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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파가 다시 찾아 온 밤. 작은 불씨의 온기에 의존해 밤을 보내고 있는 영등포의 노숙자들. 처연한 그들 뒤로 보이는 대형 쇼핑몰의 빌딩이 더욱 높아 보인다.
한파가 다시 찾아 온 밤. 작은 불씨의 온기에 의존해 밤을 보내고 있는 영등포의 노숙자들. 처연한 그들 뒤로 보이는 대형 쇼핑몰의 빌딩이 더욱 높아 보인다. ⓒ 송병승

동장군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지나 싶더니 다시금 한파가 찾아왔다. 역 안에 있는 사람들은 기차를 타기 위해, 혹은 기차에서 내려 또 다른 목적지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밤이 되면 그 발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혹은 돌아오기 위해 찾는 역. 하지만 그 유동의 공간인 역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이들이 있다. 시속 300km에 다다른다는 KTX가 지난해 11월부터 정차하기(KTX 일부에 한함) 시작한 영등포역 주변에서 한파와 싸우며 자신들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을 지난 19~20일 만났다.

해가 지고 어스름이 내려앉았다. 영등포역과 백화점들의 화려한 조명이 켜지자, 이내 다시 해가 뜬 것처럼 주변은 밝아진다. 하지만 밝아진 주변과는 다르게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은 아직 어둡다.  

"노가다라도 하려고 나오는데, 추워져서 일도 없어"

영등포 역사 왼쪽편. 이른바 쪽방촌으로 불리는 곳이다. 쪽방촌은 이미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겨울철만 되면 정치인들과 많은 언론들이 방문해 그곳의 현실을 알리고 있다.

이근에 자리한 광야교회에서는 쪽방촌 사람들에게 식사와 옷가지 등을 제공하며 그들을 도와주고 있다. 저녁시간이 되자 광야교회 앞에는 사람들이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

식사가 끝나자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쪽방촌에조차 살지 못하는 서너명의 사람들은 인근에서 쓰레기더미를 태우며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같이 불을 쬐도 될까요"라고 묻자 "아 그럼 쬐슈, 인제 불도 다 죽었구만"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 동네 사는 사람같지는 않은데 뭐하는 사람이슈? 기자 양반이시구만."

많은 취재진이 거쳐 갔는지 먼저 말을 꺼내고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흔 두 살의 김씨는 7년 전 이곳에 왔다. 한식 주방일을 직업으로 삼았지만 1998년 IMF 당시 직장을 잃고 카드빚이 불어 강원도에서 이곳으로 도망치듯 왔다고 했다. 그는 돈이 생기면 찜질방 등에서 잠을 자고 그조차도 못하게 되면 노숙을 한다.

쪽방촌 인근에서는 젊은 나이 축에 속하는 김씨는 일용직 일을 하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일용직조차 구하기 어렵다.

"새벽에 노가다라도 뛰려고 나오는거지. 하지만 날이 추워지니까 요즘은 그것도 없어. 그냥 여기 마실 와서 형님들하고 소주나 한 잔 먹고 들어가는거지. 사는 게 쉽지 않아."

쓰레기 더미를 태우며 불을 지피는 일은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분리수거가 되지 않은 작은 가스통이라도 들어있으면, 사고는 순식간이다. 이날 밤도 다행히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인근 파출소에서도 노숙자들이 불을 지피며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온기로 밤을 보내는 사람들을 두고 매정하게 불을 쓸 수 있는 처지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모와 오천원

 영등포 역사 내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노숙자들.
영등포 역사 내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노숙자들. ⓒ 송병승

김씨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한 중년의 여성이 팔을 잡는다.

"삼촌 놀다가. 아가씨 있어."
쪽방촌 인근에는 홍등가가 형성되어 있다. 그곳에서 호객일을 하는 이모다.

"이모 갑자기 또 날씨가 추워졌죠?"
"말도 못해 칼바람 부니까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근데 나 이모 아니야. 내가 벌써 육십 두 살인데."

예순 둘의 이모는 화곡동에서 매일 오후 7시에 영등포로 나와 11시 30분까지 호객일을 한다. 한번 손님이 생길 때마다 이모에게 돌아가는 돈은 오천원. "요즘은 공치는 날이 더 많아, 차비나 벌면 다행이지"라며 이모가 한숨을 쉰다.

"한 오년 전만해도 살 만했어. 요즘은 백화점 들어서고 뭐 들어서고 더 좋아졌는데 이런일 하는 사람들은 더 죽을맛이야."

대화를 끝내고 역 주변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이모 쪽으로 가는데 이모가 걸어온다. 발걸음이 가볍다. 이모의 뒤엔 한 청년이 따르고 있다. 이모는 그날 밤 오천원을 벌었다.

영등포 역 안,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

영등포 역 안으로 들어가자 더 많은 노숙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역사 안 의자에 앉아 있거나 이미 자리를 깔고 누운 사람도 있다.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역사 안에 활기가 돌며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모여 든다. 매주 목요일이면 이곳에 나와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나눠주는 사람들이다.  

한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이 시작한 이 봉사활동을 이제는 교회를 떠나 봉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3년째 진행하고 있다. 커피를 나눠주던 한 남성은 "3년 동안 이 일을 하다보니 보이시던 분이 안 계시기도 하고 또 안 보이시던 분이 나타나기도 한다"면서 "그래도 예전 보다 노숙하시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서 다행이다"라고 안도했다.

갈 곳 잃은 많은 노숙자들이 생활하는 영등포역에는 서로를 배려하는 그들만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여성이나 장애인에게는 시비를 걸거나 술주정을 부리지 않는 것, 무료 배식 시간이 되면 노인들의 밥을 먼저 챙겨 주는 것 등 무질서해 보이는 그곳에도 질서가 있었다.

오후 11시가 지나자 많은 노숙자들이 잠을 청했다. 의자에 앉아서 쪽잠을 자는 사람, 냉골바닥에 그대로 몸을 누인 사람, 그나마 이부자리가 있어 그 바닥에 박스를 깔고 침낭을 덮은 사람까지. 각자 가지고 있는 삶의 짐은 달랐지만 잠든 이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고된 삶의 모습이 묻어났다.

인근 상담보호센터에선 주 3회씩 영등포역에 나와 거리 상담을 해준다. 사회복지사는 "많은 사람들이 안 좋은 시선으로 이곳의 노숙자들을 바라보지만 이곳 사람들도 서로 배려하며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이들이 근본적으로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사주간지 <시사서울>(sisaseoul.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숙자#영등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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