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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물의 범람 도로가의 고목도 물에 잠겼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의 모습. 강과 도로의 경계선이 없어져 버렸다.
▲ 눈 물의 범람 도로가의 고목도 물에 잠겼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의 모습. 강과 도로의 경계선이 없어져 버렸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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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곳곳이 대자연의 분노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호주에서는 백 수십 년 만의 대홍수로 2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집을 잃었으며 독일과 프랑스를 합한 면적 만큼의 땅이 침수 되었단다. 그 와중에서도 13살 짜리 어린 아이가 동생을 먼저 구하고 자신은 물살에 휩쓸려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되어 시들어 버렸다는 안타깝고 애처로운 소식도 들린다.

지구촌의 마지막 산소탱크인 아마존 유역의 브라질에서도 1967년 산사태 때 보다 더 큰 희생자를 낸 집중호우가 쏟아져 현재 공식 집계 510명이 생목숨을 잃었다. 환경전문가들은 호주와 브라질 등의 대재앙은 이미 예견된 전철을 밟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즉, 무분별한 핵실험과 이제는 치유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에 이른 인간에 의한 환경파괴의 후과로 나타나고 있는, 칠레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낮아져 생긴 이상해류에 기인한 기상이변, 즉 라니냐 현상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그 반대의 징후가 엘리뇨 현상이다. 만년 빙하지역 북극이 녹아 내리고, 올 겨울엔 그 지역의 맹추위가 남하하면서 유럽대륙 거의 전부를 상당기간 냉동고로 만들어 버렸다. 상대적으로 비교적 눈이 적게 오는 독일과 프랑스도 대자연의 분노에서 비껴갈 수 없었다. 거의 모든 교통은 마비되었고, 곳곳에서 교통사고로 애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독일에서도 초유의 눈폭풍이 그 명을 다하는가 싶더니 쌓였던 엄청난 눈이 급작스런 온도상승으로 한꺼번에 녹으면서 증발하거나 땅 속으로 스며들 여유도 없이 대부분의 '눈 물'이 주요 강들로 유입, 범람하면서 강 유역 주민들의 집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눈 물'이 독일 서민들의 '눈물'로 바뀐 것이다.

나그네가 살고 있는 마인강변 유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나그네와 똥가리, 엄지엄마가 올망졸망 살았고, 현재 늙은 기러기아빠 혼자서 홀아비 아닌 홀아비로 살아가고 있는, 아주 작은 텃밭 베란다가 있는 보금자리는 독일에서는 드물게 고지대에 속한 곳이라 큰 물 피해는 없다. 15일 나그네는 오랜만에 똥가리와 함께 거닐었던 추억의 강가에 늦은 오후 어슬렁거리며 나가 보았다. 아, 그런데 곳곳에 '강물 범람지역, 접근금지!' 라는 경고 푯말이 나그네의 발길을 멈칫거리게 했다.

