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무사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대책위' 대표를 맡고 있는 최석희 민주노동당 민생희망본부 기획실장(왼쪽)이 또다른 피해자 최준혁씨(다음카페 '뜨겁습니다' 대표) 등과 함께 2009년 9월 11일 오후 경기도 과천 국군기무사령부 앞에서 "기무사는 민간인 사찰 이유를 밝히라"고 항의하고 있다.
'기무사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대책위' 대표를 맡고 있는 최석희 민주노동당 민생희망본부 기획실장(왼쪽)이 또다른 피해자 최준혁씨(다음카페 '뜨겁습니다' 대표) 등과 함께 2009년 9월 11일 오후 경기도 과천 국군기무사령부 앞에서 "기무사는 민간인 사찰 이유를 밝히라"고 항의하고 있다. ⓒ 남소연

"형! 이름이 신문에 났네? 기무사 사찰을 받은 것은 알았는데, 어떻게 소송을 제기할 생각을 했어. 그동안 돈 못 벌어서 힘들었을 텐데. 대박 나서 형수님이 좋아하겠네."
"야 술 한 잔 사라. 이명박 정부 아래서 국가배상 판결을 받다니, 대단하다."
"실장님 우리 언제 만나요? 함 만나서 회포 좀 풀어야지요."

오늘(6일) 아침부터 전화기에 불이 났다. 몇 년째 만나지 못한 후배도 전화를 걸어왔고, 그전에는 생판 몰랐던 사람인데, 기무사로부터 함께 사찰을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전화를 걸어온 이들도 있었다. 어린이 그림책 작가인 김향수씨와 재일민족학교에 '어린이 그림책 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는 인터넷 동호회 '뜨겁습니다' 최준혁 전 대표가 그들이다. 이들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렇다. 난 국가기관인 기무사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5일 승소했다. 지난해 4월, 나를 비롯해 기무사로부터 불법 사찰을 당한 시민단체 관계자 15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는(재판장 김인겸) "각 1500만 원, 800만 원 등 14명에게 모두 1억26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국가 상대 소송에서 이겼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

재판부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17조의 규정은 개인의 사생활 활동이 타인으로부터 침해되거나 사생활이 함부로 공개되지 아니한 소극적인 권리는 물론, 오늘날 고도로 정보화된 현대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적극적인 권리까지도 보장하려는 데에 그 취지가 있다"며 "기무사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사생활에 관한 정보를 비밀리에 수집 관리하였다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다, 또 기무사에서 민간인의 신상자료가 필요했더라도 헌법 및 법률의 규정에 따른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이어 "사무실의 위치, 출입시간, 함께 식사하거나 투숙한 인물 등 공개적인 자료로 파악하기 어려운 사생활에 관련한 정보들이 자세하게 기재된 점, 담배를 피우는 등 사생활을 직접 촬영한 점, 기무사 소속 수사관들로 추정되는 촬영자들의 대화가 녹음되어 있고 차량 내부에서 촬영한 영상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점 등에 비추어 미행, 캠코더 촬영 등의 방법으로 사찰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민간인 신분의 민주노동당 당직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한 사찰행위는 기무사의 직무범위를 일탈한 위법한 행위"이며, 이에 "국가는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을 침해하여 원고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기무사의 민간인 불법 사찰은, 기무사 신아무개 대위가 2009년 8월 평택역 광장에서 열린 쌍용차 파업 집회에 참가한 이들을 캠코더로 촬영하다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잡히면서 알려지게 됐다. 참가자들이 빼앗은 신아무개 대위 수첩과 동영상 테이프에는 나를 비롯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사생활이 적혀 있었고, 이 상황은 언론에 보도되면서 많은 파문을 일으켰다.

아직도 사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쌍용자동차 노조 농성 현장에서 활동했던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S씨가 소지했던 수첩의 민간인 사찰 메모와 테이프 등을 공개하고 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쌍용자동차 노조 농성 현장에서 활동했던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S씨가 소지했던 수첩의 민간인 사찰 메모와 테이프 등을 공개하고 있다. ⓒ 남소연

재판에서 이긴 것이야 백번 축하를 받아야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게 축하를 받을 일인가 싶다. 광운대 안중현 학생은 강도 상해죄로 1년이란 시간동안 징역을 살아야 했다. 기무사 신아무개 대위가 폭행을 가하고 카메라를 빼앗은 인물로 안중현 학생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안군이 그런 상황을 맞게 된 후, 그의 어머니는 속병이 나 약을 끼고 살았다.

