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으뜸 서점이라는 교보문고 광화문점 들머리 벽에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금빛 글씨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이곳에 서서 이 글씨를 흘깃흘깃 쳐다보는 사람들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대부분 고개를 서너 번 끄덕인다. 그들 마음에 이 글씨가 그대로 딱 와 닿는다는 뜻이다.
사람들 마음을 이처럼 사로잡는, 마치 진리처럼 여겨지는 이 짧은 한마디에 안티를 거는 당찬 여자가 있다. 그 여자는 서울이 아니라 전주에 있다. 그 여자는 책에 얽힌 속내를 거침없이 까발린다. 그 여자는 책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독서가 사람을 만든다"고 잘라 말한다. 사람이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책에게 말을 걸면서 희망을 붙든다"고 못 박는다.
독서경영사 오정화가 그 여자다. 그는 그동안 전주에서 스스로 독서토론모임을 만들었다. 그가 살고 있는 전주와 전북 곳곳에도 일반인들이 숱한 독서토론모임을 만들어 스스로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신묘년 토끼해인 올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가 '히죽' 웃게 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책에게 말을 '은근슬쩍' 걸고 있다.
그가 책에게 거는 말은 '껍데기'(구호)가 아니라 '알맹이' 그대로다. 사람이 책을 만드는 것은 이 불안한 세상을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함 아니겠는가. 책이 그냥 사람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 책을 읽는 사람이 책이 입고 있는 겉옷과 속곳을 모두 벗겨내고 알몸을 뜨겁게 품어야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책을 읽고 토론할 때 가장 즐겁다"
"책은 내 삶에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책은 내게 친구이며 위로자이고 스승입니다. 내게는 그랬습니다. 책은 내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심심할 때나 즐거울 때나 항상 내 곁에 있었습니다. 책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수다를 떨어도 거리낌이 없는 오래된 친구 같았습니다." - "책을 열며-나를 있게 한 책, 나에게 스승이 된 책" 몇 토막
전주, 전북 등지에서 독서토론문화를 이끌고 있는 독서경영사 오정화. 그가 숱한 독서모임과 숱한 독서토론을 겪은 직접체험을 징검다리로 놓은 독서토론 길라잡이 <책에게 말을 걸다>(북포스)를 펴냈다. '글 읽는 기쁨, 글 찧는 즐거움'이란 덧글이 붙은 이 책은 불안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과 책을 애인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펼친다.
이 책은 모두 4부에 실린 50여 꼭지에 이르는 글 곳곳에 '책과의 지독한 사랑'이 정말 가슴 찡하도록 살갑게 묻어난다. 제1부 '나는 책을 읽을 때 가장 즐겁다', 제2부 '눈으로 수확한 책을 마음방아로 찧어라', 제3부 '책 찧기는 내 삶을 비추는 나의 거울', 제4부 '책에게 말을 걸자 히죽 웃었다'가 그 사랑앓이를 하고 있는 글들이다.
그뿐 아니다. 50여 꼭지 사이사이에 마치 신묘년 새해 들어 생각지도 않았던 특별보너스를 타는 것처럼 다가오는 일반인들 실제체험도 고스란히 숨겨져 있다. '여기는 독서토론 현장', '나의 독서토론일기', '책이 사람에게 사람이 책에게' 등이 그것. 이 글들을 읽다보면 마치 스스로 독서토론현장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오정화는 2일(일) 낮 전화통화에서 "때로는 어깨를 기대어 쉬고 싶을 때, 삶을 내려놓고 싶을 때 나를 안아주는 하얀 시트의 포근한 소파 같은 존재가 책"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그는 "책은 내게 귀한 스승을 만날 수 있는 통로역할을 해주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바로 책이고, 그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웠다"며, 지독한 책사랑을 스스럼 없이 드러냈다.