똥가리와 엄지엄마의 추억의 그 길도 물에 잠기고

눈 물의 범람 범람군이 빠져나간 후 그 폐잔병들을 소탕하고 있는 인간군. 거리의 모자상이 거대한 물줄기를 지켜보고 있다.
▲ 눈 물의 범람 범람군이 빠져나간 후 그 폐잔병들을 소탕하고 있는 인간군. 거리의 모자상이 거대한 물줄기를 지켜보고 있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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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물의 범람 큰 물이 빠져나간 후 재차 범람군이 습격해 맨홀로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맨홀의 틈새를 비닐로 봉해 놓았다.
▲ 눈 물의 범람 큰 물이 빠져나간 후 재차 범람군이 습격해 맨홀로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맨홀의 틈새를 비닐로 봉해 놓았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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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에도 불구하고 어릴적 개구쟁이 시절의 탐구심(?)이 발동한 나그네는 샛길을 통해 강변도로까지 접근해 보았다. 사실 경고는 그렇게 해 놓았지만, 주변을 살펴보니 범람했던 큰 물들은 이미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여서 쓰나미 같은 급작스런 위험은 거의 없어 보였다. 큰 물들은 빠졌지만 그 생채기들은 군데군데 남아 있어서 유역 주민들을 긴장케 했던 순간들도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직도 똥가리와 함께 롤러스케이트를 탔던 강변도로의 일부는 미쳐 빠지지 못한 큰 물의 패잔병들이 점령하고 있어서 나그네의 진입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강변의 관상용 관목들은 범람한 큰 물이 들고 나갈 때 걸러진 온갖 산업쓰레기들로 치장한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었고, 도로 한가운데에 적당한 간격으로 설치된 맨홀 뚜껑엔 범람한 물이 맨홀로 스며들지 않도록 비닐로 단단히 단도리를 해 놓았다. 맨홀로 스며든 큰 물이 사통팔달로 뚫린 하수구를 통해 주택 밀집지역 한가운데로 유입되어서 또 한 번 범람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토요일 오후이기도 하거니와 한동안 서슬이 시퍼렇던 맹추위가 꺾인 포근한 날씨라 평상시 같으면 깨복쟁이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와 산책객들로 북적거릴 강변가엔 멋 모르고 멀리서 온 몇몇 방문자만이 영문을 몰라 얼쩡거리고 있었다. 최근에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았으니 멀리 도시에서 온 그들이 어찌 홍수가 난 줄을 짐작이나 하겠는가. 나그네가 거주하는 지역은 볼거리가 좀 있어서 멀리서 입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강을 배경 삼아 도로변에 주욱 늘어선 집들 입구에는 마치 전방 군부대의 모래벙커를 연상케 하는 모래주머니들이 일렬종대로 쌓여 있었다. 강 상류지역에서 녹아 내린 '눈 물'들이 지원군으로 도착해서 또 한 번 공격해 올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방어 진지인 것이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평소 배를 타고 온 관광객들에게 잠시의 휴게 공간과 먹거리를 제공해 주던 강변 가 음식점들은 실로 오랜만에 천재지변으로 타의에 의한 안식에 들어갔다.

이들 식당들은 365일 쉬는 날이 드물 정도로 연중무휴로 문을 열었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불황한 가운데서도 호황을 구가하던 식당들이 이번 큰 물의 범람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듯 하다. 그들의 침수된 지하와 하수도로 이어지는 장소에서 강력한 발동기의 소음이 주변을 진동하고 있다. 미처 후퇴하지 못하고 지하에 갇혀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큰 물의 범람군들을 소탕하느라 발동기에 연결된 거대한 고무호스가 그칠 새 없이 물대포를 쏘아대고 있는 것이다.

큰 물의 범람군들이 다시 강 속으로 빠져 나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강의 수면이 도로면을 넘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도로가 강인지 강이 도로인지 헷갈리게 하는 구역들이 듬성듬성 눈에 띄기도 한다.

'2차 자연범람군' 침공에 망연자실한 인간군

눈 물의 범람 뷔르거마이스타, 우리말로 지역시장이 대책없이 침수지역을 망연히 쳐다보며 애꿎은 담배만 축내고 있다. 이곳 바이에른 주에서는 드물게 사회민주당 출신 시장이다.
▲ 눈 물의 범람 뷔르거마이스타, 우리말로 지역시장이 대책없이 침수지역을 망연히 쳐다보며 애꿎은 담배만 축내고 있다. 이곳 바이에른 주에서는 드물게 사회민주당 출신 시장이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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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6일 일요일 아침, 독일의 겨울 날씨 치고는 '진짜 진짜' 드물게 하늘은 맑고 청정한 쪽빛이다. 요즘 청소년들의 용어로 '끝내 주는 날씨'다. 나그네는 아침도 거른 채 샌드위치 하나 달랑 들고 서둘러 어제 갔던 현장으로 달려가 보았다. 예상했던 상류의 '눈 물'이 도착, 재차 범람하는 현장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상류의 지원군이 그야말로 물밀 듯 밀려와 있었다. 마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연상케 하듯 모든 삼라만상 천지만물이 깊은 잠의 수렁 속으로 빠져있는 암흑의 새벽에 기습적으로 1차 범람군이 빠져나간 자리를 점령해 버린 것이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은 아니지만, 이렇게 청정한 날씨에 홍수의 범람이라니. 참으로 드문 기상이변이로고. 이젠 도로고 집들이고 대책 없는 무방비 상태다. 무장해제 돼 버린 것이다. 일요일 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밤을 꼬박 새웠을 시 당국의 대책반들이 여기저기서 침수된 지역의 물을 퍼내는 장면이 목격된다. 시장은 멍 하니 넋을 잃고 침수된 도로를 바라보며 애꿎은 담배만 연신 피워댄다. 한마디로 현재로선 대책이 없는 것이다. 녹아 내린 '눈 물'들의 실탄이 다 소진 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는 방법이 없다. 광활한 우주의 티끌 하나의 존재성도 없는 인간들이 탐욕과 아집에 기인한 섭리를 거스르는 환경파괴에 극히 제한된 반격을 가해온 자연의 힘 앞에 아무런 대책 없이 망연자실하게 시간만 흐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꼬락서니라니, 그 부류중의 하나인 나그네, 슬프고 서글프다.

