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1월 26일 수요일)은 구봉산(1004m) 산행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전날 오랜만에 수필 동호인 모임에 참석하고 밤 10시 돌아와 새벽 2시까지 근무 마치고 퇴근했다. 겨우 2시간 반여 토끼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새벽 5시 요란하게 울려대는 자명종 소리에 일어나 걸망을 둘러메고 싸늘한 새벽바람을 가르며 집을 나선다.
사당에서 일행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 때문에 부평에서 전철을 탔는데 이렇게 이른 새벽 시간에 전동차는 50~70대의 남성들 인파로 만원이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측은지심(惻隱之心),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분들 틈에 배낭을 메고 서 있는 내 모습이 왜 그렇게 부끄럽고 미안한 생각이 드는지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사이 일행들과 만나기로 한 사당에 도착했다(07:35). 우리 일행을 실은 전세 버스는 천안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달려갔다. 나는 이렇게 장거리 산행을 떠날 때면 언제나 "누가 없고 가도 모를" 정도로 달콤한 꿀잠에 빠져들어 수면 보충을 하며 나만의 활력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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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구봉산(九峰山)이여 우리산내음 카페 산악인 31명의 회원들이 전북 진안의 구봉산 산행길에 나서 아름다운 설경속에 9봉을 넘나들며 구봉산 산행을 마친 일행들 모습을 동영상과 사진에 담아 기록으로 남기고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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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도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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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우리 일행을 실은 차는 벌써 '상양명 주차장(10:45)에 도착했다. 잠시 준비 운동 및 단체사진을 찍고 곧바로 산행이 시작됐다. 온 세상을 하얗게 눈 이불을 덮은 구봉산 등산로를 따라 울긋불긋 천연색 복장을 한 일행들이 마치 "일개미들의 행렬"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1봉을 향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구봉산은 온통 은백색 흰 눈에 싸여 있고 하늘은 어쩌면 그리도 파란지. 마치 누가 하늘에 파란 잉크를 뿌려놓은 듯 곱게 물들어 있다. 원래 이날 산행 계획이 강원도 정선의 함백산이었는데 사정으로 구봉산으로 오게 된 것이 얼마나 잘된 일인지 모른다.
구봉산은 결코 아무나 넘볼 정도로 녹녹치 않은 산이란 것을 일깨워 주기라도 하듯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올려다보며 산행을 해야 할 정도로 험난하고 가파르다. 때문에 얼마 오르지 않아 제아무리 힘 장사 산꾼도 저절로 하나 둘 옷을 훌훌 벗어야 할 정도다.
그런데 이때 "아니 이게 누구 신가?" 하면서 혹시 '도영이 할베' 아니냐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사람은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구봉산 신령님'이 날 더러 하신 말씀인 듯하다. 그러면서 "아니 자네는 지난 2004년 "한국의 산하" 만남의 날 산행 때도 "일만 성철용" 선생을 빼고 나이가 제일 많았는데 아직도 건강한 모습으로 산행하는 걸 보니 반갑다"고 하신다.
이어 "매주 (토, 일요일)이면 전국에서 하도 많은 등산객이 구봉산을 찾는 바람에 어떤 날은 구봉산 신령님도 사람에 치여 몸살이 날 정도"라며 "오늘 같이 한가한 (수요일)에 구봉산을 다시 찾은 '도영 할베'를 만나 반갑다"시며 "오늘은 내(구봉산) 품에 자네 일행들만 있으니 서두르지 말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즐거운 산행하고 가라"는 "구봉산 신령님" 말씀을 들었다.
거참 이상하다. 아니 그럼 내가 신의 경지에 올랐단 말인가? 하하하.
그러는 사이 일행들은 벌써 1봉 668m (11:45)에 올라 너도나도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으며 기뻐하고 있다. 그사이 나도 1봉 찍고, 2봉 넘고, 다시 3봉 찍고, 4, 5, 6, 봉 찍고 7봉은 깎아지른 단애 암릉 지대가 되어 우회하고 다시 8봉 찍고(13:00) 내려서 바람을 피해 점심 (13:40)을 먹고 다시 9봉 정상을 향하여 약진 앞으로 강행군이다.
