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0일 전면 무상급식 반대를 다시 한번 천명하고 있는 김신호 대전교육감.
 지난 20일 전면 무상급식 반대를 다시 한번 천명하고 있는 김신호 대전교육감.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지난 20일, 김신호 대전시교육감은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충정과 상생의 자세로'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전면 무상급식에 대한 자신의 반대 소신을 밝혔다. 이에 대해 대전시는 유감을 표명하며 "시 단독으로 자치구와 협력하여 올해 6월부터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에게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한편 친환경 무상급식 실현을 위한 대전운동본부 측은 "당장 올해 초등 3학년까지만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시교육청이 추가 부담할 예산은 30억여 원밖에 되지 않는데, 이마저도 못하겠다는 것은 교육계 수장으로서의 자격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과연 누구 말이 맞는지, 아니 김신호 대전시교육감의 말대로 진정 누가 '무상급식 독배'를 마셨는지 한번 따져볼 일이다. 포퓰리즘 논쟁 등 무상급식에 대한 이론적․정치적 다툼은 그만두고, "현재의 교육예산으로 단계적 무상급식이 실현 가능한가?"라는 문제에 국한해 살펴보자.

'무상급식 독배' 마신 사람, 대전교육감일 수도

김신호 교육감은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읽은 기자회견문에서 예산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대전의 경우 의무교육대상자인 초중학생만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순수급식비 650억과 급식행정비 130억을 합쳐 780억이 든다"며 "우리 교육청의 전체 교육예산이 1조 3000억인데 그 중 16%인 2080억이 유연성 사업예산이다, 그 중 1081억을 매년 초중고 전원 무상급식에 쓰고 나면 약 1000억 가지고 어떻게 교육하란 말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러면서 현명하지 못한 타 시도 지자체와 교육청들은 "무상급식 때문에 2013년쯤이면 심각한 재정난으로 곤경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무리한 무상급식예산 출혈을 자처하였으니, 사실상 '무상급식 독배'를 마신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리인 것이다. 진정 누가 독배를 마셨는지는 시간이 좀 흘러봐야 판가름 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잔에는 독이 들어 있지 않았고, 서울과 대전교육감 두 사람만 '무상급식 반대 독배'를 마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겨우 30억 없어서 올해 무상급식을 포기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무상급식 추진 예산과 관련한 교육감의 설명이 과연 타당한지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복잡한 수식을 동원하지 말고 단순 명쾌하게 접근해 보자.

먼저 "매년 1081억을 전면 무상급식에 써야 한다"는 교육감의 논리는 허구로 가득 차 있다. 무상급식 관련 소요 예산을 자신의 논리에 유리하도록 고의적으로 부풀리기를 하였다.

지난 1월 13일 열린 대전시 학교급식지원심의위원회 회의 자료에 의하면, 의무교육 단계인 초․중학교의 무상급식 완성(2014년)에 소요되는 돈은 모두 합쳐 649억 원이다. 학부모가 부담하는 초중학교 급식비 총액이다.

따라서 '시(50%)-자치구(20%)-교육청(30%)' 분담률을 적용할 경우, 시교육청이 추가 부담할 금액은 115억 원에 불과하다. 649억 원의 30%는 194억 원인데, 현재 시교육청에서 이미 부담하고 있는 저소득층 자녀 무상급식비 79억 원을 제외하면 115억 원 정도만 추가 소요된다.

당장 올해 (대전시 계획대로) 초등 3학년까지만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시교육청이 추가 부담할 예산은 30억여 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가용예산 2천억 원의 1.5%).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교육감은, 무상급식 소요 예산을 부풀리기 위해 자신만의 셈법을 동원하였다. 사실상의 경직성 경비인 급식행정비 130억을 급식 예산에 포함시켰고, 현재 논의 대상도 아닌 고등학교 급식비까지 슬쩍 끼워 넣어 1081억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데이터 조작에 다름 아니다.

'치적 사업' 줄이면 얼마든지 무상급식 가능하다

 김신호 대전교육감의 무상급식 반대 기자회견 후 대전지역 야5당과 시민단체들이 김 교육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신호 대전교육감의 무상급식 반대 기자회견 후 대전지역 야5당과 시민단체들이 김 교육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대전교육감은 지난 1월 초순 한 지역 언론과의 신년인터뷰에서 "학교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와 국제고, 대전에듀아트홀, 직업교육을 위주로 하는 공립 특수학교, 유아교육진흥원, 외국어교육원 등을 만들겠다"고 새해 비전을 밝혔다. 대안학교와 특수학교 설립은 환영할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머지 토목 건축 사업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으로 예산 낭비의 주범이다. 경직성 경비가 84%나 되고 가용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무상급식을 못하겠다더니, 뜬금없이 웬 국제고와 외국어교육원 타령이란 말인가?

건축비만 80억 원이 넘어 돈 먹는 하마로 불리는 유아교육진흥원이 과연 절실히 필요한가? 또한, 외국어교육원과 국제고 설립은 도대체 무슨 근거에 바탕을 둔 청사진인가? 그리고 학교 예체능교육을 다 무너뜨려놓고 이제 와서 예술 교육도 하고 공연도 하는 '대전에듀아트홀' 건립은 웬 생뚱맞은 제안인가? 치적 사업이 복지 사업을 잡아먹고 있는 형국이다. 절실히 필요하지도 않은 하드웨어 시설 사업 예산의 절반만이라도 학생 복지에 투자하는 건 그에게 과도한 기대인가?

교육예산 전체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교육감의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이가 어느 일정한 크기가 될 때까지는 무상급식은 꿈도 꾸지 말라는 논리는 자기기만이다. 앞에 언급한 낭비성 토건사업(시설 사업 예산) 3가지만 하지 않아도, 초중학교 무상급식은 실현하고도 남는다.

교육감 혼자 총대 메라는 게 아니다

우리가 언제 교육감 혼자 총대 메고 무상급식 책임지라고 했는가? 시와 자치구에서 70%라는 전국 최고 수준의 분담률을 제시하지 않았는가.

불필요한 예산을 과감하게 줄이면 교육청에서 4년 동안 115억 만들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출 구조 개혁에 대한 의지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실현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조금만 생각을 변화시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의무교육 단계의 점차적 무상급식 정책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토대를 둔 독재형 포퓰리즘이다.

교육청 부하 직원 30여 명을 뒤에 배석시킨 채 기자회견문을 읽은 김신호 교육감은 '영웅 심리'에 젖어있는 듯하다. 정치적인 용어로 '우익 소아병'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시민 다수가 찬성하는 무상급식을 '개인의 소신'이란 이름으로 묵살하고 깔아뭉갠단 말인가.

같은 세금 내고 같은 초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이 왜 유독 대전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무상급식의 혜택을 받아선 안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신정섭 기자는 현재 전교조대전지부 정책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무상급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놀고, 즐겁게 공부하며, 대학에 안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