범람군이 점령해 버린 도로 위에서 평소에는 강에서 헤엄치던 청둥오리들과 물병아리들이 유유히 유영을 하고 있다. 참, 그런데 쥐들이 안 보인다. 평소엔 강변 기슭에 서너 마리씩 몰려 다니면서 방문객들이 물새들에게 던져주는 먹이를 잽싸게 가로채어서는 풀숲이나 바위 틈새로 약삭빠르게 사라지곤 했던 그 많던 쥐공들이 한 마리도 안 보이는 것이다.

범람군의 침입으로 강물이 좀 많이 풍족하고 흐르는 속도가 빨라진 것 이외엔 변함 없는 강물이 있고 토박이 물새들도 확장된 영역에서 유유자적, 대자연이 선사한 전리품들을 챙기고 있건만 한가하고 평화스런  평시에 무리를 지어 몰려 다니면서 그렇게 까불대고 찍찍거리며 물새들에게 시비를 걸고 먹이를 가로채던 그 많던 쥐들은 다 어디 갔을까?

그 많던 쥐공들은 다 어디 갔을까?

눈 물의 범람 자연의 선물로 확장된 영역, 자동차 도로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며 귀찮은 쥐들이 사라진 후 그들만의 평화를 만끽하고 있는 청둥오리 떼.
▲ 눈 물의 범람 자연의 선물로 확장된 영역, 자동차 도로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며 귀찮은 쥐들이 사라진 후 그들만의 평화를 만끽하고 있는 청둥오리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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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눈 물'의 범람군이 사방팔방을 점령해 버린 전시 상태다. 이 전시 상태에 도대체 쥐공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기상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쥐들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쓸모가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큰 배를 타고 먼 바다에로  항해를 앞둔 뱃사람들에게 쥐공들은 재앙을 예고해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당장은 날씨가 항해하는데 지장이 없어도 한참 후, 바다 한복판에서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기후의 변화무쌍함을 당시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배에 서식하고 있던 쥐들은 몇 시간 후 일어날 재앙의 기후를 감지하고 배가 출항하기 전에 보금자리였던 배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뱃사람들은 쥐들이 허둥대며 사라지는 것을 보고 폭풍이 올 것이라는 일기 예보를 했다고 한다.

까마득한 옛날이기는 하지만, 쥐공들이 사람들에게 부분적이나마 도움을 주며 살았다는 것은 호불호를 떠나 칭찬할 만 하다. 그러나 평화롭고 풍족한 시절엔 온갖 눈살 찌푸리는 짓만 골라 하다가 주변이 풍전등화의 재난에 놓이게 되면 '나몰라라' 하고 먼저 빠져나가서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하면서 안전한 곳에 숨어 있다가 재난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 기존의 못 된 습성을 되풀이하는 쥐공들의 행태에서 사람 세상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나그네는 지금 고소를 금치 못하겠다.

한 10년 산책길을 발품으로 돌아드니
강물은 의구한데 쥐공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 10년이 꿈이런가 하노라

그런데, 그 많던 쥐들은 다 어디 갔을까.   


#자연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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