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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1편(보수왕궁의 철옹벽에 조금씩 금이 가게 하자)에서 조국 교수의 미래 전략에 대해 논의했다. 대중에게 희망을 주되 진보의 미래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 좋은 전략을 채택한다면 희망찬 미래를 앞당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진단과 전략에 대해 각론에는 찬성하지만 총론에서 나는 조국 교수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조 교수는 진보진영이 자유주의 개혁세력과 경제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는 진보세력의 양 집단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탄생뿐만 아니라 양 집단의 분열에 참여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의 실패가 일차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한국의 정당사를 통시적으로 볼 때 현 진보진영의 분열은 역사적으로 피할 수 없는 필연적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참여정부가 두 가지 점에서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첫째, 대선 핵심 공약이었던 새로운 정치(선거혁명, 탈지역주의 정당의 과반수확보)를 2004년 총선에 완수함으로써 국민의 정치만족도를 너무 높여놓았고 이로 인해 선거연합이 집권 1년 만에 해체되었다. 2002년 대선은 정치적 진보의 연대였고, 전통적 민주화세력, 좌파세력, 자유주의 진보세력 세 집단이 선거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선거공약을 너무 빨리 달성함으로써 세 집단의 분열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둘째, 참여정부는 양극화를 의제화하기 위해 집권의제를 정치에서 경제로 옮겨갔다. <연합뉴스>의 대통령 신년연설 키워드 그래픽(http://j.mp/hnQnSP)을 보면 이러한 변화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참여정부의 경제사회정책과 복지의제는 기존 정당의 지지기반을 흔들었다.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층인 저소득층과 중하층에서 노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지지가 만들어졌고 선거연합이었던 중상층은 지지집단에서 이탈했다. 특히 이 기간 유권자의 이념이 양극화되었는데 블루칼라만 진보화되고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보수화되었다.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소득과 반비례했다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해 쓴 <진보집권플랜> 겉그림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해 쓴 <진보집권플랜> 겉그림 ⓒ 오마이북
참여정부의 선거연합을 이뤘던 세 집단 중에서 참여정부의 경제적 진보정책에 동의한 집단은 일부 자유주의 진보세력 뿐이다. 이들은 변치 않고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지지자로서 30%정도 된다. 민주당, 고소득 자유주의 세력은 경제적으로 보수적이고, 민노당은 더 좌향좌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고학력, 고소득 이탈자의 수는 새로 유입된 저소득층을 압도했다.

취임 1년 만에 집권의제를 바꾼 것은 진보를 왜소화시키는 일대 도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시대정신이고 장기적으로 이기는 길이라고 보았기에 노 대통령은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양 집단의 이해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Vision2030을 내놓고 한미FTA를 체결했다. 하지만 이로써 진보의 분열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수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선거 역사상 소득이 투표에 영향을 미친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008년 8월 촛불집회 기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소득과 반비례했다. 그의 사회경제정책이 한국정치를 지역정치에서 이익의 정치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정치를 해서는 안되는 헌법 때문에 진보정책을 가지고 국민을 제대로 설득할 수 없었다. 쟁점의 의제화는 선거기간에 정치화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노 대통령의 복지주의 의제화 노력은 역설적으로 한나라당이 지역정당에서 벗어나 발전주의 이념을 토대로 한 보수주의 정당으로 재연합되는데 기여했다. 뉴라이트운동, 선진화재단의 담론, 조중동에 의한 꾸준한 담론전쟁이 일등공신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이론적 설명과 경험적 근거는 19일 '국민의 명령' 주최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필자의 논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정치개혁쟁점에서는 소수정당이었던 한나라당이 경제쟁점이 의제화되면서 다수당으로 전환했다. 한나라당은 노대통령 정치개혁의 최대수혜자가 된 것이다.

복지정책 지지집단, 일단 복지 경험해봐야 만들어진다

요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이 심각하다. 그러나 50%가 넘는 국민은 한나라당이 또 정권을 창출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무리 의원들이 막말을 하고 구제역으로 온 국토가 가축의 무덤장으로 변해도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웬만해서는 35%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반면 민주당의 지지도는 20%를 넘기가 힘들다. 한나라당이 발전주의 이념을 기초로 재연합을 이룬데 비해 민주당은 지역정당으로 후퇴했기 때문이다.

요즘 민주당의 과감한 복지정책 제안은 복지를 중심으로 한 진보연대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진보정당이 재연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진보진영의 지지기반을 더 축소시킬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아직 우리 국민의 뇌리 속에는 '경제'하면 박정희 신화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복지는 포퓰리즘이라는 선동이 먹히는 집단이 여존히 생존한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진보진영으로 되돌아온 자유주의세력 일부가 다시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문화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이들은 획일적 복지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특히 정부불신의 뿌리가 깊은 우리나라에서 정부혁신에 대한 비전 없는 보편적 복지 구호는 대중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

복지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수많은 정치학습과 토론, 의식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많은 중산층은 복지에 별로 친화적이지 않고, 복지의 수혜층이라 할 저소득층은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상습적인 투표기권층이다.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은 투표할 시간도 없고 정치불신이 높으며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투표효능감도 매우 낮다. 새로운 정책이 나오면 이들도 대거 투표할 것이란 기대는 관념적 지식인들의 기대일 뿐이다. 복지정책의 지지집단은 복지를 일단 경험해보아야 만들어진다.

결국 보수가 제2의 경제환란을 가져온 다음 집권할 생각이 아니라면 진보가 경제프레임으로 다음 대선을 치르겠다는 전략은 그리 현명해보이지 않다. 이점에서 조국 교수의 '진보가 밥먹여 준다'는 프레임은 오히려 보수의 프레임을 강화시켜 준다고 생각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복고풍을 떠올린다. 게다가 '밥'프레임은 보릿고개를 연상시켜 박정희의 유산을 강화시켜준다.

