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아테나 : 전쟁의 여신>(이하 <아테나>)(오후 10시 방송)은 2009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KBS <아이리스>의 '스핀오프(Spinoff)'다. 스핀오프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말하자면 한 뿌리의 드라마란 뜻이다. 그래서 <아테나>는 극 초반 김명국 박사를 망명시키는 작전을 시행하면서 전작 <아이리스>에 등장했던 홍승룡 박사를 언급해 두 드라마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주지시켰다.
그렇기에 <아테나>를 설명하는 데 있어 <아이리스>를 빼놓을 수 없다. 전작 <아이리스>와 비교했을 때 <아테나>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 스케일의 확장이다. <아이리스>가 남북 간의 긴장에 '아이리스'라는 국제조직이 끼어들어 3각 구도를 형성했다면, <아테나>는 '신형 원자로' 개발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 및 북한, 국제조직 '아테나'의 대립을 통해 활동범위를 확장시켰다.
활동범위가 늘어난 만큼 해외 로케이션의 양과 밀도 또한 <아이리스>를 능가한다. 이탈리아, 하와이, 일본 등지에서 펼쳐진 화려한 액션신은 <아테나>의 규모를 자랑한다. 늙은 박사님 혼자 쓸쓸히 사무실을 지키고 앉아있었던 <아이리스>의 NSS와는 달리 <아테나>의 NTS는 무기개발부터 사체부검까지 전방위적 역할을 담당하는 과학수사실까지 갖추고 상주인구도 대여섯 명으로 늘려 좀 더 '그럴싸한' 티를 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스케일의 확장. 그것을 제외하면 <아테나>는 <아이리스>로부터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한 느낌마저 든다. 눈요깃거리는 확실히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스토리는 빈약하고, 캐릭터는 오리무중이며, 화면구성은 엉성하다. 그리하여 방영 10회 만에 시청률은 반토막이 났다. 떨어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왜'는 없고 '어떻게'만 있는 <아테나>
이정우(정우성 분)는 능력 있는데다 잘생기기까지 한 NTS 요원이다. 외형만 따진다면 첩보요원으로서의 매력은 이병헌보다 나을지 모른다. 그러나 캐릭터는 빈약했고, 주인공임에도 서사는 실종됐다. 적어도 <아이리스>의 현준(이병헌 분)에게는 '모든 음모의 중심'이라는 서사가 있었고, 애국심이 유별나서가 아니라 단지 일이 '재밌기' 때문에 한다는 행위의 동기가 뚜렷했었다. 그러나 정우에겐 그 무엇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왜' 싸우는지는 알 수 없다.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신분과 사랑을 잃게 되고, 그 음모를 파헤치고자 행동했던 현준과 달리 정우는 그저 눈앞에 적이 있으니 싸울 뿐이다. '왜'는 없고 '어떻게'만 있는 상황. 시청자는 도무지 정우에게 감정이입을 할 부분을 찾지 못한다.
극의 중요한 줄기 중 하나인 정우와 혜인(수애 분)의 러브라인에도 '왜'는 생략돼 있다. 결과적으로 수애의 '니킥'외엔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던 첫 회 오프닝 30여분이 지나고 방송의 후반에 가서야 겨우 모습을 드러낸 정우는, 놀이공원에서 한 번 마주친 혜인에게 빠져들고, 곧바로 구애를 시작한다. '수애는 니킥을 찼고, 정우성은 수애에게 반했다.' <아테나>의 첫 회 1시간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왜'가 없으니 둘의 사랑에도 몰입이 쉽지 않다. 정우는 분명 혜인을 사랑한다. 그녀를 위해 NTS와 조국마저 저버릴 수 있을 정도로, 그녀를 위해 자신을 신임하는 국장의 믿음마저 내버릴 수 있을 만큼 정우는 혜인을 사랑한다. 첩보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이런 클리셰가 힘을 받을 수 있는 건 남녀주인공 둘의 사랑이 얼마만큼 애절하고, 그것을 시청자에게 어필하는가에 달렸다.
