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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에서 강원랜드의 전기, 난방 등을 책임지는 것은 차장훈 지부장과 같은 시설관리 하청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지하에 있는 이들은 손님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지하에서 강원랜드의 전기, 난방 등을 책임지는 것은 차장훈 지부장과 같은 시설관리 하청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지하에 있는 이들은 손님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 노동세상

(주)강원랜드에서 전기시설관리 일을 하는 차장훈(46) 씨를 만난 건 지난해 12월 8일, 그가 해고를 당하고 두 시간 후였다. 이날 아침 그는 작업복을 일부러 깨끗이 다려 입고 집을 나섰다. 20여 일의 파업을 정리하고 오랜만에 걷는 출근길이었다.

전날 저녁 강원랜드 시설팀장은 "현장에 다 얘기해놨으니 걱정 말고 출근하라"고 했다. 그러나 출근부에는 그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본사로부터 근로계약 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현장소장(하청업체 소장)은 말했다. 서로 책임을 미루는 그들의 말을 듣고 차씨는 다시 투쟁 조끼를 걸쳤다. 그 아래 잘 다린 작업복은 풀이 죽었다.

 강원랜드(하이원리조트) 앞에서 1인시위 중인 김동혁 강원랜드협력업체노조 위원장.
강원랜드(하이원리조트) 앞에서 1인시위 중인 김동혁 강원랜드협력업체노조 위원장. ⓒ 노동세상
강원랜드에 있는 1300여 명의 하청노동자들은 1,2년마다 계약해지를 당한다. 원청인 강원랜드가 하청업체를 바꿀 때 마다 벌어지는 일이다.

차씨도 입사 6년 동안 근로계약서를 9번씩 쓰며 해고와 재계약을 반복해왔다. 재계약의 기준을 모르기에 노동자들은 눈치껏 비굴해져야 했다.

월급은 오르지 않았고 어렵게 합의한 후생복리 혜택은 업체가 바뀌면 도루묵이 되었다. 지난 3년간 임금인상액은 1만 원이었다. 신규 업체는 부식비를 1만 원 깎았다.

지난 12월 차씨를 포함한 전기시설관리 하청업체 (주)동우유니온 소속 노동자 94명이 11월 30일자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것도 그런 연유였다. 이에 강원랜드협력업체노조(위원장 김동혁)는 직접고용 및 실질임금 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했다. 강원랜드 측은 파업을 푸는 조건으로 전원 고용승계를 약속했다.

그 결과 강원랜드와 하청업체의 근무 원칙 계약서라고 볼 수 있는 '강원랜드시설관리 및 청소위탁 과업지시서'에 '전원 고용승계' 문구가 명시됐다. 노조 설립 4년여 만에 얻어낸 성과였다. 그러나 약속은 너무 쉽게 깨졌다. 차씨만 계약거부를 당하리라고는 이날 아침까지 아무도 몰랐다.

노조 측은 초창기부터 크고 작은 투쟁을 이끌어왔으며 지금도 기능인지부(시설관리) 지부장을 맡고 있는 차씨를 쫓아내려는 조처라고 의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하청업체가 과업지시서를 위반한 셈이다. 그건 계약해지 사유까지 되는 문제다. 그럼에도 강원랜드가 이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건 이를 공모한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며 강원랜드의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강원랜드협력업체노동조합. 왼쪽부터 차장훈 기능인지부장, 김봉녀 조합원, 김순애 이조케터링지부장, 김동혁 위원장.
강원랜드협력업체노동조합. 왼쪽부터 차장훈 기능인지부장, 김봉녀 조합원, 김순애 이조케터링지부장, 김동혁 위원장. ⓒ 노동세상