진보진영, 물질주의 쟁점에만 몰두하면 안 된다

 <진보집권플랜> 출판 기념으로 27일 저녁 서울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조국·오연호 BOOK 콘서트'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진보집권플랜> 출판 기념으로 27일 저녁 서울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조국·오연호 BOOK 콘서트'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진보정권 10년의 복지정책으로 이제 남한에서 밥 못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좋은 일자리가 없고 미래가 불안한 것이 문제이지 일인당 소득이 2만불인 국가에서 88만원 세대가 배고픈 세대는 아니다. 양극화는 상대적 빈곤의 문제이지 절대적 빈곤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가 "민주가 밥 먹여주냐?"고 물으면 "밥 먹여 줬다"고 자신 있게 말해야 한다. 민주정부 동안 복지예산이 얼마나 증가되었는지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얼마나 삭감되었는지 분명히 말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가 없는 건 민주정부 10년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구조의 문제이므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토목산업을 줄이고 과학기술에 집중적인 투자를 했던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진보연대의 고리가 되었고 핵심지지층에게 열정을 불어넣은 것은 분명하다. 중산층도 이해관계보다는 도덕적인 이유에서 무상급식에 찬성했다. 하지만 조 교수가 생각한 것만큼 무상급식이 선거의 주요의제는 아니었다. 조 교수는 유권자가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유권자의 관심은 진보지식인들의 관념과 많이 다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MB심판, 노대통령 서거가 없었다면 진보진영의 승리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상의 문제를 정치화한 촛불집회 참여자들은 자유주의 진보세력이다.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문제가 이들의 관심을 끌 수 없었던 이유도 이들은 현재의 시장에서 성공한 신주류이기에 경쟁에 뒤떨어진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할 수 있다. 진보진영이 물질주의 쟁점에만 몰두하게 되면 자유주의세력과 분리될지 모른다.

진보진영이 다수당이 되기 위해서는 탈물질주의 자유주의세력과 물질주의 좌파세력이 연대할 수 있는 쟁점을 발굴해야 한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주의 가치연대가 그것이라고 본다. 인권, 민주주의, 삶의 질, 환경, 생태 등이 탈물질주의 가치라면 비정규직문제, 일자리 등은 물질주의 쟁점이다. 물질주의 쟁점은 인간의 존엄성, 인권, 정의와 같은 탈물질주의가치로 전환될 수 있다.

진보진영의 구성은 다수의 자유주의자와 소수의 좌파로 구성되어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문화적으로 좌파집단보다 훨씬 진보적이지만 경제적으로는 한나라당과 진보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러나 진보진영에서는 물질주의 쟁점이 과대 의제화되고 있다. 좌파는 잘 조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좌파 지식인이 진보언론시장을 독점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본다. 이렇게 자유주의자들이 진보의 담론시장에서 소외되면 결국 진보진영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진보만 할 수 있는 가치지향적 프레임 만들어보자

조 교수는 정확히 두 집단의 하이브리드로서 양 집단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식인으로서 진보 생태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때문인지 물질주의 담론에 포획된 것 같아 안타깝다.

선거는 오랜 정당의 역사와 유권자의 중층적 기억 속에서 치러진다. 진보진영이 그동안 잘해왔던 유산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지난 대선, 한나라당은 성장주의 이념으로 집권했다. 노대통령의 복지주의가 성장주의를 부활시켰음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이명박 후보는 박정희 독재 19년의 유산 덕을 본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747공약이 뻥이 되면서 유산을 많이 까먹었다.

진보진영은 지난 10년간 민주주의와 인권, 기초 복지에서 업적을 쌓았다. MB정부 이후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만족이 83.2%로 역전되었다. 진보진영도 지난 10년의 유산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스스로의 업적을 자학하면서 바닥에서 새로 시작하겠다고 하면 한나라당과 경쟁이 되겠는가. 진보진영이 재집권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민주정부 10년의 업적을 국민에게 전파하는 일이다.

진보진영은 집권 이후를 대비해 복지정책 준비는 철저히 하되 담론경쟁은 탈물질주의 프레임으로 가야한다. "진보는 기본 복지를 통해 이미 밥 먹여줬다. 보수보다 안보에서도, 행정에서도, 경제에서도 훨씬 유능했다"고 말해야 한다. "더 좋은 일자리,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복지, 정의, 인권, 참여,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말해야 한다. 보수는 할 수 없지만 진보만이 할 수 있는 가치지향적 프레임을 만들어보자.

프레임이 이렇게 변한다 해도 조 교수의 정책적 대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조 교수의 각론에 찬성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시장의 활력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국가가 개인의 삶에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조 교수의 기본 생각이기 때문이다. 지금 만일 노대통령이 살아 계신다면 조국 교수와 오연호 대표의 책을 ('밥'프레임만 뺀다면) 많이 칭찬하셨을 것 같다.

노 대통령이 더 많은 복지를 하지 못한 이유는 국민의 지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조 교수 같은 지식인이 발전주의에 대항하는 대안적 삶이 있고 국민이 힘을 합치면 그 길을 택할 수도 있음을 학습시키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노 대통령은 나라의 발전은 국민이 생각하는 만큼 간다고 말했다. 국민이 깨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보지식인이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진보집권플랜>, 두 분 저자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조기숙 기자는 전 청와대 홍보수석입니다. 이글은 blog.daum.net/leadershipstory에도 실렸습니다.



#조국#오연호#진보집권플랜#노무현#복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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