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에 자신을 공대생이라고 밝힌 한 학생이 상담글을 올렸다. 원하는 대학원에 합격해 진학을 앞두고 있는데, 한자자격증이 없어 졸업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것이었다. 고려대는 2004년 입학생부터 졸업 자격 요건의 하나로 공인한자 2급 이상의 자격증이나,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한자이해능력인증시험 3급 이상(60점 이상)을 취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졸업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한자 실력이 필요하지 않은 학생들까지도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자격증을 따거나, 학교인증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필수졸업요건 한자시험, 왜 따로 돈 내야 하나상황이 이렇다 보니 졸업시즌이 되면 상대적으로 '쉬운' 교내 시험에 신청자가 몰린다. 고려대는 교내시험이 있는 주에 5일 동안 자체적으로 특강을 개설한다. 한자실력 향상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졸업이 급한 학생들이 수강생의 대부분이다 보니, 강의도 '맞춤형 족집게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교내시험에 응시하거나 특강을 들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 현재 고려대에서 진행중인 한자이해능력인증시험과 시험대비특강은 응시료, 수강료로 각각 1만 원을 받는다. 시험 접수는 온라인 입금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특강은 현장에서 현금 결제로만 신청할 수 있다.
시험과 특강을 신청한 경제학과 4학년 이지선(26)씨는 "졸업 때문에 학교에서 정해준 대로 하긴 하지만, 응시료를 받는 데는 문제가 있다. 특강료는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현금으로만 접수 가능한 이유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씨의 말에 따르면, 1월에 실시되는 교내한자시험 응시인원은 1200명에 달한다.
고려대 관계자는 응시료 수익의 사용내역을 묻는 질문에 "응시료의 상당수가 출제비, 감독비, 채점비 등 인건비에 쓰인다. 응시료를 학교가 부담하려면 교직원을 더 채용해야 하는데, 상시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더 채용할 수가 없다"고 답했다.
숙명여대의 경우 작년까지 MATE 영어졸업자격시험이 필수 졸업 요건이었다. MATE(Multimedia Assisted Test of English)는 숙명여대 자체에서 개발한 영어시험으로, 응시료가 말하기 시험 7만원(testB의 경우 5만 원), 쓰기 시험 4만 원이다. 재학생에 한 해 1회까지는 무료로 제공했고, 이후부터는 9만 원에서 11만 원에 달하는 응시료를 내야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카드 결제는 불가능하며, 오직 계좌입금을 통해서만 신청할 수 있다.
이 제도는 학생들의 반발로 2010년 3월부터 토익, 토플 등 공인 영어 성적표로 대체가능하도록 변경됐다. 언론정보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김나연(25)씨는 "학생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는 제도다. 외부에서 인정되는 것도 아닌데 비싸기만 하고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 최근 제도가 바뀌어서 그나마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명지대는 모의토익 운영비 전액 학교 부담다른 대학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최근 대부분의 대학이 경쟁력 확보를 명분으로 공인영어성적제출을 졸업필수요건으로 두고 있다. 이중 몇몇 대학에서 교내에서만 인정되는 자체시험을 운영하고 있다. 한양대의 경우 졸업인증용 '한양토익'을 실시하고 있고, 광운대, 동국대, 명지대에서도 교내에서만 인정되는 모의토익을 운영하고 있다. 명지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5000원에서 1만 원에 달하는 응시료를 내야한다. 명지대는 모의토익에 요구되는 모든 비용을 학교에서 충당하고 있다.
진철현 명지대 총학생회장은 "학교에서 졸업필수요건으로 영어점수 제출을 요구하는 만큼 학교 측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의 토익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필요로하는 자격증과 관련된 교양과목을 증설해 해당 과목을 수강하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생들은 이미 졸업요건 외에도 취업, 대학원 진학 등을 위해 영어성적, 컴퓨터자격증, 전공관련 자격증, 제2외국어 성적과 같은 다양한 '스펙'을 요구받고 있다. 이는 등록금 외 추가비용 지출이 대량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진선 등록금넷 간사(참여연대)는 "대학들이 값비싼 원서비 등 학생들을 이용한 돈벌이를 한 지는 오래됐다"고 말했다. 이어 "졸업조건으로 논문을 쓰는 대신 기업에서 요구하는 대로 자격증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며 "학생들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수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