흑과 백의 세계, 강원랜드

지난 2004년 차씨는 강원랜드 노무직군으로 입사했다. 본사 직원이 직접 면접을 봤다. 정기적으로 본사가 총괄하는 능력평가시험도 치렀고 과제물도 제출했다. 자격증도 땄다. 당연히 정직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소속이 하청업체임을 알게 된 건 2006년이었다. 그래도 같은 직원이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설날을 맞아 정규직들이 선물보따리를 한 아름 안고도 15만 원 짜리 점퍼를 취향대로 골라갈 때 비정규직은 1만 2천 원짜리 참치캔 한 상자를 받았다. 그마저 시설관리팀장이 팀 판공비로 사준 것이었다. 식당에서 정규직은 사원증을 인식기에 찍고 밥을 받았다. 비정규직은 일용직들이 함바집에서 하듯 밥표를 내고 밥을 받았다. 현장에서 정규직은 계절에 따라 질 좋은 작업복을 받았다. 비정규직은 오래된 봄, 겨울 작업복을 계절에 상관없이 입어야 했다. 비정규직에겐 휴가도 없었다.

지난 2007년 내내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겨우 하계휴가가 3일 생겼다. 출퇴근 버스도 마음대로 탈 수 없었다. "정규직은 어디에 있든 손만 들면 버스가 서요. 비정규직은 눈치 봐서 그 뒤에 서 있어야 해요. 따로 있으면 안 태워주거든요. 한 번은 저만 있으니까 차가 그냥 지나가버리는 거예요. 항의를 하니까 '당신은 보험도 안 들어 있고, 태워줄 의무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론 정규직이 없으면 안심이 안 되는 거예요. 그 때 뼈저리게 느꼈어요. 우리가 하청에서 빌어먹든 어떻든 이런 노예 취급만큼은 거부해야겠다고···."

차씨는 3교대로 하루 10시간을 일하면서 월 135만 원을 받았다. 성과급은 없다. 지난해 정규직은 성과급으로만 2천만 원을 받았다. 비정규직의 1년 치 연봉에 달하는 액수다.

차씨만이 아니다. 객실을 청소하고, 시설을 관리하고, 음식을 만들고, 도로를 정비하는 1300여 명 비정규직은 모두 서럽다. 식당에서 일하는 조리보조직 김봉녀(50)씨와 건물 내외부를 청소하는 일반관리직 이광재(55)씨 부부는 원래 농사를 지었다. 아이 둘이 동시에 대학에 진학하면서 봉녀씨가 먼저 입사했다.

매일 아침 유일한 정직원인 20대 영양사는 50대 아주머니들을 내려다보며 조회를 했다. 한 번은 사정이 생겨 월차를 조절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자, "여사님, 월차는 정해진 대로만 쓰시라고요"라는 앙칼진 거절만 돌아왔다.

늘 업무시간보다 한두 시간씩 더 일했으나 수당은 이상하게 적었다. 그러던 중 하청업체가 법정수당을 떼먹은 것이 발각되었다. 노동자들이 따져서 수당은 받아냈지만 강원랜드는 사과도, 재발 방지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건 하청업체의 소관이라고 했다.

광재씨는 매일 트럭 뒤편에 짐짝처럼 실려 나가서 유지보수가 필요한 곳에 내려진다. 눈이 오면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린다. 현장소장은 "뒤에 오는 차가 위험하니" 손으로 염화칼슘을 뿌리라고 했다. 일을 나간 첫날은 곤혹스러웠다. 장갑은커녕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다음 날은 급한 대로 부엌의 고무장갑을 챙겨갔고, 셋째 날부터는 직접 목장갑을 사서 꼈다. 작업복은 선임들이 입은 낡은 것을 물려받았다. 피복비는 원청에서 지급될 테지만,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하청업체밖에 모른다.

그와 동료들은 구내식당조차 이용하지 못한다. 강원랜드 측은 바깥 도로에서 일하며 흙과 먼지를 묻힌 그들이 로비를 더럽히길 바라지 않았다. 난방시설이 없는 가건물에서 먹는 도시락은 늘 차게 식어 있다.

봉녀씨가 종일 쉼 없이 퍼 담는 뜨거운 밥을 정작 남편은 받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추운 데서 일하니까 밥만은 따뜻하게 먹었으면 좋겠는데…. 싸서 갖다 주려고 해도 허락을 안 해줘요."

그렇게 일하는 두 사람은 가까스로 월 300만 원을 번다. 그나마 큰 하청업체라면 노조 지부도 있고 협의도 하는 편이다. 소규모 하청업체에서는 임금명세서마저 안 주는 경우도 있다. 제반 경비나 법정수당을 착복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김 위원장이 말했다.