<아이리스>에서도 현준에 대한 승희(김태희 분)의 지나치게 급격한 감정변화를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 실수를 <아테나>에서도 똑같이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사탕키스'라도 기억에 남았던 <아이리스>는 양반이다. <아테나>에는 두 사람의 서사로 기억될 만한 그 어떤 장면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연출된 베드신은 또 다른 일회성 연출의 한 장면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주인공은 액션신, 나머지 신들은 들러리
이런 문제들이 나타나는 까닭은 <아테나>가 '액션신과 그렇지 않은 신으로 나뉘어져 있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리스>에서도 수차례 비판받아왔던 부분. 액션신이 주인공이고, 나머지 신들은 들러리를 선다. 그러니 액션신의 스케일이 커지고 밀도가 높아질수록, 나머지 신들의 비중은 줄어들게 된다. 정우의 캐릭터 부재도, 남녀주인공 사랑의 서사 생략도 모두 여기에 기인한다.
하나의 액션신이 끝나면, 그 다음 액션신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으로 바쁘다. 적은 새로운 액션신을 만들어내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NTS는 그 음모에 맞서 요원들을 현장에 투입한다. 그 와중에 정우는 혜인에게 구애하고, 그 둘을 사랑하는 재희(이지아 분)와 손혁(차승원 분)은 가슴이 찢어진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면 어느새 모두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고, 정신없이 쏘아댄다. <아테나>의 뼈대는 이처럼 앙상하다.
빈약한 뼈대를 감추기 위해서 <아테나>가 택한 길은 단점을 보완하는 대신 장점을 부각시킨 것이었다. 그들은 애써 캐릭터를 만들고 서사를 쌓아가려 하기보다 액션신에 더욱 치중했다. 더 크고, 더 화려하게. 그 결과 남녀주인공의 서사는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오는 OST를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장면에 더해 뜬금없는 타이밍에 삽입시키는 것으로 대체했다.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아테나>는 이야기 전개 구조상 <아이리스>보다 흡입력에서 약할 수밖에 없다. <아이리스>는 극의 최후까지 승희가 '아이리스'의 일원인지 알 수 없었을 만큼 아이리스를 베일 속에 감춰두고 이야기를 전개시켰다. 시청자들이 '비밀조직과 맞서 싸우는 첩보요원'이라는 진부한 소재와 허술한 이야기 전개에도 드라마에 그토록 집중했던 것은 아이리스와 관련된 긴장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시킨 설정의 공이 컸다.
그러나 <아테나>는 첫 회 오프닝에서 이미 '아테나'의 정체를 밝혀 버렸다. 혜인과 손혁이 아테나에 소속된 이중스파이라는 사실, 그리고 '아테나'가 국제적인 에너지조직이라는 사실은 극 초반 시청자에게 오픈됐다. 긴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테나>는 극 자체의 완성도를 높여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어야 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그렇게 하는 대신, 액션신에 집중했다.
<아이리스>로부터 조금도 발전하지 못한 <아테나>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설정은 얼마든지 있었다. 가령 DIS 동아시아 지부가 NTS 본사 안으로 들어가는 설정은 작은 공간 안에서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는 두 집단의 치열한 물밑싸움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머리싸움이나 암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모델 워킹을 선보이며 NTS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가는 손혁과 그에게 반한 숙경(오윤아 분)의 호들갑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추노>가 극찬을 받고 <동이>가 비판받은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추노>가 기존의 사극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며 사극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면, <동이>는 기존에 반복되어 오던 '이병훈'식 사극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일한 제작진이 불과 1년의 텀을 두고 만든 <아테나>에서 <아이리스>와는 비교를 불허할 만큼의 엄청난 발전을 기대한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리스>에서 불거졌던 문제점들은 수정 및 보완했어야 했다. 변한 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퇴보했다. 캐릭터, 스토리, 화면 모두 낙제점 수준으로. 그리고 시청률은 반토막이 났다. <아테나> 제작진은 깨달아야 한다. 자신들이 만드는 건 FPS게임도, 뮤직비디오도 아닌 드라마라는 것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번엔 시청광장을 통째로 빌려도 떨어져나가는 시청자를 잡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