구봉산 산행 중 가장 힘든 난코스는 9봉 정상 바로 아래 급경사 오름 코스다. 2004년에 왔을 때는 이곳이 다듬어지지 않은 깎아지른 험준한 코스여서 그야말로 코에 단내가 날 정도로 여간 애를 먹으며 오른 기억이 떠올랐다. 이날은 눈이 쌓여 아마 그때보다 몇 곱절은 더 힘들 것이라 걱정을 하며 오른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2004년 그렇게 악명 높은 깔딱 고개 그 마의 구간에 지금은 구봉산을 담당하는 지자체에서 철계단을 설치한 것이다. 이번에는 큰 힘 들이지 않고 깔딱 고개를 쉽게 오르고 나니 옛말에 "산 넘어 산"이라 했던가? 이번에는 9봉 바로 코빼기 아래 가파르게 이어지는 암릉 구간에 올겨울 들어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쌓이고 또 쌓여 무릎까지 찰 정도다.
그런데 이날 구봉산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일행들뿐이다 보니 선두 "회나무, 양지 편" 두 대장은 서로 번갈아 일행들 위하여 "러셀(Russell)" 산행을 하느라 마치 여름철 방불케 땀을 흘려 옷이 흠뻑 젖어 혹시라도 감기 들까 걱정이 될 정도이다.
"돈이 생기는 일, 밥이 생기는 일도 아닌데" 저렇게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생고생하며 일행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두 대장의 희생정신이야말로 바로 "산에서 배운 대로 산처럼" 묵묵히 그 정신을 실천하는 참 산악인의 모습이라 생각이 들며 머리 숙여진다.
그런 와중에 더 웃기는 일은 아니 "도영 할베"는 자기가 무슨 이팔청춘으로 착각한 듯 젊은 사람들도 눈길 헤쳐 오르며 힘들어 헉헉거리는 구간에서 일행들 모습을 동영상에 담느라 안전은 뒷전 인체 촬영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란 말이 마치 나를 두고 한 말 같다.
그러는 사이 선두 일행들이 (14:33) 구봉산 (천왕봉) 1004m 정상에 올랐다. 너도나도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데 정상석이 워낙 코딱지만 해서 눈에 묻혀 일행들이 눈을 파헤쳐 정상석을 드러내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후 (15:04) 이정목이 가르치는 (바람재 구봉산 0.6km, 상양명주차장 2.7km, 복두봉 3.2km, 천황사 2.7km) 방향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하산길 암릉구간에서 좌측을 보면 이날 우리 일행이 땀 흘리며 하나하나 올랐던 (1, 2, 3, 4, 5, 6, 7, 8, 9봉)들이 마치 굴비 엮듯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용담호가 이날따라 파란빛을 띠고 아스라이 보이고 운장산, 덕유산, 마이산까지 막힘없는 조망을 즐기며 하산했다.
우리나라에는 산도 많고 산행 인파도 많다 보니 어떤 이들은 한번 가본 산은 두 번은 식상해서 안 간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산이라도 계절 따라 천차만별 보고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나만 해도 2004년 구봉산에 왔을 때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든 풍경을 보며 그때가 더 좋았던 것 같았던 생각도 해봤지만, 그땐 이번처럼 확 트인 조망을 즐길 수 없어 이번 산행이 더 좋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 사이 앞서간 선두 일행들은 벌써 가파른 하산구간을 내려서 저 아래 묘소(15:36) 삼거리 이정목(상양명주차장 1.5km, 천황사 1.7km)을 지나고 있다. 나도 서둘러 일행들 뒤를 따라붙었다. 이 구간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웃자란 낙엽송 군락지대 사이로 요리조리 삐뚤 빼뚤 굽이를 휘돌며 균형만 잘 잡으면 저절로 미끄러져 내려가 마치 스키 타는 기분을 맛보며 산길을 내려선다.
상양명주차장(0.8km)까지는 산책하듯 쉬엄쉬엄 걸으며 두고온 내 고향 농촌을 닮은 풍경을 맘껏 디카에 담으며 9봉을 상징하는 소원탑 9개를 쌓아올린 상양명주차장(16:10)에 도착했다. 이날의 구봉산 산행을 모두 마치고 가벼운 저녁 식사를 한 후 귀경길에 올라(20:30) 사당에 도착하여 일행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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