 강원랜드에서는 수백만 원 짜리 불꽃쇼가 빈번히 열린다.  하청노동자들의 몇 달치 월급이다.
강원랜드에서는 수백만 원 짜리 불꽃쇼가 빈번히 열린다. 하청노동자들의 몇 달치 월급이다. ⓒ 강원랜드


12월 10일 긴급 조합원 총회와 1인 시위를 하기로 한 김 위원장, 차씨와 함께 강원랜드로 향했다. 기자라고 밝혔음에도 경비보안직원은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협력업체노조 방문자는 특별한 사유 없으면 방문증 발급하지 말고 통제하고 발급 시 인솔자는 강원랜드 직원만 할 수 있다"는 지침이 내려진 탓이다. 정규직 노조 부위원장이 나서서 총무팀과 오래도록 승강이를 벌인 끝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는지 주방장들이 커다란 과자 집을 만들고 있는 복도를 지나 지하로 내려갔다. 어두운 지하 공간에서 보일러 등 각종 기계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잿빛 작업복을 입은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모두 비정규직이다. 24시간 내내 돌아가는 카지노장의 화려한 불빛과 객실의 따뜻함은 그들로 지탱되고 있었다.

지상 식당에 들렀다. 이동숙(59) 씨가 거칠고 쪼글쪼글해진 손을 내밀어 보였다.

"10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일을 다 마쳐야 교대할 수 있으니까 2시간은 늘 더 일해요. 매일 열몇 시간을 물을 만지다 보니까 손이 요래 됐어. 일 하는 거 많이 힘들죠. 오늘도 아들이 엄마 그만두면 안 되냐고 했는데…. 그래도 내가 일 해야 해. 우리 아저씨가 아파요. 또 우리가 맏이라 어른 모시제…. 내가 일 안 하면 생활을 못 해요. 일하는 만큼 돈을 줬음 좋겠어."

오후 3시, 불 꺼진 식당은 썰렁했는데 아주머니들의 위생복은 유난히 성기고 얇았다. 차씨를 본 식당 아주머니들 몇몇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모였다.

"벌써 소문이 돌아요. 우리같이 말 많은 사람도 자른다고...." 차 씨는 담담하게 그들을 다독였다. "소문은 원래 별 얘기가 다 나요. 그렇게 당할 거면 노동조합 뭐 하러 가입했어."
그만두라면 그만둬버리겠다고 분해하는 한 아주머니에게 그는 단호히 말했다. "왜 그만둬요, 싸워야지. 강원랜드, 우리 광산쟁이들이 만들었는데."

막장에서 나와 또 막장으로

그의 말대로 강원랜드는 '광산쟁이'들로 인해 태어났다. 강원랜드 설립의 기초가 된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폐특법)을 제정한 1995년 3·3 합의를 지역주민들은 '3·3 투쟁'이라고 부른다. 1989년 정부가 석탄감산정책을 추진하면서 광산을 폐쇄하자 강원탄광지역 주민들이 대체산업 유치를 요구하며 수년간 주민연대운동을 벌인 성과였다.

2000년 강원랜드는 정선군 고한읍에 최초의 내국인 전용 카지노를 열었고, 이후 골프장, 스키장, 콘도 등 꾸준히 사업을 확장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1조 2천억 원으로, 10년 전(910억)에 비해 10배 늘어난 액수다.

이충기 경희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강원랜드가 2009년 강원지역에 발생시킨 생산파급효과는 1조 8183억 원이고, 카지노부문은 강원지역산업에서 두 번째로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새 강원랜드는 폐광지역의 전부가 되었다.

그러나 그만큼 지역에서 순기능을 발휘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강원랜드는 설립취지상 지역주민, 탄광노동자를 우선 고용할 의무를 가진다. 강원랜드 측은 전체 직원 398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지역주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거의 하청노동자라는 데 있다. 강원랜드 측은 딜러나 사무직 등 정규직 채용 조건으로 경력직, 전문기술 등을 걸었다. "과거 스키장을 만들었을 땐 주차관리 아르바이트생조차 경력직을 뽑았다. 지역 주민 중에 스키장 경력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한 주민은 비판했다.