정보홍수시대, 책 읽는 까닭은 '생각하는 힘' 기르기 위해서"우리는 정보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때와 장소의 구애 없이 컴퓨터를 열고 검색을 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많은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유능한 것이 아니다. 정보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크게 세 가지다." - "나는 책을 읽을 때 가장 즐겁다" 몇 토막 그렇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책이 아니라 컴퓨터만 있어도 온라인 세상을 마음껏 떠돌며 온갖 정보들을 한꺼번에 품을 수 있다. 내게 꼭 필요한 정보나 지식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지 그 자리에서 내 폴더에 저장시킬 수도 있다. 이 때문일까. 어떤 이는 "책은 이제 낡아빠진 유물이자 무용지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정화는 이에 대해 무어라 되쏠까. 그는 정보홍수시대에 책을 읽고 토론해야 하는 까닭을 세 가지로 점찍는다. 첫째는 내게 필요한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는 능력이다. 둘째는 그 정보와 지식이 참인지 거짓인지 나눌 수 있는 능력이다. 셋째는 그 정보들 가운데 중요한 것과 내게 필요한 것을 가려내 하나로 만들어 그 뜻을 제대로 만들고 쓸 수 있어야 하는 능력이다.
그렇다. 학자들은 이미 2012년이 되면 정보폭발시대가 올 것이라 어림짐작하고 있다. 어찌 보면 지난 2010년부터 2011년인 올해까지 이미 그런 시대가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도 불과 1~2주만 지나면 2~3배 많은 지식과 정보에 마구 허우적거린다.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그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모두 소화시킬 수는 없다.
오정화가 이 책을 낸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는 "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툭 내던진다. 그는 "독서는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접할 수 있는 경제적인 지식도구이기도 하다"라며 "그 유용한 경험과 지혜를 우리는 불과 몇 시간에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매우 생산적이다"고 친절하게 일러준다.
"행복!! 난 무엇을 할 때 행복했던가?""나는 2008년 4월 처음으로 독서토론 모임에 나갔다. 제대로 책을 읽어본지는 10년도 넘었고, 원래 잠이 많은데다 오후에 출근해 밤 12시 가까이 퇴근하는 나로서는 새벽 6시 40분에 책을 읽고 토론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나 자신도 믿지 못했지만 난 지금도 리더스클럽 토요모임에 나가고 있다." - "나의 독서토론 일기-나의 '꿈' 찾아준 독서토론 모임" 몇 토막 일반인들이 독서토론모임에 참석해 느꼈던 실제체험기를 담은 '나의독서토론일기'에 나오는 글이다. 리더스클럽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이 글을 쓴 이동춘은 '이동춘수학세상' 원장이기도 하다. 언뜻 보기에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도 독서토론모임에 나가면서 눈을 떴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눈이 번쩍 띄게 하는 책도 읽었고, 새로운 세상도 품었다.
그는 처음엔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전북도청 8층에 간다. 그는 그곳에서 TV 토크쇼 진행자처럼 말하는 오정화와 토론을 하고 있는 40~50대로 보이는 남녀 30여 명을 만난다. 그들은 틈틈이 대금과 노래, 오카리나 연주를 감상하기도 한다. 그는 말을 아주 잘하는 그들 앞에 자기소개를 하면서 다리가 후들거린다. 속으로 "명색이 수학학원 원장이고 나름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믿고 있던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 나이 사십이었다. "이제 저물어가는 일만 남았다"고 여기고 있던 때였다. 그는 독서토론모임에 나가 자신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꿈을 얘기하고, 비전을 말하고 사랑과 행복을 논하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란다. 과연 나도 할 수 있을까 두렵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행복!! 난 무엇을 할 때 행복했던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 그는 그때부터 리더스 모임에 나가면서 새로운 용기와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는 마침내 "리더스에서 좋은 에너지를 받고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그런 멋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매듭을 짓는다. 그는 지금도 독서토론모임에 나가는 날이 가장 행복하다.
내가 책에게 말을 걸자 책이 '히죽' 웃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독서는 인간에게 자신의 가치를 확인시켜주는 행위다.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고 궂은일도 있으며, 그 속에는 욕망과 희망, 절망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복잡다단한 인간사 속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바로 이것이 독서토론회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 레이첼 제이콥슨이 글은 오정화가 참 좋아하는 문구다. 그는 독서토론모임에 나가서도 참석자들에게 이 문구를 자주 들려준다. 왜? 책읽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누구나 독서토론모임을 만드는 것도, 만들어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독서토론모임을 만들려면 먼저 봉사하는 즐거움을 알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사명감도 있어야 한다.
