하며 평론가들과 애써 거리를 두는 눈치다. 그런가 하면, <디워> 개봉 후 '심형래'에 대한 비판 그 자체가 '금기 아닌 금기'였던 기이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을 모두 고려할 때, 작품만 놓고 <라스트 갓파더>를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론은 무릇 작품 내적인 요소들에 관해서만 서술해야 한다는 의심어린 눈초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꾀하고 있는 여러 기법이나 이 영화를 둘러싼 작금의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영화 내외적 상황들을 고루 고려하는 평가가 필요하리라고 난 믿는다.
심형래 감독의 욕망과 애국심, 글로벌시장, 그리고...<라스트 갓파더>를 통해 할리우드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심형래 감독의 전략은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삼은 것 외에도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러한 부분들로 '추신수'라는 이름을 언급한 장면과 '원더걸스'를 등장시킨 장면 등을 꼽을 수 있다.
'영구'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장면이 나간 뒤 그것을 추신수 선수의 스윙에 비유하는 대사가 있다. 스치는 듯 짧은 대사지만 이는 미국인들에게 낯익은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해외 시장에 한국인을 알리고자 하는 제작자로서의 충정을 잘 살필 수 있는 부분이다. 아마도 그러한 충정이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이해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렇게 추신수 선수의 이름을 등장시킨 것에 비해 원더걸스의 등장은 좀 더 비중이 크다. '영구'가 클럽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그룹 원더걸스가 등장한다. 이 역시 추신수라는 이름의 등장과 마찬가지로 아마도 해외 시장에 한국 가요를 알리고자 하는 책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장면에서 원더걸스는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그저 배경으로만 존재했을 뿐이다. 차라리 '노바디' 특유의 안무를 활용해 원더걸스가 '영구'를 지목하는 장면과 '영구'가 특유의 반응을 보이는 장면들을 연달아 배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처럼 애국심과 글로벌시장을 노린 심형래 감독의 두 가지 욕망, 혹은 전략들은 영화에서 소소한 부분이라 치부해도 좋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바로 이 글의 첫 머리에서 말한 '투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투사'의 문제야말로 <라스트 갓파더>의 존재 양식 그 자체이며, 이 영화가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결점이다.
영구의, 영구에 의한, 영구를 위한 영화얼굴이 좀 홧홧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링컨의 연설에 비유해 <라스트 갓파더>를 말하자면… 이 영화는 '영구의, 영구에 의한, 영구를 위한 영화'라 평가할 수 있겠다. 물론, 1980년대 코미디 프로그램의 인기를 기억할 때 슬랩스틱(몸개그)이라는 장르를 선택해 '영구'라는 캐릭터를 부활시킨 심 감독의 선택은 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명한 선택에도 불구하고 심형래 감독은 슬랩스틱이라는 장르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영웅담으로 이 영화를 이끌고 감으로써 결점을 자초한다.
영화에서 '영구'가 인정을 받게 되는 계기는 우연에 기인한다. 그의 바보 같은 행위가 만들어낸 미니스커트, 헤어스타일, 햄버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자, '영구'는 지역주민들은 물론 아버지가 대부를 맡고 있는 마피아 조직 내부에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바로 이처럼 어느 순간 '영구'는 영웅으로 등극하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서사는 영화의 배경인 뉴욕의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슬랩스틱 장르와도 자연스럽게 조화되지 못한다.
이처럼 '영구'가 영웅이 되는 이상한 서사는 '영구'가 뉴욕 마피아의 대부 '돈 카리니'의 아들이라는 설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제작자와 감독 그리고 배우라는 3역을 맡은 심형래씨의 과욕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내가 이 글에서 '투사'가 <라스트 갓파더>의 존재 양식 그 자체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투사'는 "내적인 욕망이 주체의 밖에, 즉 다른 주체에게도 전치되고 위치되는 방어기제"를 일컫는 정신분석학 용어이다. 바로 이러한 방어기제가 3역의 심형래씨에게 작동했던 것은 아닐까. 한국영화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로 제작한 <디워>가 비판에 직면하면서 슬랩스틱 장르로 옮겨가면서도 '부라퀴'에 버금갈 만한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1980년대 코미디에서 유행했던 '영구' 캐릭터는 매우 유용한 존재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영구'라는 캐릭터를 <라스트 갓파더>로 가져오면서 발생한다. 스크린 안팎에서 '제작자'와 '감독' 그리고 '배우'라는 심형래의 3역이 충돌하는 것이다. 즉, 단순히 '영구'라는 캐릭터를 활용하는 데 그친 게 아니라 '영구=심형래=성공'이라는 등식이 성립함으로써 바보 '영구'가 영웅이 되는 해괴한 시나리오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영화의 안팎은 냉철하게 구분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영구'가 영웅으로 그려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감독의 성공이나 흥행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형래 감독은 비평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
이처럼 <라스트 갓파더>에서 '투사'의 문제는 작품 내적으로도 결점을 자초한 셈이지만, 작품 외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심형래 감독이 평단의 평가를 애써 외면한 채 홍보에만 전념하고 있고, 심형래 감독의 팬들도 '투사'가 돼 가고 있다. 전문적인 평가라면 어렵다고 치부하거나, 비판적 평가들을 단순히 할리우드 진출에 방해가 된다는 일부 골수팬들의 논리는 사뭇 위험해 보인다.
자, 여기에서 나는 심형래 감독에게 정중하게 묻고 싶다. '심형래'라는 브랜드 없이 <디워>나 <라스트 갓파더>가 초기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혹은 논란의 중심에 설 수조차 있었을까? 3일, '100만 관객 돌파'라는 소식을 접하며 축하를 보내기에 앞서 흥행과 작품성 사이의 거리에 관한 우려가 먼저 든다.
'개그맨 출신 영화감독(제작자)'라는 이력이 흠은 전혀 아니지만, 또한 그 이름값이 작품에 대한 평가에 어떤 선입견으로 작용해서도 안 된다. 그 이력이 만들어낸 초기 흥행이 허구에 지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상영관으로 들어간 관객의 머릿수가 아닌 영화 관람을 마치고 상영관을 빠져나온 관객의 입에서 나온다.
오늘날 코미디는 심형래 감독이 개그맨으로 분했던 1980년대와 상당히 다른 지점에 와 있다. 대중들이 원하는 '코드'가 바뀌었다는 말이다. <라스트 갓파더>를 보는 동안 상영관에서 접했던 분위기를 전하자면 가장 큰 웃음소리는 10대들의 것으로 추정된다. 개그맨 심형래 식의 장기 즉 슬랩스틱을 접하지 못했던 10대들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안겨줄 수 있겠지만, 이제 30대 이상이 되었을 심형래의 옛날 팬들에게 <라스트 갓파더>의 웃음코드는 너무나 식상한 것이다. 바라건대, 심형래 감독은 입에 쓴 평가들을 달게 들어서 더 좋은 작품을 만드는 발판으로 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