기무사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 터지고 나서, 한동안 많은 언론사로부터 정신이 없을 정도로 전화를 받았다. 사건에 내용에 대해서는 침착하게 설명을 했지만, '왜 기무사 사찰을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너무 억울해서 그런지, 스타일 구기게 눈물이 나온다.

난 "내 나이가 내일 모레면 50이다, 난 군사독재 시절에 학생운동을 하다가 구속되었을 뿐이고, 그 후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노동운동을 하면서 늘 민중들 속에서 버티며 살아온 것이 무슨 큰 죄라고 미행까지 당해야 하는 거냐"며 눈물을 쏟곤 했다. 최근에도.

지난해 10월인가…. 기륭투쟁 막바지 때, 아는 후배가 찾아 왔다. 김민수(가명)를 만났는데, 아직도 미행을 당하고 있다고 하면서 전화기를 꺼놓고 살고 있단다. 함께 기무사로부터 사찰을 당한 후배가, 아직 그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혼자서 보이지 않는 적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기무사 민간인 사찰이 언론에 폭로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새로 만나게 되었다. 예전에 '안기부가 내 귀에 도청기를 설치했다'고 주장하는 이가 나오는 방송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런 분들이 민주노동당 사무실로 찾아왔다(당시 나는 민주노동당 비상경제상황실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대부분 '당신 문제가 불거졌으니까 야당을 모아서 싸워야 한다'는 취지였다.

사회운동을 하다 조직사건에 연루돼 정신을 놓은 사람도 찾아왔다. 그 분도 형광등 TV등을 통해 국정원에서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자신이 먹는 음식물에 누군가 약물 등을 넣고 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사람은 공교롭게도 민주노동당에서 함께 일하는 이아무개 형과 같은 사건의 피해자였다. 그는 노동자 출신의 훌륭한 일꾼이었는데, 정신을 놓아, 사건이 난 후에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는데도 찾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러나, 변화를 기대하기엔 아직 이르다

 기무사 소속 군인의 사찰 메모(7/20~23)
기무사 소속 군인의 사찰 메모(7/20~23) ⓒ 이정희 의원실

2009년 12월엔 책 <보안사>를 펴낸 재일교포 김병진 선생을 만났다. 명동에서 만나 반주로 소주 4병인가를 나누어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재일교포 유학생으로 공부하다 보안사(기무사의 전신)에 끌려가게 되었고 '자식과 아내를 어떻게 하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보안사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 둘째를 낳고 일본으로 야반도주한 뒤 <보안사>를 펴냈다고 했다.

그날 김병진 선생은 "기무사로 찾아가서 내 청춘을 돌려달라고 하고 싶다, 기무사에게 사과라도 받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찾아가보지 못했다"며 "평생의 소원이 기무사에 가서 큰소리 한번 쳐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선생은 다음날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인지라, 난 그의 그 소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시던 술을 중단하고 명동성당 아래 천주교 단체가 입주한 건물에 들어가서 바로 기자회견문을 작성하고 보도자료를 뿌렸다. 그리고 다음날. 김병진 선생은 기무사 앞에서 꺼이꺼이 울면서 소원을 풀었지만, 기무사는 사과는커녕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는 것으로 대신했다(관련기사 :"기무사가 나한테 무릎 꿇고 사죄해야지...").

기무사로부터 사찰을 당한 김향수 작가(어린이 그림책 작가)와 재일 민족학교에 어린이그림책을 보내는 운동을 하는 백아무개 선생과 최준혁 대표를 비롯한 '뜨겁습니다' 회원들을 만난 것은 행복이었다. 기무사 때문에 괴로운 나날이었지만, 그동안 내 인생에서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기무사 덕에 만나게 되었다.

이번 판결은 가뜩이나 짜증나는 뉴스만 듣고 살아야 했던 나에게는 가뭄 속 단비가 됐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은 왔는데 봄이 온 것 같지가 않다)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민간인 불법사찰을 하다 시위대에 적발된 기무사 신아무개 대위는 현재 소령으로 진급해 잘살고 있다. 그런데 김민수(가명)는 아직도 혼자서 저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또 억울하게 옥살이를 1년이나 한 안중현 학생, 그리고 피행망상으로 고생하고 있는 국가권력 피해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것이, 주변 지인들에게 축하를 받고도 선뜻 '고맙다'고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들이다. 아무튼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이며, 이번 소송을 대리해준 이원구 변호사 님 등에 감사드린다.


#기무사#민간인사찰#불법사찰#민간인불법사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