결국 타지에서 온 젊은 고학력자들이 주로 정규직으로 들어갔고, 지역주민들은 하청노동자 신세가 됐다. 공장 등 별다른 생산기반이 없는 지역인 만큼 각 가정은 가장의 월급에 크게 의존한다. 하청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130만~150만 원 선이다. 강원랜드의 풍요가 지역 주민들의 집까지 전파되지 않는 이유다.

 정선, 고한 곳곳에는 강원랜드(하이원리조트) 비정규직 채용공고가 붙어 있다.
정선, 고한 곳곳에는 강원랜드(하이원리조트) 비정규직 채용공고가 붙어 있다. ⓒ 노동세상


노조 측은 강원랜드가 하청업체를 쓰지 않아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 업무 지시도 강원랜드 총무과가 내리는 이상, 업무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시설관리 하청업체가 시설관리에 필요한 기자재를 가져오거나 전문기술을 전수하는 것도 아닙니다. 현장소장 한 명만 파견할 뿐입니다. 심지어 사무실 행정업무 인력까지 기존 근무자 중에서 차출해 씁니다. 그런데도 1년에 36억을 들여 계약을 하는 겁니다. 여기서 업체가 가져가는 이익금 10%가 무려 7억입니다. 그 돈이면 시설관리 노동자 93명에게 한 해 8백만 원을 더 지급하거나, 신규 노동자 150명을 월 2백만 원 주고 추가 고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안 하고 지역주민들을 착취한단 말입니까?"

강원랜드를 향한 지역 주민들의 비판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강원, 정선, 사북지역살리기 주민위원회(위원장 김진복)는 지난해 11월 성명서를 통해 "강원랜드가 지역과 경쟁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이고 신규콘도 등을 건립하면서 지역의 소규모 장비대여점, 숙박업소 등은 고사 위기에 직면해 있다.

또한 지역주민 참여정책의 일환으로 실시한 스키장 임대사업에서도 소송까지 해 가며 지역주민들을 퇴출시키고 있다. 강원랜드에 납품하는 지역주민들은 까다로운 납품조건과 터무니없는 가격에 절망하고 있다. 대부분 지역주민인 협력업체 직원들의 고용안정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항의했다. 지역주민을 위해 설립한 기업이 지역주민들을 쥐어짜 존립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탄 캘 땐 사람 대접이라도 받았지"

 강원랜드(하이원리조트) 앞에서 1인시위중인 하청노동자들.
강원랜드(하이원리조트) 앞에서 1인시위중인 하청노동자들. ⓒ 노동세상


바깥에 눈이 슬프게도 내리고 있노라고, 지나가던 조합원이 말했다. 가랑눈이었다. 강원랜드 로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김 위원장의 삭발한 민머리 위에도, 피켓 위에도 눈이 내려앉았다. 김 위원장은 동원탄좌 출신이다. 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강원랜드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게 됐다. "차라리 탄 캐고 살 때는 배짱도 편하고 애들 학자금도 다 나오고 산업전사라고 당당하고 용기 있게 살았었는데..." 그 옆에 차씨가 섰다.

지난 2007년에도 새로운 하청업체가 들어오면서 노동자 86명 중 31명을 해고했고, 당시 위원장이었던 그는 단식투쟁으로 맞섰다. 그러나 법원은 재계약에 관한 결정은 업체의 권한이라며 하청업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해고를 철회하진 못했다.

그래도 노조는 다시 총파업을 준비하기로 했다. '하청노동자'인 한 이러한 반복은 계속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현장 미팅 하면서 결의가 모아지는 상태다. 강원랜드가 약속을 이행할 때까지 싸우겠다"며 이들은 단호히 말했다. 눈은 서글프도록 하얗게 내렸지만, '직접고용쟁취'라는 검은 글자들을 지우지는 못했다.

덧붙이는 글 | 지금도 차장훈 지부장은 복직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사측은 일방적인 협상거부와 약속위반에 대해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노조는 직접고용과 단체협상을 요구하며 15일 3차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강원랜드#하이원리조트#비정규직#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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