그뿐 아니다. 내 시간과 정성을 독서토론모임에 기꺼이 바쳐야 한다. 오정화는 "모임을 통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먼저 생각한다면 독서모임을 만들 생각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며 "자신이 만든 모임을 통해 책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독서습관을 가지면서 삶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하는 모습을 볼 때 마치 자기 일처럼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즐거움"이라고 못 박았다.
독서토론 모임을 통해서 삶이, 습관이 바뀌는 사람들을 보는 것 자체가 기쁨이자 수고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곧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때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면 더욱 좋다. 뜻이 같은 사람은 마음이 잘 맞기 때문에 독서토론모임을 꾸리다 어쩔 수 없이 겪는 그 어떤 어려움이나 슬픔이 있어도 쉽게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는가.
오정화는 "독서토론모임을 할 때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모임이 활성화되면 초심을 잃고 흔들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재화와 가치의 교환도 있지만 독서토론모임 운영은 '선물'과 같은 것이다. 운영자에게도 회원에게도 서로에게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는 일"이라고 활짝 웃었다.
책으로 담을 허무는 사람이 되어라"책으로 담을 쌓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보는 책으로 담을 쌓고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며 상대방을 보려하지도 않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책을 더 읽으면 읽을수록 그 담은 점점 더 높아지고 결국은 단절이 되고 맙니다. / 책으로 담을 허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마음의 평수를 넓혀가는 사람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며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 '담을 쌓는 사람, 담을 허는 사람' 몇 토막미국 캘리포니아 코로나 본교 양은순 총장은 "상대방의 집을 방문했을 때 제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곳은 그 사람의 책장이다. 전공 이외에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가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귀띔한다.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은 "이 책은 독서를 통한 소통, 그러한 소통이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작가의 실제적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했다"고 되뇌었다.
송하진 전주시장은 "전주에 '독서토론'이란 새바람을 불러오는 오정화 선생님은 우리 독서토론문화를 이끄는 '독서보석'"이라고 추켜세웠고, <육일약국갑시다>를 펴낸 김성오 메가스터디 엠베스트 대표는 "그는 밥 먹고 숨 쉬듯이 독서를 일상화하여 독서를 하는 요령과 그 책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아우르는 최고의 독서전문가가 되었다"고 못 박았다.
오정화가 펴낸 <책에게 말을 걸다>는 책을 끝까지 읽은 뒤 그저 책장 깊숙이 꽂는 것이 아니다. 그는 책에게 말을 건다. 아무리 아끼고 좋아하는 그 무엇이 있더라도 그저 스치기만 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는 시인 김춘수 '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야 비로소 내게 다가와 꽃이 되듯이 책도 내가 말을 걸어야 책이 내게 다가와 꽃을 피우며, 사랑으로 어우러지기도 하고, 새로운 희망을 활짝 열기도 한다는 것을 조곤조곤 속삭인다.
독서경영사 오정화는 HIS University 전주교육장 대표와 HOME상담교육센터 대표, 군장대학 외래교수를 맡고 있다. 그는 학교에서 상담학을 강의하고, 공무원 교육원, 교육청, 기업체, 기관 및 도서관 등에서 독서토론법과 독서치료에 관한 강의를 통해 일반인은 물론 공무원들에게 독서토론에 따른 이론과 실제를 가르치고 있다.
한때 어린이전문서점 '초방'을 꾸리면서 '동화읽는어른모임'을 이끌기도 하면서 책과 포옹하는 여자 오정화. 그는 직접 독서모임을 꾸리면서 그 모임을 주춧돌로 삼아 다른 독서모임을 만드는 일을 돕는 것은 물론 회원들 스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독서토론코칭" 강의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돈꼴레오네의 문제해결방식(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