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자는 낡은 찬장에서 비닐에 싸인 덩어리를 꺼내더니 초콜릿을 쪼개듯 조각을 냈다. 아지자는 마치 아침을 먹이듯 그것을 4살짜리 아들 오마이둘라에게 먹였다.
"아편을 먹이지 않으면 아이가 잠을 자지 않아 일을 할 수가 없다. 아이가 아플 때도 아편을 먹인다." 아지자는 태연하게 말했다. 아이를 학대하는 엄마 이야기가 아니다.
<씨엔엔(CNN)> 기자가 방문한 아프가니스탄 북부 오지인 발크 지방에 사는 아지자 가족에게 아편은 일상이다. 카페트를 짜 생계를 유지하는 아지자의 가족은 시어머니, 아지자, 그리고 어린 아들 3대가 모두 아편 중독이다. 어른들은 힘든 노동과 일상을 견디기 위해 아편을 복용한다.
"난 힘든 일을 하면서 아이들도 길러야 했다. 그래서 아편을 쓰기 시작했다. 우린 아주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다. 배고픈 아이들을 조용히 시켜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아편을 먹인다." 아지자의 시어머니 로지굴은 작은 아편 조각을 입에 던져 넣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국민 100만 명이 '아편 중독자'아편 중독은 아지자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이곳에서 아편 복용은 일상이고 아편 중독 또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편의 위험을 잘 알지 못한다. 설사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아편 중독을 치료하고 싶어도 멀리 떨어진 병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마을에서 4시간 반 떨어진 곳에 있는 마약재활센터의 의사 모하메드 다우드는 <씨엔엔> 기자에게 아편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일상적으로 사용되는지를 말했다.
"이 주변 마을에서 아편 복용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오랜 전통이자 어떤 면에서는 종교적 치료와도 같다. 사람들은 아편을 마약이자 약으로 사용한다. 아이가 울면 아편을 준다. 아이가 잠을 자지 않을 때도, 그리고 기침을 할 때도 아편을 준다."아프가니스탄은 전 세계 아편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최대 아편 생산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심각한 아편 중독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10년 7월 발표된 유엔마약범죄사무국(UNODC/UN Office on Drug and Crime)의 조사에 의하면 15~64세 사이 아프가니스탄 국민 100만 명이 아편 중독자다. 이것은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의 8%, 그리고 세계 평균 마약 중독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아편 중독은 증가 추세에 있으며 사용자의 60%가 평생 아편을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아편을 먹이고, 산모의 아편 사용으로 태어날 때부터 아편 중독인 아이들도 있다.
아편 재배 증가, 아프간 전쟁 종식 가능성 낮출 수도
만연된 아편 중독에도 불구하고 치료시설은 아프가니스탄 34개 지방에 40개 정도만 있고 전체 국토의 40% 정도인 13개 지방에는 치료시설이 없다. 이 때문에 조사에 응한 아편 사용자의 90% 이상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UNODC의 안토니오 마리아 코스타 국장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아편 중독은 복합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30년 이상의 전쟁과 그에 따른 정신적 충격, 대규모 아편 재배로 싼 아편을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환경, 치료시설의 부족 등이 아편 중독자를 증가시키고 있다."UNODC를 포함한 국제기구들과 단체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생산 추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데 이는 아편 생산이 탈레반 세력의 주요 수입원이 되고 그에 따라 아프간 전쟁의 장기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아편을 생산하지는 않지만 아편 재배 농민들로부터 10%의 세를 징수한다. UNODC에 따르면 이런 방법으로 아편을 통해 탈레반이 얻는 한 해 수입은 약 3억 달러(한화 약 3600억)에 달한다.
탈레반은 안정된 수입을 위해 아편 시장을 조작하기도 한다. 세계 아편 거래 가격은 2005~2009년 사이 점진적으로 하락했고 UNODC에 따르면 탈레반은 시장 가격을 조작하고 가격 상승을 유도하기 위해 이 시기에 6000~8000톤 가량의 아편을 숨겨 놓았다. 이것은 전 세계가 2년간 소비하는 아편 양에 해당한다. 아편 가격의 폭락으로 탈레반 장악 지역에서 아편 재배 면적은 20% 정도 줄었으며 양귀비 병의 확산과 겹쳐 2010년 아편 생산량은 2009년에 비해 반 정도 줄었다.
그러나 아편 거래량의 감소는 아편 가격의 재상승을 야기했다. UNODC는 지난 2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09년 1kg 당 64 달러였던 아편 거래 가격이 2010년에는 169달러로 164% 급등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생산량은 감소했지만 1헥타르 당 아편 재배 수입은 2009년에 비해 오히려 36% 증가했고 아편 재배 농민들의 연간 수입도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의 수입보다 17%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UNODC는 아편 가격의 급등으로 아편 재배가 다시 증가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아편 재배 면적의 증가는 곧 탈레반의 수입 증가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아프간 전쟁 종식 가능성은 이전보다 낮아질 수 있다.
반 강제적, 반 자발적으로 아편 재배하는 아프간 농민아프간 전쟁 경제(war economy)의 중추 역할을 하는 아편 재배와 그로 인한 전쟁의 악순환을 끊는 근본 해결책은 아프가니스탄 농민들의 아편 재배를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아편 재배는 대부분의 농민들에게 유일한 생존 수단이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강제적이고 제한적인 강제 금지 조치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아편을 다른 농작물로 대체시키려는 국제단체들의 노력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지만 아편 재배 지역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는 안전 문제와 제한된 재원 때문에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반 강제적, 그리고 반 자발적으로 아편을 재배하고 있다.
아편 재배는 전 인구의 80%에 달하는 아프가니스탄 농민들에게는 익숙하고 다른 농작물 재배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또한 다른 농작물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입을 보장해준다. 아편 가격이 높을 때는 밀 가격의 10배에 달했으며 가격이 폭락했을 때도 3배가 넘는 가격이었다. 아편 재배를 그만둔다면 생계를 꾸릴 마땅한 방법도 없다. 대체 작물 재배는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국내 정세 때문에 농민들은 정부 또는 국제단체들의 꾸준한 지원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아프가니스탄 아편 재배와 관련해 세계가 지적하지 않는 또 하나의 문제는 수요자의 요구다. 아편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되지만 아편을 원료로 하는 마약의 소비는 서유럽과 북미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러시아와 중국의 마약 소비가 늘고 있다. 그러므로 꾸준한 수요가 있는한 아프가니스탄의 아편 재배는 급격히 줄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편 재배는 아프간 사람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전쟁 경제의 중심축이 되어 결과적으로 전쟁을 지속시키고 그들의 생존을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대규모 아편 재배는 개인 차원에서 아편 중독을 확산시키고 그 결과 국가 차원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 당장은 생계와 전쟁의 문제지만 장기적으로는 아프간 사람들의 열악한 삶을 고착시키는 단단한 고리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